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전

1997년 대통령 선거가 있기 직전의 그해 겨울, 우리나라 국민들은 IMF 사태 라는 이른바 “국가부도사태” 라는 충격적인 뉴스를 전해 들었다.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당시의 이 상황을 소재로 한 영화가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었으니 영화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른 셈이다. 도대체 그 IMF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황우석 박사 사건을 다룬 <제보자>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성취해 낸 시민혁명을 다룬 <1987> 등 가까운 과거에 벌어진 유명한 사건들을 영화화한 작품들 중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았다. 이번 <국가부도의 날> 역시 그런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당시로는 꽤 큰 빅 뉴스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93년, 나는 지방 중소도시의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는 참 아이들이 많았다. 한 반에 50~60명씩 밀어 넣어도 교실이 모자라 복도에서 구구단과 받아쓰기 시험을 보곤 했다. 중간에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학교는 여전히 아이들로 넘쳐났다. 점심시간 운동장은 콩나물들이 몸부림치는 시루 같았다. 6학년이 되기 전까지 형들 등쌀에 운동장에서 공 한번 마음껏 차지 못했다.

어른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 고층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친구들이 전학을 왔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등교를 해도 학생 수가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동네 친구들과 새로 지은 초등학교로 강제 전입을 갔다. 이제야 짬밥이 되어 마음 놓고 공을 찰 수 있었는데, 새 학교로 등교를 해야 한다니 억울했다. 출산율 감소와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같은 추억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지은 새 학교에서 맞이한 97년은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하다. 새 운동장은 막 입학한 내 동생이 형들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을 만큼 넓었고, 공을 차다 싫증 나면 강당에 들어가 농구를 하고 배드민턴을 쳤다. 방학이면 학교 보이스카우트 친구들과 일본, 중국으로 역사탐방을 갔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의 붕 뜨는 흥분처럼, 어린 초등학생들도 세상의 들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해 가을까지는 그랬다.

그 날 이후

IMF의 사전적인 의미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를 의미한다. 1945년 설립된 국제금융기구로 세계무역 안정을 위해서 설립된 좋은 취지의 국제기구이며, 2011년 기준 188개국이 회원국으로 등록되어 있다. 97년 말 당시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가 오고 결국 국가부도사태라는 충격적 뉴스가 전해졌을 때 일반 국민들은 이것을 IMF 사태 라고 불렀다. 그 후 수년 동안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가면서 “IMF 때문에 힘들어” “우리나라가 IMF라서” 뭐 이런 대화가 일상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의 약어인 IMF는 마치 “파산 직전의 어려움을 겪는 경제적 공항”이라는 단어처럼 활용되었다. <국가부도의 날>,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그날 이후 너무 익숙해진 IMF, 라는 단어가 아니라 아예 “국가부도”라는 명칭을 쓴 제목이다. 과연 그날은 국가 부도의 날이 맞는가? 그리고 그것과 IMF는 무슨 연관일까? 98년 봄,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학교는 뒤숭숭했다. 이번에는 친구들이 전학을 갔다. 아니, 사라졌다. 송별회를 할 겨를도 없이 이사를 갔다. 부모님의 고향으로 가는 애들도 있었고 이름도 생경한 외국으로 가는 녀석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공통점은 아버지 사업이 망했거나 보증을 잘못 서 부도라는 것이 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하굣길에 유치원 때부터 같이 지낸 한 친구가 내일 말레이시아로 이민을 간다는 말을  툭 내뱉었다. 마치 가족끼리 주말에 스키장에 갈 거라는 것처럼. 그때 우리 둘은 말레이시아가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이렇게 도망가듯 떠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랐지만, 꽤 오랫동안 볼 수 없다는 것은 알았던 것 같다. 애꿎은 신발주머니만 툭툭 차며 걸었던 그 하굣길이 친구와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와 그의 가족이 정말 말레이시아 친척집으로 가서 정착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해 겨울, 거실에서 빈둥대다가 소파 밑에 붙어있는 딱지를 발견했다. 압류딱지는 TV에서 보던 것처럼 빨간색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체는 딱딱하고 서늘했다. 못 본 체하고 다시 원래 붙어있던 위치에 붙여 놨다. 떼면 안 된다고 쓰여 있기도 했지만, 내가 그것을 봤다는 사실을 부모님이 알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다행이도 나는 전학을 가거나 이사를 가지 않고 신축 초등학교의 1회 졸업생이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어렸던 내가 쇼파 바닥에 붙은 딱지를 발견했다는 것을 모른다.

