"일하는 강도는 정말 힘든데 밤 근무하는 것까지 합쳐도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신입 간호사들 같은 경우는 힘든 일을 하다 월급을 딱 받으면 보통 실망을 하고 많이 그만두더라고요. 이렇게 조금 받을 거면 차라리 상대적으로 일이 편한 병원으로 가거나 그냥 간호사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연구직으로 빠지거나…" (현직 간호사)

밤낮없이 환자를 마주해야 하기에 간호사라는 직업이 참 힘들겠다는 정도의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직 간호사를 인터뷰하며 들은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이들이 병원을 떠나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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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잔치 뒤에 숨겨진 비극

꽤 많은 병원에서 백일잔치와 돌잔치를 엽니다. 신생아를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신규 간호사가 100일, 1년을 버텼을 때 열리는 잔치입니다. 바꿔 생각해보면 얼마나 버티기 힘들기에 이런 이벤트까지 생긴 걸까요? 실제 통계로도 증명됩니다. 병원간호사회 조사결과, 입사한 지 1년 미만 신입 간호사의 이직률은 38.1%에 달했습니다. 10명 중 4명 가까이 병원에 사표를 낸다는 것입니다.

밤낮 뒤바뀐 3교대 근무

병동 간호사, 그러니까 입원 환자들을 직접 마주하는 간호사들은 3교대 근무를 합니다. 한 병원의 근무표를 확인해봤습니다. D(Day)라고 표시된 새벽·오전 근무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E(Evening)라고 표시된 오후·야간 근무가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N(Night)으로 표시된 야간근무가 밤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근무의 규칙성이 없습니다. 사나흘 연속으로 야근을 하다 하루 쉬고 낮 근무를 하다 또 야근을 하는 식이죠. 그러니까 어제까지 잠을 자던 시간에 오늘은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간호사들이 수면장애를 호소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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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서비스의 그늘

3교대 근무 자체가 워낙 힘들다 보니 4교대 근무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호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요. 우리나라에 간호사 면허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 37만 명이 넘는데 실제 일하고 있는 사람은 18만 명에 불과합니다. 일하는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는 거죠. 3교대 근무는 고된 반면 처우는 열악하니 일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인원이 줄어드니 결국 남아있는 간호사의 업무 강도만 더 세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간호사들의 업무량은 더 증가했습니다. 이 서비스는 보호자 없이 전문 간호인력이 환자를 돌보는 것으로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문제는 간호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중증 환자의 경우, 화장실 가는 것부터 도와야 하는데 기존 간호 업무에서 이런 간병 업무가 더해지다 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병동간호사 중 92.8%는 식사시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일부 병원은 충분한 시설을 갖추고서도 병동 운영, 심지어 응급실 운영까지도 포기하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간호사들의 노동 강도가 한계치에 달한 상황에서 환자를 더 받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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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만큼도 못 받는 쥐꼬리 월급

간호사는 업무 특성상 야간 근무나 시간외근무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수 근무에 대한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간호사들은 업무 인수인계 때문에 보통 자신의 근무시간보다 1시간가량 일찍 출근하고 또다시 1시간 이상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런 시간외근무가 월급에는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본급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병동에서 일하는 1년차 신입 간호사 기준 연봉이 많아야 2천만 원대 중반에 불과합니다. 세금 다 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훨씬 적죠. 첫 월급 받고 실망해 관두는 사람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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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 뒤에 숨겨진 진실

1년 전 서울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6개월 만에 몸무게가 13kg나 빠지는 등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 속에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신입 간호사 교육을 명목으로 이뤄지는 악습,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힌다는 ‘태움’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습니다. 하지만, 태움은 일부 이상한 선배 간호사들만 저지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유가족분들이 여전히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아산병원을 상대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대책을 세우라는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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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늘리는 게 해법은 아니다

정부는 박 간호사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잇따라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그중에는 보건복지부 내 간호전담 부서를 45년 만에 신설하는 등 꽤 굵직한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을 뜯어다 보면 간호대학 정원을 확대해 간호사를 늘리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해법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간호사 숫자를 늘리기 전에 왜 지금도 일하는 간호사가 전체 간호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처럼 일을 포기하고 관두는 간호사가 많아서는 그 어떤 대책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할 테니까요.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다룬 리포트가 방송된 이후 포털 사이트에 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댓글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간호사가 건강해야 환자도 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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