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이 자살하면서 인정한 4천만 원 불법자금 수수는 유무죄 다툼도 가능했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자살했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우리 언론들은 그의 죽음이 확인된 순간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라고 쓴다. 그의 직함 앞에 전(前)이 붙은 것이다. 그리고 고(故)가 그의 이름 앞에 붙게 될 것이다. ‘故 노회찬 前 정의당 원내대표’…

▲ 다시는 볼 수 없는 노회찬의원의 미소 ⓒ인터넷연대

故노회찬 前 원내대표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사이다 노회찬’으로 기억할 것이며 싫어했던 사람들은 ‘비겁한 노회찬’으로 기억할 것이다. 즉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의 사이다 발언과 죄도 아닌데 목숨으로 갚은 의로운 정치인’으로 기억하며, 그를 싫어한 사람들은 ‘정의로 포장하고 그 포장이 벗겨지자 자살한 비겁한 노회찬’으로 기억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 노회찬은 생전 재치있고 논리적인 입담을 과시하며 정치권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불어 넣어 준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가 높았다. 특히 그의 판갈이론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즉 17대 총선 당시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와 “50년 동안 한 판에서 계속 삼겹살을 구워 먹어 판이 새까맣게 됐으니 삼겹살 판을 갈아야 한다”고 말해 적절한 비유로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은 것이다.

물론 그의 판갈이론이 먹혀서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17대 총선은 기존 정치판을 갈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소속된 신생정당 열린우리당이 원내 152석의 과반을 차지했고, 노 의원 자신이 당선된 민주노동당도 헌정사상 최초로 진보정당이 원내 10석을 얻는 기염을 토했다.

노회찬은 또 종북 논란에 대해 “원조 종북이라면 박정희 장군”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로당 경력을 부각시켜 민노당 종북몰이에 대항했고, 삼성그룹을 비롯한 재벌들의 불법과 비리에 추상같이 질타했다. 그리고 현 자유한국당 계인 보수정당 정치인들의 불법비리에 대해서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다.

더구나 최근 노 의원은 국회 특활비 논란에 대해 더욱 날카롭게 반응했다.

자신이 평화와 정의모임 원내대표로 받은 특활비를 반납하겠다면서 특활비의 부정적 사용을 질타하고 특활비 폐지를 주장했다. 이 괴정에서 노 의원은 “4월, 5월, 6월 세 달에 거쳐 교섭단체 원내대표로 수령한 매달 천만 원 이상의 특할비를 양심상 도저히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정의당이 매달 1,000만 원 이상 받는데 자유한국당은 얼마일지…”라며 자유한국당을 물고 들어가기도 했고 “모 당 대표처럼 집에 가져가도 되는, 왜 주는 지 알 수 없고 받은 흔적도 없는 돈이 온다”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 받은 특수활동비 일부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설명한 것을 꼬집었다.

그런데 결국은 이 같은 그의 발언들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족쇄가 된 것 같다. 즉 그가 유서에서 인정한 돈 전액이 법정에서 유죄로 인정되더라도 실제 국회의원직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법 제 45조 정치자금의 부정수수죄는 최대형량이 징역 5년 이하, 벌금 1천만 원 이하다. 그러나 공직선거법이나 알선수재 또는 알선수뢰의 죄와 병과되지 않을 경우 지금까지 우리 법정에서 정치자금법만으로 최대 실형이 집행유예형이었다.

실제 1억~2억 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정치인들 대부분은 집행유예형 이하를 선고 받고 있다. 불법 정치자금 5,000만 원을 받은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은 벌금 8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1,000만 원을 받은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고작 벌금 80만 원에 그쳤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

검찰에 따르면 검찰은 현재 ‘2억 원 이상’을 불법 정치자금 사건을 내부 영장청구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당초 ‘1억 원 이상’이었던 영장청구 기준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이후 ‘2억 원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또 법원이 2억 원 이상의 경우에만 집행유예 등 실형 선고를 하고 있다는 추세가 감안됐다.

물론 정치지금법 위반죄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되고, 피선거권도 형량에 따라 5~10년 제한된다. 그러나 임기 2년이 남은 노 의원은 특검에 의해 기소가 되더라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남은 임기 내에 나올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즉 임기중 의원직을 상실할 개연성 자체가 낮았다.

따라서 보통의 정치인들이라면 현재 불거진 의혹을 부인하며 특검에 대항했을 것이다. 설령 특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더라도 국회의 체포 동의과정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야 하고 실질심사에서 기각이 될 수도 있었으며 영장이 기각되면 더 당당하게 특검과 재판에서 겨룰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 의원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자기의 목숨을 던졌다. 왜 그랬을까? 나는 그것을 그가 가진 정의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본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내가 정의롭다는 것은 나 외에 남도 인정한다. 그런데 나는 청탁이 포함되지 않았더라도 법에 어긋나는 돈을 타인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 들통이 났다. 내게 그것이 유죄의 굴레가 된다면 나는 이제 정치권에서도 언론에서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것은 내게는 죽은 목숨과 같다. 그러니 그냥 죽는 게 낫다’ 이마도 이런 판단과 함께 그가 자신의 육신을 고층 아파트에서 내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유서에 나타난다. 그는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 원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라고 후회했다.

물론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라거나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고 밝혀 자신의 무지와 판단미스를 말했지만, 자책감을 벗어나진 못했다.

즉 “이정미 대표와 당원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정의당과 나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도 죄송할 따름”이라며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는 말로 깊은 죄책감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을 암시했다. ‘정의’를 배반한 데 대한 극심한 자책이다.

‘국회의원은 감옥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이는 감옥 담장 위를 걷다가 자칫 발을 잘못 감옥 쪽으로 내딛으면 감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만큼 국회의원은 감옥과 가까운 직업이다. 왜? 국회의원은 권력자라서다. 그리고 권력은 애초 정의롭지 않다. 권력은 그 자체가 범죄와 가깝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권력을 추구하다 목숨을 던진 한 ‘이러석은’ 정치인의 죽음을 보며 정의 그 쓸쓸함을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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