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츠루하시, 디아스포라 ( Diaspora ) 문화원형과 스토리텔링이 존재하고 있다!

일본 츠루하시(鶴橋)역에서 오사카  이카이노 코리아타운 으로 걷다보면 일본의 청춘남녀들의 행렬(行列) 만나게 된다. 거의 대부분이 여성들이다. 그들과 함께 온 부모들도, 손녀와 같이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있다. 가는 중간 중간에 있는 '한류 쇼핑점'에 들어가보면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행 중인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들을 듣고 있는 그녀들의(초등학교에서 고등학생 중에서 주로 중학교 3년생 이하가 많아 보였다)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저학년 학생들이 많이 찾는 모습은 특히 이채롭다.

이곳의 모습은 주로 신(新) 이주민들인 뉴커머(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을 '올드커머'라고 부르고, 1970년대 이후에 이주하거나, 1989년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 이후에 일본으로 이주해서 일본에서 사업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뉴커머'라고 칭한다) 한국 청년사업가들이 운영하고 있는 일본 최대의 코리아타운인 도쿄의 신오쿠보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코리아타운의 규모로 보자면 도쿄 신오쿠보의 주변이 훨씬 크다.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배용준, 최지우의 '겨울연가' 열풍이 중년여성 중심으로 불 때 신오쿠보는, '한국 음식문화의 성지'(聖地)라고 불릴만큼 열풍에 빠진 일본인들로 이곳을 찾아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류의 기점으로 삼는 것은 2003년 '한류 붐' 그리고 '욘사마'(ヨン様) 배용준 이 일본 나리타국제공항에 입국했을 때 3,500여명 이상의 중년 여성팬들이 몰려 일본 전역에 큰 충격을 준 시기를 한국 드라마 '한류'의 절정으로 본다. 그 후 2016년 8월 배용준이 일본 나리타공항에  재방문했을 때 환영 인파가 15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일본에서는 드라마 '겨울연가' 붐의 종점(終點)으로 보고 있다.

이곳 오사카 코리아타운도 한참 한류 열풍이 불던 몇 년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열기가 줄어든 것 같다. 그래도 '겨울연가'에 몰입되었던 중년여성들이 아닌 일본의 청춘들이 '카라', '소녀시대', '동방신기'.'빅뱅',  'BTS' 등 계속이어지는 '한류'로 인해서 음식문화 콘텐츠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떡복이, 핫도그, 일본식 빙수가 아닌 한국식 팥빙수, 심지어는 최근에는 한국의 분식점 그대로인 점포 그리고 화장품, 한국의 유명 아이돌 가수 브로마이드(Bromide)를 구입하러 온 그들을 보면서 문화 콘텐츠를 통한 국가의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력을 곰곰히 생각하게 된다.

이곳 골목길 계단에 앉자서 한국의 '시그니처' 음식을 먹는 모습, 그리고 코리아타운으로 이어지는 행렬은 아직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이곳에 모여할 수 밖에 없었던 지역환경과 이주민들의 이민사 배경를 통해 형성된 츠루하시 상점가와 코리아타운은 그 오사카 '자이니치 이주민,(Diaspora)들의 문화문형과 그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일본에서 한국문화의 발신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 특유의 끈끈한 정(情)이 넘쳐나는 시장이다.

히라노강(平野川) /사진=조경환
일제강점기 제주도에서 오사카까지 운항되었던 '군대환'(君代丸) 그리고, 1950년 중반 제주도의 반농반어(半農半漁)의 모습./사진=제주도청

" 정기 여객선 군대환(君代丸·기미가요마루)는 일본 오사카상선주식회사는 제주~오사카 항로에 570명이 승선할 수 있는여객선이었다. 1922~1945년까지 운항했으며 군수산업이 발달한 오사카에 많은 제주도민들을 실어 날랐다. 1922년부터 1934년까지 약 5만 명의 제주도민이 오사카 등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25%에 달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오사카로 이주한 그들은 광부, 잡부, 세탁부와 막노동, 행상 등을 하며 삶의 터전을 잡았다. 현재 오사카에는 1세대 재일 제주인과 그 자손 등 8만5000여 명에 살고 있다. 특히 이쿠노구(區) 츠루하시는 ‘일본 속의 제주’라고 불릴 정도로 언어와 음식 등 생활 속에서 제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출처 : 제주新보
제주에서 오사카까지의 정기운항선 '기미가요마루'는1922년부터 1945년까지 운항되었다. 당시 상당수의 제주도민들이 이 여객선을 타고 일본 오사카로 진출했다. 지금은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한국국적의 정기운항선인 '팬스타 크루즈'가 운항되고 있다.

