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보세요. 성공한 사람들의 몇 가지 습관이니.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는 제목의 책들)볼 거 없어요. 이완용 전기 읽으면 되요. 이완용만큼 그 가르침을 충실하게 해 낸 사람이 없어요. 일찌감치 영어 배웠죠. 그리고 인간관계 잘 다져놨죠. 스펙 잘 쌓았죠. 기회를 보면 잡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눈치 빠르게 세상의 변화를 잘 파악했어요.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 그대로 따라간 거예요. 그런데 가보니까 이완용이야. 물론 개인적으로 성공했어요. 그렇죠? 대한제국에선 총리 대신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까지 했어요. 돈도 엄청나게 벌었고, 후손에게 많은 돈을 물려줬죠. 지금 우리 사회에선, 역사책에선 말로서 이완용을 막 욕하는데 실생활에 필요한 이른바 처세술의 영역에는 이완용처럼 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완용은 육영공원이라고 최초의 생긴 우리 영어교육기관에 제 1기 입학생이거든요. 그 당시에 영어유치원 다닌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주미한국공사관 참찬관을 했어요. 조기 미국유학 간 거죠. 더 나아가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고요”

박근혜 ‘국정농단’ 못지않은, 그 국정농단 정권에 적극 협조한 양승태 ‘사법농단’ 파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최근 양승태 대법원-박근혜 외교부-김앤장 간의 ‘검은 유착관계’까지 드러나며 파장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양승태와 김앤장, 양측이 한 몸처럼 행동했다는 정황이 최근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 YTN

일본 전범기업의 소송대리를 맡은 국내 최대포럼인 김앤장과 양승태 사법부가 강제징용 재판을 논의한 정황이 확인됐다. 특히 대법원의 수장인 양승태가 직접 김앤장과 수시로 접촉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더 나아가, 헌법재판소가 일본 전범기업에 불리할 수 있는 판결을 낼까 봐 양승태 사법부가 헌재 기밀 정보를 몰래 빼돌려 김앤장에 건넨 정황까지 등장했다.

또 박근혜 정권 외교부장관이었던 윤병세도 김앤장과 수시로 접촉, 강제징용 재판 관련해 논의한 정황이 확인됐다. 특히 윤병세는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 김앤장의 고문을 맡고 있었는데, 지난 2012년 김앤장이 '강제징용 대책 TF'를 꾸렸을 당시 회의에 참석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앤장의 소송을 사법부와 외교부가 적극 배후에서 도운 셈이다. 사실상 김앤장이 중대 국가기관들을 대놓고 쥐락펴락한 셈이다. 이 모든 논란이 사실이라면, 양승태를 비롯한 관련자 전원은 현대판 친일파, 민족반역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3년, 2014년 말 삼청동 공관에선 두 차례의 수상한 모임이 있었다.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이던 김기춘을 비롯해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과 박병대, 외교부 장관이던 윤병세,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안행부 장관이던 정종섭,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조윤선 등이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강제징용 결론 연기 및 전원합의체 회부를 통한 파기 방안을 논의한다. ⓒKBS

이와 관련해 김어준 < 딴지일보 > 총수는 < 다스뵈이다 42회 >에서 “강제징용 전범기업 변호를 대리한 김앤장이나, 외교부나 양승태가 관여한 과정들을 보면, 김앤장은 법률대리인이니까 ‘어쩔 수 없이’ 이게 아니고 정말 진심을 다했구나라는 게 느껴진다”고 꼬집었다.

김 총수는 이어 “예를 들면, 나치 (전범자)를 변호하는 유태인 변호사는 직업윤리가 있어서 변호를 해야 한다는 내적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런 게 느껴지기는커녕 억수로 적극적”이라며 “우리나라 기득권, 그런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적 규범과 참 동떨어져 있다”고 꾸짖었다.

이같은 성향의 뿌리가 무엇일까를 설명하기 위해, 사대수구 세력을 겨냥 ‘토착왜구’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역사학자 전우용 씨가 출연했다.

