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자 단편소설〖존재의 집〗마지막회

그 후 나는 새로 집을 알아보고 근무하는 학교 근처에 오피스텔을 하나 얻었다.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나의 뒤통수에다 욕설을 퍼부으며 악다구니 쓰는 노파가 보였다. 차 안에 몸을 실은 나는 두 눈을 감았다.

‘저건 독사다!’

그날 밤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에서 나는 그 노파를 향하여 저주를 퍼부었다.

‘저런 악종들이 오래 살아서 선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빨리 병에 걸려 죽어라’

“빨리 죽어라, 악종아……!”

그날 밤 나는 살기가 가득하였다. 독한 저주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너무나 강한 그 열기는 창밖으로 유성의 꼬리처럼 공중을 뚫고 나간 듯 창밖에서는 이름 모를 빛들이 음산하게 반짝였다. 나는 혹시 길에서라도 그 노파와 마주칠까봐 겁이 났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난 어느 날 난 매월 삼십만 원을 은행에 적금하여 만기가 채워져 은행으로 돈을 찾으러 갔다. 번호표를 뽑아들고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낯익은 삼십대 초반의 여인이 나에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가끔씩 그 노파의 집에 찾아 왔던 시집 간 딸이었다. 딸은 그렇게도 강하였던 어머니께서 다정했던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시름시름하더니 결국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고 하였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었다. 순간 나는 온 몸이 떨렸다.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다음 날 아침,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고 월드컵 경기장 근처를 조깅하기 시작했다.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밝아오는 미명 속에 나 때문에 불행해진 것 같은 은지와 노파가 떠올랐다. 순간 엄숙하며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직 미명 속에 밝힌 가로등 불빛 속에 오래 전 쏟았던 불화살과 같은 붉은 기운이 공중의 석화처럼 반짝거렸다. 그것은 생명을 가지고 공중에서 펄럭이며 그 임무를 잊지 않고 내뱉은 자의 소원대로 일하고 있었다.

“아이 못 낳을 병신아!……”

“빨리 죽어라, 악종아!……”

공중에 그 기운이 돌아다녀 결국 그 열매를 맺고야 말았다.

나는 월드컵 공원의 숲을 빠져 나오면서 좀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쏘았던 독한 혀의 화살이 은지와 노파에게 꽂혔다. 나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고 두려워 견딜 수 없었다. 이제 은지를 위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언어들을 찾고 외치자!

이렇게 다짐하게 되자 비로소 두려움과 가책이 사라지고 은지의 새로운 존재의 집이 기대되었다.

그 후 나는 새로운 말들을 찾는 연습에 돌입하였다. 은지가 좋은 사람도 만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그것은 새벽별처럼 나의 가슴에 창조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였다.

며칠 후 핸드폰이 울렸다. 은지였다! 목소리가 매우 밝고 생명력이 넘쳤다.

“응, 나, 아들 낳았어! 다음 주에 백일이야. 너 꼭 와서 축하해 줘야 돼.”

살아있어 생동하고 있었다. 바로 내가 외친, 창조한 언어가 존재하여 다가왔다.

나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안고 밝아오는 저 여명 속에, 희미하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은지를 위한 존재의 집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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