제주에서 오사카까지의 정기운항선 '기미가요마루'는1922년부터 1945년까지 운항되었다. 당시 상당수의 제주도민들이 이 여객선을 타고 일본 오사카로 진출했다. 지금은 부산에서 오사카까지 한국국적의 정기운항선인 '팬스타 크루즈'가 운항되고 있다./사진=조경환

당시 오사카는 인구만 211만 명으로 '동양의 멘체스터'라고 불릴만큼 방직업과 금용 그리고 상업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제주도 이주민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이 많이 유입된 계기는 저습지대였던  이곳의 '히라노강'(平野川)이 홍수로 인하여 자주 강이 범람하여 피해를 입자, 히라노강 개수공사에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이곳 공사장은 기피대상이었다. 이 히라노강의 개수공사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10년초 였다.  

이에 따라  '기미가요마루'(君代丸) 취항을 하면서 일본에 도항하여 일할 곳을 찾던 제주도 출신들이 이곳에 정착하고 살게되면서 조선인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게 되었다.  이곳 조선인 공동체에 있어서 제주도의 풍속, 풍토, 음식, 주거 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바로 '조선시장'(朝鮮市場)의 출발점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일본의 천민자본가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1910년 12월 조선에서 회사를 설립할 때 조선 총독부의 허가를 받도록 한 '회사령'이 공포되고 조선인들의 민족자본의 육성을 억제하면서 조선인들의 제대로 된 일자리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룸펜'이라고 불릴만큼 별다른 직업도 없이 방황하고 있었으며, 일본에서 유입되어진 천민(賤民) 자본들은 흥행업,전당포업, 매춘업, 고리대금업 등 그들은 건전한 기업자본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노리면서 조선의 각 지역에 진출해 있었다. 그리고 일본내 중견 자본기업의 수준에서 많이 뒤쳐진 이들이 자금의 회전 속도가 빨라야하는 '소자본의 상업주인'(小商業主人, 소상업주) 들이 조선의 각 분야에서  영리활동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니까 조선에서의 일자리를 찾지못한 당시 조선인들은 부산이나 제주도를 통해 시모노세키나 오사카를 거쳐 당시 건설 등의 노동력이 부족했던 일본의 각 지역으로 진출하게 된 것이다.저습지대인 히라노강 주변의 환경들이 좋지 않아서 일본인들의 기피대상 주거지였던 만큼 건강한 육체만 있으면 일자리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할 장소와 숙소 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해결만 되면 정주(定住)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어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 살면서 또한 제주도의 친척들을 부르게 되었고 이국(異國)에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생활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조선의 식재료 가게가 생겨나면서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 당시 츠루하시역 근처에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시장 상점들이 주를 이루어지만 서서히 그들의 시장은 그 규모가 점점 작아지면서 밀려나서 지금은 코리아타운으로 가는 방향에 있는 수산물도매시장으로 특성화되었다. 그래서 츠루하시역에는 '국제시장'이라고 불리던 상점가와 히라노강 주변으로 이곳에서 사는 조선인들을 식재료나 기타 일상의 생활필수물품들을 유통시키는 오사카 '이카이노 조선시장'이 형성되었다. 

오사카 JR전철 '츠루하시(鶴橋)역

오사카의 중심지인 지하철 센이치마에선(千日前線) 오사카난바(大阪難波)역 에서 세번째의 지하철역인 츠루하시역에 내려서 지하도를 걷다가 지상 출구로 나오면 우선 식당에서 고기굽는 냄새와 그리고 마치 동대문 재래시장이나 종로 5가 광장시장을 온듯한 분위기의 츠루하시 상점가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한복점들이 무척 눈에 띤다. 그리고 이곳 상점가 골목마다 마치 한국 재래시장의 같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의 소규모 국제시장(암시장)으로 시작된 이곳은 연재 점포수만 츠루하시 상점가를 중심으로 그 주변만해도 거의 1,000 여개에 이른다. 

