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일본이 중국을 따라가고 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긴데 이런 주장을 하는 책이 나왔다. 일본의 역사학자 요나하 준이 쓴 책 '중국화 하는 일본'이 바로 그 책이다.

중국에 잠식당할 운명의 일본에 대한 경고일까? 일단 이 책의 제목과 저자의 국적을 확인하면 그런 생각이 먼저 들 수 있다. 저자는 그런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그에 대해 분명히 말해 둔다. 그런 류의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인터넷 게시판에나 가보라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역사전공학자들에겐 정설화 된 송나라 이후 근세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미 천년 전에 근세를 이룩한 중국을 일본이 이제서야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을 수긍하는 관건은 송나라 근세설에 있다. 송대에 군현제와 과거시험이 실시되어 세계 최초로 귀족계급이 폐지되었다. 수확물을 화폐로 바꾸어 내는 청묘법으로 중국의 모든 백성이 돈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신분제의 철폐와 화폐의 사용으로 중국에 이동의 자유, 영업의 자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생겼다. 주자가 집대성한 유교가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뒷받침했다.

중국이 근대화의 상징 같은 법의 지배나 인권, 의회제 민주주의 등의 과정이 없이 근세에 도달했다는 게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원래 왕의 지배에 대항한 귀족들의 기득권이라고 한다. 공정한 재판이나 인권, 정치참여 등 같은 귀족의 권리를 하위 신분과 나누는 과정이 바로 유럽의 근대화라는 것이다. 게다가 서구 근대화 이끈 계몽주의는 신의 개념을 제거하고 순수하게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는 송나라 유학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송나라 근세의 결과 세계 최강대국이 된 중국은 16세기 세계의 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산더미 같은 중국 상품을 세계시장에 내어놓은 은의 대행진을 만들었다. 중국과 무역을 통해 부를 경험한 유럽은 더 많은 은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고 이는 혁신의 욕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대량의 은의 유입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유럽에 투자의 기회도 발생시켰다. 저자는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서유럽의 산업혁명이라고 한다.

일본이 이제서야 중국화 한다고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지금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가 중국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주권국가를 넘어선 전 세계적 정치이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근대 유럽에서 전쟁은 주권국가의 국익을 최대화 하는 정치수단이라고 봤지만 이제는 한 나라의 사리사욕을 위한 전쟁은 부정된다는 것이다. 당선되자마자 오바마에게 평화상을 수여한 것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게 이러한 보편적 정치이념을 따라달라는 당부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보편적 유교원리로 일극지배자인 황제를 통제한 중국과 닮은 모습이다.

저자는 중국의 지배체제를 "세계 유일의 절대성을 자처하는 보편적인 유교원리를 왕권이 제시함으로써 본래 잡다할 수밖에 없는 민심을 경쟁적으로 중화 아래로 모여들게 하는 정치 기술"이라고 말한다. 보편적 유교원리를 따른다면 누구든 중국을 지배할 자격이 있는 이 범용성 높은 시스템을 몽골과 만주족이 사용했다. 지금은  세계가 이 시스템을 따라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근세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중국화라는 개념을 끌어들여 일본의 현실을 비판하는 책이다. 하지만 일본 내부 사정에 밝지 못한 일반인들에겐 중국화라는 개념이 더 관심을 끈다. 일본과 연결지어 말하는 부분은 생소해서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좋게 보면 님도 보고 뽕도 딴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고 이웃나라 일본의 사정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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