전우용 씨는 “친일파라는 이름이 개인적으론 탐탁지 않다. 왜냐면 이 표현은 마치 (조선시대)훈구파, 노론 벽파처럼 역사 속에 이미 묻힌 이름인 거 같다”며 친일파라는 단어가 출연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친일파라는 이름도 사실은 일본인들이 지었어요. 우리가 지은 이름이 아니에요. (1884년)갑신정변이 났을 때 일본 언론에서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사람들(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을 세 가지 이름으로 불렀어요. 우리가 잘 아는 개화파, 이런 사람들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도한다고 해서 독립당, 그리고 일본을 더 좋아한다고 해서 친일당 혹은 친일파 이렇게 불렀어요. 그 반대되는 이름을 개화의 반대말로 수구파, 그리고 독립의 반대말로 사대당. 그리고 친일파의 반대말로 친청파 이렇게 불렀어요”

그는 이렇게 ‘친일파’ 단어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그 이후 20년간은 사회적으로 많이 통용된 단어는 아니었다. 당시 조정안에서는 러시아에 가까운 쪽, 미국에 가까운 쪽, 일본에 가까운 쪽, 중국(청나라)에 가까운 쪽이 다 나뉘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다가 친일파라는 사람이 특별히 우리사회 최대의 악이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건, 러일전쟁 이후 을사늑약(1905년, 외교권 박탈)이 나고 나서. 특히 1907년 (정미7조약으로 인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시대적 배경인)군부해산, 고종양위, 의병봉기 이런 것들이 일어나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 때 자진해서 자발적으로 우리가 친일파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세력이 튀어나온다. 송병준-이용구 등 동학의 일부와 보부상 일파가 합쳐져 만들어낸 일종의 관제단체인 일진회”라며 “이들은 일본 헌병을 도와 의병을 진압하는 데 앞장선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무렵, 해외에서 재미교포가 발행하던 ‘공립신보’라는 신문에서 친일파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음을 설명했다.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나라를 팔고,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 황상폐하를 능욕하며,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 동포를 학살하니 사람의 낯이나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들”

전씨는 그 때부터 대중들이 ‘일본에 의지해서 나라를 팔아먹는 자들’을 친일파로 불렀음을 설명했다. 그는 친일파를 큰 틀로 보면 두 부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친일파’ 첫 번째 부류는 이완용, 박제순 등 ‘을사오적’ 부류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대중들이 이들에 품었던 반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을사오적 중)학부대신 이완용, 외무대신 박제순 이 둘을 매국노 대표로 쳤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종로 일대에 쭉 상가가 들어서 있었어요. 조선시대부터 이미 들어서 있던 거죠. 당시 화장실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 길에 소와 말이 하루에 수천마리씩 지나다녔으니 길은 이미 똥밭이죠. 일제 강점기에 그래도 군데군데 공중변소를 강제로 설치하는데, 그 공중변소의 별명이 이박식당이었어요. 이씨와 박씨가 밥 먹는 식당. 이완용과 박제순은 똥개같은 놈들이다. 이런 얘기죠”

‘매국노’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첫 번째 대상은 ‘이완용’이다. 매국노이자 친일파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상인데, 근현대사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많이 아시듯 이완용은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다.

“이완용은 육영공원을 졸업하면서 영어를 배웠어요. 주미 공사관, 소위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친미파)했죠. 또 아관파천 무렵에는 독립협회 회장을 하는 등 친러파의 영수였어요. 그러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니까 친일파로 돌았죠. 그러니까 이완용이 친일파라고 들으면 저승에서 굉장히 기분나빠할 거예요. 친러, 친미, 친일을 두루 역임한 통합파인거죠”

이완용이 죽기 전에, 자신의 조카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는 얘기도 있다. 전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이완용을 ‘기회주의자’ ‘철저한 사익추구 지상주의자’로 규정했다.