역전 시장 골목상점마다 김치, 장아찌, 마른반찬, 떡 등을 팔고 있으며, 한복집과 같은 포목점, 한식당, 한류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이곳에 있다. 또한  김밥, 떡복이,부침개, 젖갈, 순대, 천엽, 닭강정, 돼지머리고기 등을 팔고 있다. 츠루하시역 상점가는 거의 한국의 동대문, 광장시강과 같은 재래시장 모습 그대로이다. 특히 제주도에서 오랜 전통시장으로 잘 알려진 '제주 민속오일장'의 상인들의 정(情)다운 모습이 연상된다.

오래 전통의 포목상과 골목시장의 형성되어 있는 종로 '광장시장', 츠루하시역 상점가의 모습이 이 시장과 유사하다./사진=조경환

제주도 '민속오일장'
제주 민속오일장은 1906년 제주시에 개설된 주성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 제주시민 오일장이다. 주성장은 성 안에 있다고 해서 성안장이라고도 불렸다. 제주시민속5일시장은 전국적으로 전통시장이 약화되는 것과는 달리 장날이면 차량 정체 현상을 빚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하영사갑소’( '많이 사가세요'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 '쉬엉갑서'('쉬어 가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 로 대표되는 소박한 제주도 장터에 푸짐한 인심이 오사카 '츠루하시 시장(市場)' 과도 닮았다.

이곳 츠루하시역은 ‘ 도시 순환선인 JR 大阪 환상선’(環状線, Ōsaka Loop Line)이나 지하철 오사카 킨테츠((近鐵)선을 타고 갈 수 있는 교통이 편리한 위치에 있다. 그만큼 츠루하시역 상점가는 지리적인 위치로 보아서도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핵심 상권이다. 그러나 이곳의 정확한 명칭은  '국제시장'이다.

오사카 츠루하시역의 가장 큰 특징은 고기굽는 냄새라고 할 수 있다. 저녁에 식사를 하러 오는 일본인들도 그러한 냄새를 은근히 즐기려고 하는 것 같다. 과거 김치와 마늘 냄새에 대한 거부감들이 많았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식탁 주메뉴로서 '김치'(キムチ, Kimuchi)를 선호하면서 생각들이 변한 것이다.

이쿠노쿠 '코리아타운'은 츠루하시역에서 내려서 15분 정도를 걸어가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보통 츠루하시역 상점가를 '코리아타운'으로 착오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곳은 과거 '국제시장'에서 시작된 상점가로 운영주관은 '츠루하시역 상점연합회'이다. 히라노강 주변의 '조선시장'이 1993년부터 '코리아타운'(일본어: コリアタウン)이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서 부터 현재에 이른다. '코리아타운'은 츠루하시역에서  '쇼카이'(疎開)도로의 남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좌측 골목길에 보인다. 

이곳은  '미유키모리신궁'(御幸森神宮)의 동쪽 방향에 있는 '미유키모리상점가'(御幸森商店街)를 통칭한다. 이곳 시장은 '오사카 코리아타운'(大阪コリアタウン), '이카이노 코리아타운'(猪飼野コリアタウン), '모모다니 코리아타운'(桃谷コリアタウン)이라고도 불린다.

츠루하시 역상점가의 '한복집', 가장 놀라운 것은 한국 재래시장과 똑같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사진=조경환
츠루하시역 근처에는 일본식 불고기인 '야키니쿠식당'들이 즐비하다./사진=조경환

과거 이곳 '조선시장'은 일본인들의 기피대상이었다. 그리고 시장 전체가 정비가 되지 않아서 시장은 각종 쓰레기들이 난무했다. 또한 마늘과 김치 숙성, 돼지 삶는 냄새 등과 함께 저습지대에서 비롯된 시장 환경으로 인해서 주로 일본인들은 츠루하시의 어시장(漁市場)을 찾았고 이곳 조선시장을 거의 찾지 않았다. 그래도 오사카 지역의 '자이니치'에게는 식재료의 공급처로서 주요 시장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와 같은 대형 문화 이벤트가 한국에서 개최되고 당초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서울아시아대회의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일본 매스 미디어(mass media)로 부터의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었다. 

