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권 뉴스프리존 논설위원장

리더십 경영을 언급할 때 나폴레옹 장군의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수직적 위계와 서열이 근간이 되는 군대라는 조직에서 수평적 가치를 존중했던 예화다. 나폴레옹 장군은 언제나 병사들이 장군의 지휘봉을 배낭에 넣고 다니도록 했다.

이유는 전쟁에서 장군이 유고시 병사들이 지휘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서다. 나폴레옹 장군은 부하들을 같은 반열에 두어 휘하 모든 병사들도 장군처럼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또 다른 일화다. 유럽을 점령한 나폴레옹 장군이 한밤중에 보초막 순시에 나섰다. 그런데 한 군데 보초병이 총을 옆에 세워 놓은 채 웅크리고 앉아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이를 본 장군은 보초병이 깰세라 살며시 총을 집어들고 대신 보초를 서줬다.

시간이 지난 후 깨어난 보초병은 자기 대신 보초를 서고 있는 사람이 나폴레옹 장군임을 알아차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때 장군은 징벌은커녕 사병이 얼마나 피곤하고 지쳤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위로를 해주었다. 이에 사병은 너무나 감격해 그 후 더욱 충성을 다했다 한다. 위의 두 가지 예화는 나폴레옹 장군의 수평적인 사고와 행동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지난 7일 서울 용산 육군회관에서는 창군 이래 최초로 병사들 중심으로 ‘장군에게 전하는 용사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색적인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에는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해 군 수뇌부가 참석해 병사들의 자유스러운 발표를 귀담아 들었다.

‘일병과 별을 달고 계신 장성 분들은 역할과 계급이 다를 뿐 같은 전우’라고 한 병사가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발표에 나선 사병들은 ‘자율성을 갖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해 달라’, ‘병사들을 인격체로 존중해 달라’, ‘지휘 책임의 범위와 한계도 재설정이 필요하다’ 등 소신에 찬 발언들을 쏟아냈다 한다.

규율과 명령과 복종이 기본이 되는 엄격한 군 조직에서 신세대 병사들은 철저한 수직적 위계에서 수평적 가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같았으면 하극상의 발언이다 싶을 이런 거침없는 쓴소리가 군대에서조차 가능해진 세상이다. 어느 병사의 말 맞다나 “시대의 지적 수준”이 높아져 병영문화도 급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기성세대들의 과거 군 복무 시절과 지금의 병영생활은 천양지간이다.

지금 세상의 문화체계가 급속히 바뀌고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곧 말 그대로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듯이 세상일의 변천이 심하다. 변화의 폭과 넓이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요즘 한국사회 문화 패러다임을 요약 정리하면 과거 ‘수직적’에서 ‘수평적’으로의 방향전환이다. 생각과 행동의 방식이 수평화 되면서 평등과 탈 권위의 사회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 수직사회처럼 권위를 바탕으로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성, 평등성, 합리성이 요구되는 수평적인 문화 패러다임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근래에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과 미투는 이런 수평적 가치에 비춰 과거 잘못된 우월적 지위의 남용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 가족형태의 경향인 황혼이혼이나 졸혼도 결국은 과거와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한다. 과거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가장의 군림과 지배의 가부장적 환경에서 여성들이 자율성과 평등성을 당당하게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는 모든 면에서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허물어지고, 과거의 권위가 퇴색되고 있다.

독일 사회사상가 막스 베버는 권위 이론에서 지배의 유형을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합리적 권위로 나누었다. 가부장제는 전통적 권위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서양과 달리 한국이라는 특정 문화권에서 전통적인 권위는 ‘강압적인 권위’나 다름없었다. 이제까지는 남자, 학벌, 출세, 돈, 권력, 연줄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우월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면 거의 무소불위의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준봉건적 사회문화였다.

그러나 지금 그런 과거의 적폐들이 급변하는 공정과 평등과 합리의 가치기준에 견주어 사회적으로 철퇴를 맞고 있다. 너무 단숨에 사회문화체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어가고 있어 여기저기서 새로운 가치 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다보니 합리적 권위를 지나쳐 거의 방임적 권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될 때도 있다. 스스로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소홀히 한 채 상대방의 잘잘못만 공격하며 ‘나는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는 아시타비(我是他比) 세태가 되고 있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절실한 것은 합리적인 권위다. 그것은 곧 리더십이다. 과거 강압적 권위의 시대에 보여준 것은 헤드십이나 보스십이었지 참다운 리더십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상호 인격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수평적 패러다임 리더십이다.

어떻게 보면 나폴레옹 장군이 실천했던 것처럼 수평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리더로 인정해 주는 자세다. 그래서 지금처럼 복합화, 다변화 되는 현대사회에서 그 리더들의 집합적 창의력을 통해 조직이나 사회가 발전하는 합리적 위계의 질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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