대한민국 난파일기 <국가부도의 날>

IMF를 직접 겪은 세대로서, 그리고 그 당시 너무나 지긋지긋하게 많이 들었던 그 IMF라는 용어였지만, 영화를 보면서 의외로 그 세대조차 그 용어나 그때의 상황에 너무 무지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국가부도”와 “IMF”는 서로 직접 연관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국가적 외환위기를 겪게 되면서 그 상황에 맞서고 대책을 세우려는 행정가들과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 어려운 사태를 극복해 나가는 국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휴먼드라마일 것이라고 짐짓 예상했었다. 대부분 과거 이야기를 다루는 소재의 영화일 경우 그런 감성적 패턴이 많았기 때문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그런 예상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었다.

1996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당시,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하게 되는 성과를 얻으면서 일약 경제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것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1년 뒤에 국가 외환위기 사태가 찾아온 것이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우리나라는 77년 100억 불 수출달성, 88년 서울올림픽 개최, 그리고 96년 OECD 회원국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과 함께 일본, 중국과 함께 아시아의 3강을 이루었다. 가난한 시대의 염원이었던 경제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서게 된다는 기대감이 증폭되었고, 그렇게 우리나라의 20세기는 화려하게 마무리되는 듯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국민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IMF라는 이름을 앞세우며 전격 발표된 국가부도 사태, 많은 국민들은 이 뉴스를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세부적으로 디테일한 것까지는 몰랐을지언정, IMF라는 건 뭔가 굉장히 무서운 것인가보다 라는 생각과 함께 나라가 망했구나 라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97년 이후, 개인 혹은 가정에 아픈 역사가 있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을 권한다. 그것만 직시할 수 있다면, 묵직한 감정을 환기할 수 있다. 왜 지금의 부모세대가 자식들이 안정적인 전공과 직업을 갖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는지, 혹은 삶의 위기로부터 그들이 버텨온 여정이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들과 그들의 가족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하여 말이다. 혹시 영화 트레일러 때문에, <범죄의 재구성>이나 <The wolf of Wall Street> 같은 흥겨운 템포와 통렬한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한국은행 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국가부도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수차례 경고성 보고서를 올리지만 누구도 그것을 읽지 않는다. 위기 이후에도 그녀는 언제나 정부 정책 결정자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IMF 구제요청은 최선이 아니라는 것. 각자 이기적인 이유로 IMF 해법을 밀어붙이는 영화 속 위정자들과 맞서는 그녀는 정의 그 자체다. 그리고 언제나 정의는 힘이 없다. 한시현은 정의의 부재,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지렛대다.

외환위기의 원인과 IMF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오직 한 시각에서 다뤄진다. 더 잘살게 될 것이라는 90년대의 흥분은 모래밭에 쌓아 올린 위태로운 누각이었으며, 붕괴 직전 몆몆의 위정자들의 판단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는 것. 거기에 IMF는 마냥 숭고한 구조대원이 아니었다는 것. 반론의 여지는 있지만 쟁점화된 바 없는 입장이기에 의미 있는 제기다.

