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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을 기다리는, 유해 발굴 <해원>, 정통성 없는 정권의 민간인 학살

기사승인 2018.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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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포스터 뒷면.ⓒ 레드무비

[뉴스프리존= 안데레사 기자] 16만 2,394명. 한국 전쟁 때 희생된 국군 전사자와 실종자의 수이다. 이 가운데 현충원에 안장된 장병의 수는 겨우 3만여 명, 나머지 13만 장병은 한반도 아래 묻혀 누군가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다. 보도연맹 학살사건, 제주도 4.3사건, 여순사건 등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사라져간 많은 시민들의 유해도 여전히 그 행방을 찾을 수 없다. 지난 정부는 전사자들에 대한 유해발굴만 한정적으로 실시하고 있을 뿐, 학살 등으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발굴에 대해서는 전혀 지원하지 않았다.

2000년대 이전 우리나라에서는 산업화 등으로 인해 건축 사업이 우선시되는 분위기에 밀려 정부 주도의 유해 발굴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필요성만 제기됐다. 이 와중에도 1995년‘ 고양 금정굴 양민학살사건’의 피해자 유해 153구를 발굴해낸 사례처럼, 민간 주도의 유해 발굴이 이뤄지기도 했다. 2000년 이후에는 정부 주도의 유해 발굴 사업이 탄력을 받는다.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이 진행됐고 이 사업이 커져 2007년에 국방부 유해 발굴감식단이 발족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 당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실미도 사건 관련 유해 발굴을 진행했으며,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활동 일환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조사를 실시해 1,617구의 유해를 찾아내기도 했다.

백성을 죽인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

두 정권의 그 같은 만행을 다룬 다큐 영화가 개봉, 지난 4월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시사회를 가진 영화 <해원>이다. 이날 시사회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제주 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4·9통일평화재단(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모),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국회의원 모임, 새사회연대, 법인권사회연구소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민중의 소리> 기자를 겸하고 있는 구자환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다. 

<해원>은 1946년 대구 '10월 항쟁'부터 본격화돼 제주 4·3과 여순사건(여수·순천 사건) 등을 거쳐 한국전쟁 기간까지 계속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생생히 증언한다. 한국전쟁 중의 학살로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노근리 학살, 금정굴 학살 등이 유명하지만, 이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해방 뒤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대략 10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는 그런 학살 흔적들을 차근차근 밟아나간다. 

▲영화 <해원> 스틸 컷ⓒ 레드무비
▲영화 <해원>의 한 장면ⓒ 레드무비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10월 이른바 좌파 전향자들을 가입시켜 만든 조직이다. 이들에게 갱생의 기회를 준다는 게 창립 취지였다. 그런데 좌파 성향과 무관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이 조직은 반(反)이승만 성향의 국민들을 관리하기 위한 기구였다. 선거 때 이승만을 찍지 않을 사람들 중 일부를 가입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정권은 이들을 잡아들이고 마구 죽였다. 최소 5천 명이 죽었다고 하지만, 최대 20만에 달할 거라는 추정도 있다. 좌파 성향을 버리면, 아니 정확히 말해 미국과 이승만을 반대하지 않으면 새 삶을 주겠다고 약속해놓고 그런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북한군·중국군과 전투하기도 바빴을 시간에 그런 만행에 탐닉돼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민간인 학살에 얼마나 광분했는지 보여준다. 이 점은 한국전쟁이 벌어지자마자 학살 대상자를 확대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보도연맹 회원들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도 학살이 자행됐다. 영화는 전쟁 발발 3일 뒤인 1950년 6월 28일부터 전국 곳곳의 형무소에서 집단 학살이 자행됐다고 고발한다. 전쟁 이전에 학살을 모면하고 감옥에 투옥됐던 이들의 상당수는 이때 학살을 당했다.

현재는 유해 발굴에 대한 정부의 전반적 활동들이 활발히 진행하고있는 상태이다. 진실화해위의 활동이 정리되면서 정부는 민간인에 대한 유해 발굴조사를 멈췄던 9년만이다. 지난 정부는 발굴사업에 배정된 국가예산조차도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사업을 진행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사자의 유해 발굴에만 예산을 지원하고 있으나, 이 또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유해 발굴사업의 예산 편성이 비합리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정부는 국방부에 리비아 내전 중 발생한 리비아 민간인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지원 사업비로 13억여 원의 예비비를 배정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정부와 국방부가 자국의 유해 발굴에는 미온적이면서 다른 국가의 사안에는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해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유해 발굴사업이 정체된 현실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나서 유해 발굴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1995년부터 북한에서 전사자들의 유해를 수거하고 민간과 협동해 해저유해 발굴도 하는 등,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유해 발굴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중남미국가들은 학살 등에 의해 사라진 민간인들의 유해에 대한 발굴 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정부에서 유해 발굴 전문가들로 구성된 EAAF라는 기관을 조직해 발굴 사업을 펼치며, 과테말라 정부도 FAFG라는 비슷한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의 부족한 지원을 뒤로 하고, 최근 다시 민간 주도로 유해 발굴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 달 3일에는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이 진주에서 보도연맹 학살사건의 피해자 유해 35구를 발굴해내기도 했다. 이번 발굴단에 참여한 한국전쟁유족회 조동문 사무국장은 “유해를 발굴해도 보관할 곳마저 없는 현실”이라며“ 정부는 법 제정 책임을 국회에 넘기지 말고 사명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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