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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유전

기사승인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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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유전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물이 끊임없이 변하여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만물유전을 불교의 근본 도리인 제행무상(諸行無常)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행무상은 ‘만들어진 것은 모두 변화해 간다는 것’으로서 만무만상(萬無萬象)의 근원을 공(空)으로 보고 만물은 본래부터 만상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 나오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념’이란 말은 인도에서 사용되었던 지극히 짧은 시간의 단위를 말합니다.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지금의 이 짧은 시간에도 전 우주에서 변화의 반복이 삼천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생물체의 물질도 지극히 짧은 시간에 낡고 낡은 것은 버려지고 새것으로 바뀌고, 새것이 바로 헌 것이 되고, 다시 새로워지는 새로운 시대가 헤아릴 수 없이 빨리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노⦁병⦁사’의 변화도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죽어도 그 생각에 사로잡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에스키모인들은 늑대를 사냥할 때, 얼음 바닥에 동물의 피를 묻힌 칼을 거꾸로 꽂아놓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늑대가 피 냄새를 맡고 다가와 칼을 핥기 시작합니다.

늑대는 처음에는 칼날에 묻은 피만 핥지만, 차츰 칼날을 핥게 되고, 결국에는 그 칼날에 자신의 혀를 베이게 되지요. 그런데 이미 피 맛에 취한 늑대는 그 피가 자신의 피인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핥아 대다가 과다 출혈로 결국 쓰러져 죽는 것입니다. 그때 에스키모들은 이미 죽은 늑대를 가져간다고 합니다.

21세기 하루가 다르게 세계가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도 변화되어 가는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를 죽이지 않으려면, 오랜 세월동안 타성에 젖어있는 자신을 현실에서 변화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나는 힘이 센 강자도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의 성공 비결이다.” 그렇습니다. 빌게이츠도 또한 스티브 잡스도 변화했기에 세상을 바꾼 것입니다.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꿔보면 어떻게 될까요? ‘Chance(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유전! 모든 것은 변합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은 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위기이자 바로 기회입니다. 변화 속에 진짜 기회가 숨어있습니다. 성공은 얼마나 예측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변화에 얼마나 대처를 잘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멈추면 죽은 자입니다. 살아있다면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변화를 거부하는 극우(極右) ‘수구꼴통’들의 행태는 꼭 죽은 자들의 함성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수구꼴통’이라는 말은 옛것을 지키고 따른다는 ‘수구(守舊)’라는 뜻과 사람을 속되게 말하는 ‘꼴통’이라는 단어와의 합성어입니다. 특정 사회의 기득권층들은 현재의 체제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조금의 변화조차 수용하지 않으려는 폐쇄성을 띕니다.

이렇게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현 상태를 유지하기위해서 비이성적 행동을 하는 이들을 수구적 성향을 지닌 꼴통들 이라는 의미로 ‘수구꼴통’이라고 부릅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전 대표는 “한국당 5.18 망언 3인방은 반역사적, 반사법적, 반국민적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박 전 대표는 “어제 한국당 윤리위원회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제명 쇼’를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고 국회에서 반드시 제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이들을 법으로 제재하기 보다는 의식을 개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생각입니다. 그 의식개조는 덕화만발의 4대강령 중의 하나인「편협한 종교, 이념, 정치를 배격하고 중도⦁중용⦁중화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중도(中道)는 한 쪽에 치우치지 아니하는 바른 도리를 말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중도를 ‘도(道)’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중도는 ‘가장 적합한 도’ 혹은 모든 것의 ‘중앙이 되는 도’ 라는 뜻입니다. 중도는 세상에 있는 모든 의미나 행동을 벗어나서 있습니다. 즉, 생이 있다, 죽음이 있다, 더러움이 있다, 깨끗함이 있다, 부귀가 있다, 가난이 있다, 무와 유, 공과 색, 성인과 범부,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 등의 의미에 속하지 않는 것이 도입니다. 중도는 허공과 같이 투명하므로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나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하되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이 중도라는 말입니다. 중도 행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무심으로 착함(善)을 행하고 악함(惡)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자신이 국회의원이라는 생각이 없고, 개인의 이익은 버리고 공심(公心)으로 국가와 민중을 위하여 소신껏 봉사했으면, 하고 난 다음에 했다는 생각이 없어야 중도 행을 한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좋은 일을 했으나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이 전혀 없으면 중도를 행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중도주의(中道主義)는 정치적으로도 중립적인 정치 성향을 의미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중도라고 소개했을 때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사실, 완벽에 가까운 진정한 중도주의라는 것은 실현하기 매우 힘듭니다. 현실적으로 정치라는 것이 양자택일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중도라는 개념이 성립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현재 정치적으로 중도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도가 없으면 좌우간의 소통을 이끌어낼 존재가 없어지기 때문에 정치극단주의가 극심해지게 되어 각종 갈등이 격화되기 쉬워지며 이 갈등을 이용하려는 과격파들의 활동을 조장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도를 행하는 정치인이 있어야 양 극단에서서 죽기 살기를 거듭하는 이 지긋지긋한 정치 싸움에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마음에 발원(發願)이 없고, 변하고자 노력함이 없는 자는 곧 살았으되 죽은 목숨입니다. 세상을 바로세우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이 이 만물유전의 뜻을 이해하고, 발원을 크게 세워 시대의 변화에 응해 중도 행을 해야 하는 것이 애국이 아닌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2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회장)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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