난파선의 영웅들

대략적으로 IMF 사태 이후에 벌어진 실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나열해 본다면, 첫째 주가지수가 폭락해서 주식투자자들이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이미 80년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주가지수 1,000을 넘었었는데 IMF 당시 300대까지 지수가 떨어졌다. 즉 80년대 1,000만원을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 가치가 97년 말에는 300만원으로 폭락했다는 것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손실이었다. 지금 100원으로 액면분할 하여 4만 원이 넘는 삼성전자 주식이 IMF 당시 액면가 5,000원이 4만 원대로 떨어졌으니 100원 환산으로 1,000원도 안 되는 셈이다. LG정보통신의 주식도 당시 2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주식이 4만원대에서 30만원으로 가는데 걸린 시간은 3년도 안 되었고, LG정보통신 주식이 10만원을 넘는데 걸린 시간은 이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둘째 종금사들이 부도 처리되면서 투자자들의 원금손실이 발생하면서 한푼 두푼 모아 목돈을 만들려는 서민들의 절망감과 충격이 매우 컸다.​

셋째 은행들이 대거 문을 닫았다. 유독 김영삼 정부 시절 새로운 신생 은행들이 부쩍 증가했다. 하나은행을 비롯하여 대동은행, 장기신용은행, 평화은행, 동화은행 등 후발 은행들의 점포들이 부쩍 증가했고, 기존 은행들과 함께 1금융권인 은행 숫자가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IMF 사태 이후 하나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은 모두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외국 기업에 인수된 제일은행과 국가가 인수한 우리은행까지 합치고 이후 통폐합된 은행들(주택은행, 조흥은행 등)까지 합치면 지금 현재 사라진 은행은 훨씬 더 많다.

넷째 줄줄이 도산되는 기업들이 많았다. 중소기업들의 피해는 엄청났고, 많은 대기업들도 인원 감축, 임금동결, 영업소 철수 등 비상조치가 이루어졌다. 직접 경험한 기억으로는 대기업의 각 부서별로 의무적으로 1명씩 감축 인원을 찍어서 통보하라는 지시기 내려왔고, 지방영업소를 통폐합 축소하면서 임대사무실을 비우는 와중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고 쩔쩔매는 건물주들이 대거 속출하기도 하였다. 부도나는 대리점이 속출했고 담보로 잡은 보증보험 청구로 인하여 보증보험사가 엄청난 재정위기를 겪기도 했다.

다섯째 온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졌고, 일반 국민들이 집 안에 있는 귀금속을 모아서 국가에 헌납했고, 금을 모아서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는 국민운동이 오랜 기간 벌어졌다. 무려 20억 달러라는 금이 모였다고 하는데 영화의 말미에 자막으로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서민들이 피땀 흘려 내놓은 이 금이 대기업의 부채를 상환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윤정학(유아인 분)은 이 메마른 이야기에 유일한 극적인 인물이다. 종합금융회사 직원인 그는 한시현과 거의 동시에 국가 경제의 위기를 감지한다. 그는 위기를 기회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자신의 비전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노아의 방주를 만들고 역으로 부를 축적한다. 달러를 사들여 차익을 남기고, 그 돈으로 헐값에 쏟아지는 부동산을 긁어모은다.

나라 잃은 무사의 허무한 칼춤처럼, 망해가는 나라에서 거꾸로 쌓이는 부를 바라보며 윤정학은 세상을 조롱하고 스스로를 냉소한다. 그는 가장 똑똑한 것 같지만 가장 위선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말미에 그런 자들의 인생을 동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여준다. 2018년 강남 오디세이는 그 일그러진 영웅들의 서사시라는 듯이.

균열을 감지한 두 금융전문가의 대응은 극과 극으로 달린다. 가족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난파선의 구멍을 온몸으로 틀어막으려던 한시현과 혼란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나가 배 맨 위에서 스스로 영웅이 된 윤정학. 개인의 삶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각자 생존을 위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만 비극은, 우리 주변에 한시현은 사라졌고 오직 윤정학만이 남아 영웅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난파선의 사람들

돌이켜보면 그렇게 거대한 침몰위기가 있었음에도, 우리는 새로운 안전 매뉴얼을 만들기커녕 그 위기상황을 제대로 복기해본 적이 없다. IMF를 구세주로, 유년기를 ‘IMF 시대’로 알고 자란 나 같은 IMF 세대에게 영화는 상식의 붕괴를 자극한다. 흥청망청 해외여행과 과소비를 일삼아 알거지가 되었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을 모아야 그 시대가 빨리 종결될 것이라 배웠고 그렇게 믿었다.

