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는 항상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마음, 상심(常心)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상심은 고정된 마음을 말합니다.

성자의 길
여생(餘生)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요? 이제 제게는 별로 욕심이 없습니다, 다만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성자(聖者)의 길은 가고 싶을 뿐입니다. 성자란 덕과 지혜가 뛰어나고 사리에 정통하여 모든 사람이 길이 우러러 받들고 모든 사람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어디 쉬운 길이겠습니까? 성자가 되고 싶다면 자신이 성자가 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성자를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자는 성자라야 능히 성자를 알아본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성자가 아닌데 어떻게 성자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성자를 알아보지 못해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성자에게 인정을 받은 사람이 곧 성자가 아닐까요? 원불교에서는 <법의 사다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앙과 수행에 철저하여 법의 사다리를 올라가 삼대력을 갖추면 자연 성자의 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자(孔子)의 제자 안연(顔淵)이 있습니다. 3천 명이 넘는 제자 가운데 공자가 가장 사랑하고 믿으며 크게 칭찬했던 제자가 안연이었습니다. 안연이 두고두고 사용하던 말이 있습니다.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순임금처럼 노력하면 순임금이 될 수 있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 亦若是)”라는 내용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 1762~1836)이 아들에게 보내 편지가 있습니다. “폐족(廢族)이야 벼슬하는 일에야 배척을 당하지만, 성자가 되는 일이나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通識達理)의 선비가 되는 일에 무슨 장애가 있겠느냐?” “말하여 되려고 힘써서 안 되는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우리도 성자가 될 가능성과 희망의 멋진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누구라도 노력하면 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홀로 삼가 하여 하늘을 섬기고(若愼獨以事天), 애써서 관용과 용서로 인(仁)을 구하여 또 오래오래 쉼 없이 지속할 수만 있다면(强恕以求仁 又能恒久而不息) 그게 바로 성인이니라(斯聖人矣)”이라고『심경밀험』에 성자가 되는 길을 밝혔습니다.

노자(老子)《도덕경(道德經)》49장에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이란 말이 나옵니다. 성자는 항상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마음, 상심(常心)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상심은 고정된 마음을 말합니다.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다짐인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켜 놓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배척하면 오로지 자신에게 복종하는 사람만 가득찰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는 사람은 그 주위에서 견딜 수 없게 되지요.

성자는 스승입니다. 스승이 고정되고 절대적인 마음을 가지면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게 됩니다. 특정한 사람만 좋아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배척한다면 그 조직은 갈등과 반목만 가득할 것입니다. 스승의 마음은 한 곳으로만 가서는 안 됩니다.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진정한 스승인 것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들의 카페 [덕화만발]의 <역사대하드라마 방>에 올려 져 있는 ‘삼국지(三國誌)’에 푹 빠져 삽니다. 그 드라마에서 유비가 성인의 리더십을 잘 발휘해 마침내 촉(蜀)의 황제에 오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의제(義弟) 관우와 장비를 오나라에 잃은 분노로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동오(東吳) 육손 대도독에게 화공(火攻)을 당해 70만 대군을 잃고 마침내 세상을 하직하게 되지요.

유비는 ‘이백성심위심(以百姓心爲心)!’ 백성(百姓)의 마음을 그 마음으로 삼는다는 교훈을 잊었습니다. 성자 제갈량의 충고도 외면합니다. 고집과 편견, 자만과 분노가 가득 차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는 상상을 불허하는 무지무지한 패배를 자초하고 만 것입니다.

성자는 고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과 여론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가진 사람이 스승입니다. 성자의 다섯 가지 덕목(德目)이 있습니다.

첫째, 상대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성자의 마음은 한 곳으로만 가서는 안 됩니다.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진정한 성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 고집과 아집(我執)을 버리면 모두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리기 쉽습니다.

《노자 도덕경》에 ‘다언삭궁(多言數窮)’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 없는 가르침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성자의 꿈과 비전을 공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말이란 그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면 자연 사람들이 따라오게 마련이지요.

셋째, 큰일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소성대(以小成大)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불교 창립정신의 하나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작은 것으로부터 커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소성대는 천리(天理)의 원칙입니다. 성자가 명심해야할 덕목이지요.

넷째, 하루에 세 가지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논어(論語)》에 ‘오일삼성(吾日三省)’이라 하였습니다. 남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도반 동지에게 신의(信義)를 지켰는가? 새로운 진리를 완전히 깨우쳤는가? 매일 하루를 뒤돌아보며 세 가지 반성을 한다면,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것이고, 조금 더 성자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위기가 아니면 싸우지 않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에 ‘비위비전(非危非戰)’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익이 없다면 군대를 움직이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전쟁은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성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이렇게 감정과 분노를 잘 조절 할 줄 알아야 성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성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성자는 상심(常心)이 없습니다. 내 고집과 아집을 버리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7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