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단편소설〖난지도〗3회

어수선한 마음으로 나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모습이 계속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속히 퇴근하여 쉬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퇴근 시간의 한 시간 전이었다. 어디선가 앵무새 같이 반복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고추, 여자.......”

한 학생이 교무실을 산만하게 배회하는 소리였다

“너 누구야?”

지나가는 교사들마다 물어보았다.

“남자, 고추, 여자.......”

그 학생은 아무런 생각 없이 투명한 눈만 껌벅일 뿐이다. 스포츠 머리에 얼굴은 검고 잘 생긴 편이었다. 그의 산만하게 떠도는 얼굴이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정상아와 다른 자폐아였다. 교사들은 업무에 방해가 되니까 짜증 섞인 소리로 말하였다.

“거 누군데 저런 아이를 혼자 방치하고 있는 거야?”

모두 이맛살을 찌푸렸다.

“정신병자 같은데?”

“자폐아인데 우리 학교로 전학 온데!”

“뭐야? 저런! 심하군!”

잠시 후 장애아를 맡아서 지도하는 특수반 교사가 그 학생을 데리고 상담실로 갔다. 조금 후에 한 중년 부인이 손에 서류를 들고 헐레벌떡 교무실에 들어왔다. 그 여인은 바로 오전에 창 밖에서 보았던 성혜란이었다. 나는 재빨리 얼굴을 감추어 외면하고 자리를 이동하여 휴게실로 갔다. 복도에서 그녀의 목소리와 특수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폐아’에 대한 처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였다. 나는 그들과의 대화를 들으며 최석과 혜란 사이에서 태어난 학생이 아까 그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은근한 통쾌함이 나의 전신에서 짜릿하게 퍼졌다. 나는 다시 교무실의 나의 자리에 돌아왔다. 이 때 전출입을 담당하는 최 선생이 혜란과 그 학생을 데리고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최 선생은 약간 미안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그 학생이 우리 반 학생, 내가 담임하는 반의 학생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당황하던 중 혜란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나를 알아보고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순간 최 선생을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왜 하필이면 저희 반이 되어야 하죠?”

나는 따지듯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학급 인원이 제일 작은 반부터 전입생을 받는 것이 원칙이죠.”

최 선생은 나에게 전입서류를 내밀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최맹현! 그의 부친의 이름은 최석이었다. 분명히 학생은 최석의 아들이었다.

“작년에 말썽을 부리던 문제식도 이런 원칙에 의해 우리 반이 되었잖아! 어쩔 수 없어요”

정 선생이 곁에서 얄밉게 맞장구를 쳤다. 나는 더 이상 빠져나올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만 싶었다. 계속 그 자폐아를 거부하면 약자를 무시하는 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혜란은 난감하고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학생을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조금 후에 특수반 교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 학생은 장애가 심해서 일반아이들과 수업 할 수 없어요. 그래서 형식상으로만 2학년 5반이고 생활은 거의 특수학급에서 할 것입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그제야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속사정을 그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다고 나의 개인사정을 하소연할 수 없었고, 공적인 업무상의 일을 회피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일단 특수교사의 말대로 하였다. 마음은 계속 산만하면서 혜란의 초라한 몰골이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삼십대 후반인데 몸매는 벌써부터 흩어졌고, 미모와 세련된 단장으로 자신만만했던 옛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 앞에서 조깅과 운동으로 단련된 날씬한 몸매와 우아한 옷차림의 나의 모습이 그녀를 압도하였다. 남의 애인을 가로챘던 미모의 그녀가 정체모를 불행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목격하고 있었다. 통쾌하였다. 특히 그녀의 초점을 잃은 듯한 눈동자와 뭔가에 쫓기듯 허둥대던 모습! 보라색 홈드레스에 노랑색 카디건을 걸치고 있는 모습은 더욱 그녀의 몰락을 상징하고 있었다.

맹현이 전학을 온 한 달 후에 학교 주변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다가오는 월드컵을 위한 환경개선 사업의 추진이었다. 맨 먼저 확연히 달라진 것은 콘크리트로 높게 쌓아올린 담이 헐리고 그 대신 개방적인 분위기의 낮은 울타리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난지 중학교장 양성자는 누구보다 이 일에 열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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