정말 그랬다. 삶의 난파는 아버지들의 책임으로 전가되었다. 근면성실하게 살면 따뜻한 저녁이 있을 것이라는 밥상머리 가르침이 거짓말이 되었다. 열심히만 사는 것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했다. 가장의 실패는 죄악이었다. 가족, 인척, 이웃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부도 사태와 IMF는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가? 다른 것은 잘 모르더라도 당시를 경험했던 국민들은 이 부분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외환위기=국가부도=IMF사태 이런 등식이 성립된 것처럼 정부에서 “전격 발표”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그로 인하여 우리는 IMF라는 단어를 통해서 전격적으로 국가부도 사태를 직감하는 뉴스를 들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과연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는 알 수 없지만, 밀실에서 국민들조차 모르게 빠르게 비밀 협상이 이루어졌고, 전격 국가부도 사태를 발표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아무런 대비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던 국민들, 여러 가지 IMF 괴담이 터져 나왔고 나라가 완전히 망한 것인지 이 경제 위기가 5년이 갈지 10년이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영화에서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외환위기 사태를 감지한 한국은행 측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때늦은 보고를 하고 이후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를 막아보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모습이었다. 즉각 비상 상황팀이 가동되고 관련 팀원들은 주야 없이 국가부도 사태를 막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을 걱정하는 이들과는 달리 이참에 아예 국가의 형태를 송두리째 개편하고자 하는 발상을 가진 경제부 차관(조우진)은 중소기업이나 일반 국민의 파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대기업을 살려서 국가 경제 재편을 기획한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IMF 구제금융이었고, 즉 세계 최고의 “고리대급업자”를 우리나라에 불러들여 급한 불을 끄고, 그들에 제시하는 여러 가지 불리한 협상 조건을 전격 받아들이면서 거대한 경제적 밀실야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걸 심한 표현으로 경제 주권을 팔아넘겼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IMF 사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필수적 요소가 아니라 좀 더 신중히, 좀 더 유리한 협상 조건으로, 좀 더 다른 방법으로의 물색으로 달리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과연 그 당시 IMF와의 밀실 졸속협상이 타당했는지 아니었는지를 필자가 판단할 능력은 없다. 그리고 실제로 거짓말처럼 국민들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IMF 구제금융을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빨리 벗어났고, 2002년 월드컵 유치의 뜨거운 함성을 느끼면서 어느새 97년에 들이닥친 초유의 외환위기 사태에 대한 기억은 서서히 잊혀 갔다. 실질적으로, IMF 후유증을 외형적으로 느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과연 IMF는 아주 짧은 시기에 잠시 호들갑 떨고 끝난, 태풍 같은 미풍이었을까? 이 영화에서는 2018년 현재 시대를 잠깐 다루면서 그때의 위기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성한 아들과 통화를 하는 갑수(허준호)는 아들에게 아무도 믿어선 안 된다 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그는 다시 재기하여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어느새 공장은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다. 그렇다. IMF는 국가의 재정이 바닥난 사건이었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국가 재정은 튼튼할지 모르지만 국민 개개인의 재정이 파탄에 이를 수도 있는 위기감을 겪고 있다. 실업난, 취업난, 조기 퇴직, 비정규직, 빈부격차, 역대 최대치를 계속 경신하는 가계부채, 자영업자의 어려움, 하늘같이 치솟는 임대료와 집값…. 과연 우리는 불과 20년 전의 IMF 위기에서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우린 자본주의 국가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자유경제라는 좋은 점이 있지만, 돈이 없을 경우 참으로 무서운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살아남는다는 것, 과연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협력과 인도주의를 얻은 것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경쟁과 수단방법 안 가리고 살아남는 자본의 노예 정신을 얻은 것일까?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매우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되고 있다. 언제나 위기는 도처에 있고, 또한 언제나 기회는 찾아온다. 그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은 부모와 반대의 삶을 살았다. 더 잘살게 될 미래에 대해 말해주는 어른은 없었다. 삶의 목표는 생존이었다. 경찰, 교사, 군인이 될 수 있는 학과 점수가 치솟았다. 평생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으로 몰려들었다. 집을 사는 희망을 가져 본 것은 비트코인 신기루 때가 유일했다. 서울 가까이에 바늘 하나라도 꼽을 땅을 갖는 것. 그곳이 이 난파선의 가장 안전한 칸이었다.

