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권 칼럼니스트

요즘 저는 tvN 드라마 24부작 ‘미스터 션샤인(2018.7.7~9.30)’에 흠뻑 빠져 살았습니다. 내용은 신미양요(辛未洋擾 : 1871)때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떨어진 한 소년이 미국 군인 신분으로, 자신을 버린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와 주둔하며 일제와 싸우는 일을 그린 드라마입니다.

사실 그 당시조선은 풍전등화(風前燈火)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친일로 나라를 팔아먹는 자들과 이에 맞서 싸우는 의병(義兵)들의 저항은 가히 처절한 바가 있었지요.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유진초이(이병현 분)’의 대화 한 장면이 아주 인상이 깊었습니다. “주는 것과 빼앗기는 것은 다릅니다. 주는 것은 다시 찾아올 수 없지만 빼앗기는 것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통절(痛切)한 저항과 투쟁 그리고 그들의 ‘지조(志操)’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본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지조라는 말이 거의 사라진 것 같아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다.

지조란 무엇인가요? 원칙과 신념을 지켜 끝까지 굽히지 않는 꿋꿋한 의지(意志)나 기개(氣槪)를 말합니다. 그 지조를 청록파(靑鹿派) 시인 조지훈(趙芝薰 : 1920~1968)의 ‘지조론(志操論)’에서 한 번 찾아봅니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慨歎)하고 연민(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驚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후략-」

구한말에 대원군(大院君) 뺨을 때린 장수가 있었습니다. 지조를 지킨 이장렴(李章濂)이라는 장수이지요. 조선 후기의 왕족인 이하응(李昰應 ; 1820~1898)은 조선왕조 제26대 고종의 아버지입니다. 세간에서는 대원위대감(大院位大監)이라 불렸습니다.
이하응이 젊었던 시절, 몰락한 왕족으로 기생 춘홍(春紅)의 집을 드나들던 어느 날, 술집에서 추태를 부리다 옆자리에 있는 금군별장(禁軍別將) 이장렴과 시비가 붙게 되었습니다. 화가 난 이하응이 “그래도 내가 왕족이거늘 일개 군관이 무례하다!”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이장렴은 이하응의 뺨을 후려치면서 “한 나라의 종친이면 체통을 지켜야지 이렇게 외상술이나 퍼마시며 왕실을 더럽혀서야 되겠소!”하며 호통을 쳤지요. 이하응은 뺨을 얻어맞고도 할 말이 없어 술집을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이후, 이하응은 대원군으로 섭정하던 어느 날 이장렴을 운현궁(雲峴宮)으로 불렀습니다. 이장렴은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고 운현궁으로 가면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각오로 가족에게 유언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이장렴이 방에 들어서자 흥선대원군은 눈을 부릅뜨면서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이장렴은 “대감께서 지금도 기생 춘홍이 집에서 하던 것과 같은 행동을 하신다면 이 장렴의 손을 이장렴의 마음이 억제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이장렴의 말에 흥선대원군은 “조만간 그 술집에 다시 가려고 했는데 자네 때문에 안 되겠군. 하하하하하!”라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무릎을 “탁!” 치면서 “좋은 인재 하나 얻었다. 술상을 들이도록 하라!”라고 하며 이장렴을 극진히 대접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이장렴이 “자네는 이 자리에서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대감 그때는 소인이 경솔한 짓을 했습니다. 용서해주십쇼!”라고 했더라면 이장렴은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장렴은 권세에 눌리지 않고. 지조(志操)를 지켜 목숨을 구하고 또 금위대장(禁衛大將)까지 되었던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지금 나라가 몹시 혼란합니다, 이럴 때 이 사회에 자신의 지조를 당당하게 지킬 인사가 얼마나 될까요? 교목세신(喬木世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신이란 곧 대대로 나라를 받들어 나라와 가문이 운명을 같이 할 만 한 중한 신하를 말함입니다.

그리고 옛날 백제(百濟)는 처음에 열 사람의 세신이 있어 ‘십제(十濟)’라 이름 하였다가 후일 백 명의 세신이 있게 되어 ‘백제’이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도 천인이면 천인, 만인이면 만인 모두가 나라와 운명을 함께하여 천하의 권리라도 흔들지 못하고, 금은과 보패(寶貝)로도 흔들지 못하는 지조 있는 동지들이 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10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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