“(이완용은) 죽기 전 조카에게 ‘지금 내가 세계 돌아가는 형국을 살펴보니 다음엔 미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너는 미리미리 준비해서 세상이 바뀌었을 때 다시 친미파가 되라’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친일파가 아니에요. 친일파라는 단일 규정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이기는 편, 철저한 기회주의에요. 개인, 혹은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공동체 국가 또는 민족이 입게 될 심각한 피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에게만 이익이 되면 (된다는) 철저한 사익추구 지상주의자죠”

그러면서 “이렇게 사익추구 지상주의, 사익극대화를 최대로 두는 게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사상의 특징”이라며 “직업적 친일파다. 힘센 쪽에 붙는 게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친일파’ 두 번째 부류로 ‘민족 계량주의 친일파’를 들었다. 대표적으로 ‘민족개조론’을 읊었던 이광수 같은 자를 뜻한다.

“나라가 망한 것은 우리가 못나서라고 생각하죠. 우리 민족이 못난 점이 뭘까. ‘단결력이 부족하고 사대주의적이다’ 일종의 자학사관 비슷한 거죠. ‘우리가 약한 민족이라서, 우승열패 적자생존 경쟁의 세계에 약하고 못 배우고 모자라고 무식한 자들이 당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러다보니 상황이 너무 비참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을 기르려면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광수식의 생각이었어요”

그는 이광수가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변절’한 것이 아닌, 사상이 일관되게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서 훌륭한 민족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건데, 거듭나려면 뭔가 보고 배워야죠? ‘아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민족이 어떤 민족이냐? 일본 민족이다. 그러면 우리민족의 약점을 버리고 일본 민족의 장점을 배우면, 우리도 강한 민족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처음엔 그래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생각을 한 걸음만 넘어가면 돼요. 일본을 자꾸 배워서 닮아가면 그 다음엔 뭐에요? 우리가 이름 바꾸고 언어 바꿔서 일본인이 되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돼버리는 거죠. 자기 정체성을 부정해버리는 거죠. ‘한민족을 개조해서 좀 더 나은 민족으로 바꿔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일본 민족이 되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황국신민의 논리와 바로 맞아버린 거죠”

전 씨는 이광수가 나중에 취한 행보에 대해 “나중에 가선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 ‘요즘 꿈도 일본말로 꾼다고’ 자랑한다. 자기만 그리 되는 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그리 얘길 한다. 일본인이 되는 게 아시아 1등 민족이 되는 길이라고. 한국인이 모두 일본인이 된다면 무슨 근거로 한국인을 차별할 수 있겠냐(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광수가 교육을 ‘피적포이술’이라고 정의했음을 지적하며 “적을 피하고 먹이를 얻는 기술, 그걸 교육의 목표라 그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광수의 주장은) 도덕성, 올바른 가치관, 연대, 배려, 예의, 공동체의식 이런 건 교육이 가르칠 부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라며 “이 사람들 역시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게 올바른 삶이고, 그러기 위해선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이게 해방 이후까지 내려왔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승태, 김앤장 등이 취한 태도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은 전범기업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기업들을 줄곧 변호해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옥시나, ‘먹튀’ 론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 노컷뉴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최고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 길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인 거죠. 이번에 김앤장이라든가 양승태라든가 그와 결부되어서 일본의 전범기업들 편에 서도록 도와주었던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똑같아요. 전범기업이든 그들이 우리 선조들을 얼마나 악랄하게 괴롭혔든 그건 관계없어요. 이미 지난 일이고 당장 혹은 장래 나에게 큰 이익이 된다면 열심히 해서 이겨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전 씨는 우리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의거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서 민족적 단결을 공고히 하고” 앞부분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이게 제헌헌법에서부터 들어가 있던 구절로 정의, 인도, 동포애는 대한민국의 약속”이라고 설명하며, 과거 친일파를 정의한 부분(일본에 의지하여 우리나라를 팔고 우리 동포를 학살하니, 사람의 낯이나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들)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승의 마음에 반대되는 것이 인도주의에요. 그런 인도를 지키는 게 정의이고 우리 동포를 사랑하는 게 동포애잖아요. 헌법에 이것을 적어놓은 것이고, 친일과 관련된 역사적 가치관, 역사적으로 형성돼 있던 일본적 가치관을 완전히 끊어내자는 선언을 그렇게 했어요”

그는 양승태와 김앤장 등이 벌인 행위를, 우리 헌법에 가치에 비추어 ‘반헌법세력’으로 규정했다.