난파선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바다 밖을 내다보는 것은 사치였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잘리지 않는 삶을 위해, 그나마 안전한 칸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가르치고, 배웠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동료들에게

이렇게 IMF 사태를 겪은 국민으로서 그 상황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그 내막까지 잘 알진 못한다. 이 영화에서는 우리가 몰랐거나 간과하였던 내막을 꽤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이 국가부도 사태와 관련하여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떻게든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막으려고 혼신을 다하는 한국은행 사람들(김혜수, 조한철, 박진주, 권해효), 그런 상황을 보고 받고 난감한 관료(엄효섭), 그 상황을 알게 되었지만 국가나 국민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안위나 대기업 위주로의 재편을 생각하며 국민의 피해는 안중에도 없는 부패한 관료(조우진, 김홍파), 천재적인 투자 감각으로 오히려 IMF 사태를 역이용하며 큰 돈을 벌어들이는 투자의 천재와 그를 믿고 따른 사람들(유아인, 송영창, 류덕환) 피땀 흘려 일하는 중소기업 사장이지만 이런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하여 파산상태에 몰린 사업가(허준호) 이런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그때 벌어진 그 사건들을 재조명해주고 있다. IMF는 단지 외환위기 사태가 아니었다. 국가에서 외화보유고가 부족하여 외환위기에 닥쳐도 내수 경제가 튼튼하면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얼핏 생각될 수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 유아인이 도표를 그리면서 투자자들에게 아주 쉽고 간단하게 그 파장을 설명해주고 있다. 단지 딱딱한 도표 설명뿐이 아니라 해당 설명에 맞추어 다른 출연자들이 겪는 상황을 교차편집 방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마치 재연 영상으로 보여주는 알기 쉬운 국가부도 사태의 핵심 설명을 해주는 영화처럼 되었다. 실제로 당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 벗고 뛴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그 상황을 이용하여 오히려 돈을 벌어들인 사람들도 있었을테고, 안일하거나 책임회피에 연연한 관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보여주면서 '국가부도 = IMF'라는 등식이 애초에 존재한 것이 아니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1997년 국가 부도의 그 날 그리고 지금. 영화는 두 지점만 보여준다. 그 사이에 생략되어 있는 저마다 지난한 생존기를 복원해 채우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다시 돌아가 살펴볼 지점을 영화는 가리키고 있다.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여러 균열들의 원인을 1997년 그 난파선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라를 잃은 세대가 있었다. 어떤 세대는 전쟁을 치렀다. 불의한 권력에 자유를 빼앗긴 세대도 있었다. 모든 세대에는 저마다의 과업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국가를, 평화를, 민주주의를 물려받았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몫이 있을 것이다.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단단한 일상, 생존만큼 중요한 삶의 가치들을 교육할 수 있는 저녁. 그래서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작은 영웅이 될 수 있는 삶. 그것들을 마련해 낼 수 있다면, 우리 세대도 역사 속에 꽤 괜찮은 사람들로 기억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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