한국전쟁은 아직 휴전 중이며 사회 치안은 불안하고 국민들의 공중도덕 수준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으로 바라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신하는 매스 미디어를 통해 문화와 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 이미지를 모습을 보면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전쟁의 이미지가 강렬했던 만큼이나 발전된 한국의 경제, 문화, 사회의 모습은 일본사회에 있어서 가히 충격적이었다.

1986년 아시아대회에는 자국내 붐조성에 있어서 소극적이었던 일본의 경우, 당시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인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 일본의 국영, 민간 방송사에서 대거 한국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을 대거 편성하였고 방영했다. 대부분의 한국의 주요 관광지와 연계된 한국의 먹거리인 음식들에 관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전통과 현대의 문화가 고유의  '김치',' 불고기' 등을 소개하면서 일본내에서의 한국문화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부터 한류는 시작된 것이다.

또한 2002년 한일 공공 월드컵대회에서 한국이 선전하면서 많은 일본 매스컴들이 호의적인 국가 이미지를 한국으로부터 발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드라마, 영화 그리고 K-팝과 같은 한류(韓流) 열풍이 이어지면서 일본내 코리아타운들로 일본인들이 모여들었고 한국음식에 대한 붐이 조성되면서, 한국음식에 대한 호감을 갖는 일본인들이 늘어났다. 

실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국가 이미지가 손상된 점을 감안하면 상상하기 힘든 일대의 사변(事變)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대형 이벤트가 국가 이미지에 끼치는 영향력은 지대했다.

이쿠노 츠루하시역 상점가에 들어선 야키니쿠 음식점들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요리'도 아니고 '조선요리'도 아닌, 일본인들의 입맛을 맞춘 것이 이 '야키니쿠'( 焼肉 やきにく)였다. 먼저 양념을 해서  만들어 먹는 한국식 불고기와는 다르게 생고기를 '고기판'에 우선 구운 다음에 별도로 만들어진 양념장에 찍어먹는 개량된 불고기 요리인 '야키니쿠'와 함께 '내장요리'(ホルモン焼き)는 츠루하시 음식점의 대표 이미지가 되었다.

일본의 중년여성을 중심으로 한류 열풍의 계기가 된 '겨울연가' , 한국음식의 호감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일본에서 2004년부터 ‘겨울연가’로 일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드라마를 비롯해 영화, 그리고 대형서점에 한류스타 코너가 별도로 운영될 정도로 상상 이상의 열풍을 가져 왔다. 처음 NHK 심야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드라마가 중년주부들의 열광적인 성원에 힘입어  처음에는 일본성우들의 더빙으로 방송된 ‘겨울연가’는, 시청자 요청에 의해 황금 시간대로 편성되어 NHK를 통해 한국어 그대로 재방송되어 2004년도에 최고의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당시 급히 발매된 비디오만 40 만 세트 이상이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에서 드라마를 통한 '한류'(韓流)의 시발점이었다.

츠루하시 코리아타운의 '한류열풍'은 일본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사진=조경환

저명한 프랑스 경제사회학자인 기 소르망은 ‘문화 없이는 훌륭한 국가도 발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되새겨야한다’ 고 강조하고, 이는 문화가 국가경제에도 기여하는 효과가 지대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국가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이 이제는 다량 생산을 통한 무역의 경쟁이 아니라, 예술창자가들 즉 미술가, 작가, 영화인, 가수 등도 그 어떤 국가의 지도자보다 훌륭하게 서방에서 한국의 대사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만큼 문화 예술의 산업화는 과거의 순수예술에서 벗어나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국가 문화 콘첸츠의 기능이자 역할을 하고 있음은 고도의 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며, 만약 한류(韓流) 엄청난 국가 전파력도 강력한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국가의 문화 코드가 전혀 문화의 자본력(資本力)이 서로 상이한 타 국가에 전파되고 큰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바로 미디어의 글로벌화에 근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문화 예술 산업화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계기가 '한류의 붐'이였다고 생각한다.

오사카 츠루하시는 조국을 떠나 집단이 모여서 생활하고 있는 자이니치(在日)들이 고유의 의식을 가지고 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 Diaspora ) 문화원형과 스토리텔링이 존재하고 있어서 그 한류의 의미가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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