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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세계시민의 관용

기사승인 2018.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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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을 겪으며 발생한 난민을 미국과 일본, 그보다 더 머나먼 제3국으로 떠나 해외동포가 되었습니다.

세계시민의 관용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가히 살인적인 폭염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득 이 무더위에 제주도에 입국한 예맨 난민의 처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예멘인 난민 549명의 난민 심사가 이번 주에 시작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난민 문제는 이제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열기를 더합니다.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예멘 난민의 심사는 난민 법에 의해 이뤄지며 1차 심사를 거쳐 이의신청을 받는 2차 심사 2단계로 이뤄진다고 합니다.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정치적 견해 등이 판단 기준이 된다고 하네요. 무엇보다 아랍 쪽의 경우에는 정치적 박해 위험성과 테러조직 연관성도 심사 대상에 포함됩니다.

1994년 4월 처음 난민 신청을 받은 후 지금까지 4만 470명 중 2만 361명의 심사가 끝났고 그중 약 4.1%인 839명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난민 인정받기 쉽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국민 중 일부는 이들이 이슬람 국가 출신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아니냐는 공포에 휩싸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슬림이라고 해서 다 같이 극단주의자이거나 가부장적인 요소가 강해서 여성을 무조건 천시하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주의자 대다수는 예멘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요. 이들이 만약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따라서 인권적인 문제로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인도주의자의 입장입니다.

예멘 난민들이 출구로 삼는 국가는 떠나온 예멘보다 나은 삶의 조건을 갖춘 곳일 것입니다. 이제 오랜 분쟁지역인 예멘에서 탈출해 온 난민 문제는 우리에게 세계시민으로서의 관용을 보여줄 기회로 다가온 셈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도 난민과 망명으로 세계시민 사회의 관용적 혜택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만주벌판과 상하이 등지를 떠돌았던 독립운동 가들을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받아준 적이 있습니다. 또 해방 직후 제주 4·3 사건 대학살로부터 도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제주 난민들은 오사카에 ‘이쿠노 코리아타운’을 형성한 것이 오늘 날 재일동포가 된 것입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발생한 난민을 미국과 일본, 그보다 더 머나먼 제3국으로 떠나 해외동포가 되었습니다.

요즘 방한 중인 미국의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수치라고 일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 법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의 경우 동의한 네티즌이 39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정부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네티즌들은 오는 7월 30일 서울시청 앞에서 난민 반대 집회를 열기로 했다고 합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예멘 인들을 제주도에 묶어두는 바람에 육지의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방치되는가 하면, 인천과 제주도로 떨어져 이산가족이 된 형제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체결한 난민 지위에 관한 국제협약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이 협약은 난민이 난민 신청 국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합니다.

우리나라는 2013년 7월부터 난민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난민 신청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정부는 하루빨리 국내법과 국제협약에 규정된 난민의 권리와 보호의무, 처리절차 등을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 오해와 부작용을 막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다가 국제사회에서 ‘인권 불량국가’라는 오명을 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삼동윤리(三同倫理)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불교의 제2대 종법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송규(宋奎) 종사가 제창한 세 가지 윤리강령이지요. 이 삼동윤리는,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의 일원주의(一圓主義)에 입각하여 다원적 개방사회를 지향하는 현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 · 민족 · 국가 · 사회가 다함께 실천해야 할 윤리의 방향입니다.

첫째, 동원도리(同源道理)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교파가 그 교리나 제도 또는 형식에 있어서는 각각 특색과 차이점이 많으나,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의 근원적 진리에 바탕하고 있으며, 그들의 궁극 목표 또한 이 진리의 실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인들은 각자의 특수성을 살리고 종파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 하나의 근원적 진리의 광장에서 서로 만나고 이해하며, 나아가 모든 인류의 진리 화와 이상세계의 실현에 상보적으로 협조, 노력하자는 것이지요.

둘째, 동기연계(同氣連契)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인종 · 민족 · 국가 · 씨족의 구별이 있으나, 그 근본을 추구하면 온 인류와 생령(生靈)이 한 근원에서 나온 동포요, 한 기운으로 연계된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이러한 동기연계의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에 입각하여 좁은 국한을 트고 대립과 투쟁관계를 벗어나, 한 집안 한 권속의 세계시민으로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상부상조하여 평화세계 건설에 다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지요.

셋째, 동척사업(同拓事業)입니다.

서로 다른 모든 사업과 주장도 그 근본 동기는 이 세상을 보람된 삶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데 있는 것이며, 또한 직접 간접으로 이 세상을 개척하는 데 한 힘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자기의 사업과 주장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의 사업과 주장을 배척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협조하며 상대의 장점을 수용하여 다 함께 이상세계 건설에 노력하자는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송규 종사는「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라는 게송(偈頌)으로 이를 표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제 세계시민의 관용을 보여 줄 때가 왔습니다. 심지어 초목까지라도 한 집안 삼는 우리들의 입장에서 예멘 난민이라고 거부하는 것은 세계시민의 자격을 의심 받을 수 있습니다. 5천만의 인구 중 겨우 500명 정도야 우리가 포용해도 대세에는 영향이 없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7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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