▲ ‘국정농단’ 박근혜 정권과 ‘사법농단’ 양승태 대법원의 추악한 재판거래는 수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MBC

“일본의 전범기업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인간이하 대접을 받으면서 혹독하게 고생했던 당했던 사람들은 우리 동포이고, 선조들이란 말예요. 그 동포애가 없는 거잖아요.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일을 한 것이니, 당연히 정의감이 없죠. 그동안 이 사람들이 해왔던 가치관에 따라 처신해왔던 행동 양식, 돈을 위해서라면 염치도 인도도 정의도 따지지 않고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금전만능주의, 그건 우리 헌법 위반이에요. 반국가세력이라고요. 정의도 동포애도 부정하고, 위배되게 하는 행동 자체가 우리 헌법적 약속을 어기는 반헌법세력이라는 거예요. 일종의 반역행위라는 거죠”

전 씨는 자신도 ‘정의로운 척 하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대세에 휩쓸려 살아라’ ‘니 먹을 거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등의 얘기를 들으며 자랐음을 거론하며, (주로 기득권 층에서)이런 메시지를 심어주는 게 “친일파 닮으라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러면서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위 자기계발서(처세술 관련 책들, 성공 법칙 등이 담긴 책들)에 대해 “(일일이) 볼 거 없다. 이완용 전기 읽으면 된다”며 청중들의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전 씨는 “지금 우리 사회에선, 역사책에선 이완용을 막 욕하는데 실생활에 필요한 이른바 처세술의 영역에는 이완용처럼 되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삼각한 모순점을 꼬집기도 했다.

▲ 이완용의 재산은, 시민들의 거센 환수 요구에도 거의 환수되지 않았다. ⓒ SBS비디오머그

그는 양승태와 김앤장 등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인식해야 한다. ‘이건 인면수심이다. 이건 단순히 돈 벌기 위한 범죄가 아닌 인간성에 대한 범죄다. 인간이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을 부정한 반역행위’로”라고 지적하며 “정의도 인도도 동포애도 다 부정했으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점에 대해선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 그러한 행위 자체가 이완용과 같은 행위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은 행동을 제안했다. 이완용의 악행처럼 오랫동안 잊지 않고 역사적으로라도 응징해, 후세에 교훈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 자체가 이완용과 같은 행위라는 걸 인지해야 해요. 이완용이 죽었을 때, 그 때만 해도 동아일보가 괜찮았어요. ‘살아서 누린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부터 겪을 일이 얼마나 끔찍할지 겪어봐라’ 이런 거였거든요. 그 예언이 맞았어요. 앞으로 이런 일은, 안 지을 정도로 기억해야 해요. 앞으로 백년 동안이라도”

▲ 전우용씨는 우리 헌법전문을 거론하며 김앤장과 양승태 일당이 벌인 행위가 정의, 인도, 동포애 등이 결여됐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헌법주의자-반국가주의자라고 꾸짖었다. ⓒ딴지방송국

“우리가 시민차원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뭔가. 일제강점기 시절 공중변소에 이박식당이라는 이름 써놓는 게 시민의 실천 활동이었고요. 이박식당이라고 부르는 게 시민들 애국운동이었어요. 그렇게 불러서 아예 못을 박아버리는 거죠. ‘네가 아무리 돈이 좋아도 아무리 명예가 좋아도 입신양명이 좋아도 이완용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거였어요. 그런 가르침의 방식은, 굉장히 다양한 자발적이고 대중적인 창의가 발휘될 수 있어요. 노래를 만들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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