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증, 뇌 속 신경전달물질 분비장애가 만들어낸 편집증과 환각에 시달리는 모습

지난 해 드라마소재나 영화로 <킬미힐미>, <괜찮아, 사랑이야>, <내 심장을 쏴라> 등 국내에서도 정신질환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많이 등장했다. 대중 문화에서 정신질환을 소재로 삼는 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해외에서는 <파이트 클럽>, <아이덴티티> 등 비교적 오래된 작품에서도 정신질환을 다뤄왔다. 영상 매체에서 흔히 다루는 정신질환이자 많은 사람이 구분을 어려워하는 질환인 ‘해리성 정체 장애’와 ‘조현병’을 중심으로 정신질환의 원인과 특징, 치료에 대해 알아보자

대중 문화 속 정신질환
지난해 종영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주인공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환영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드라마 <킬미힐미>의 주인공은 일곱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앞서 언급된 드라마의 두 주인공은 각각 조현병(Schizophrenia)과 해리성 정체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환자다.

많은 사람이 해리성 정체 장애, 속칭 ‘다중인격장애’와 조현병을 혼동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현병을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부정적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다. 조현병과 다중인격장애가 헷갈리는 이유는 정신분열이라는 단어가 정신이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질병은 엄연히 다른 질환이다.

조현증, 환자에게만 보이는 세상
조현병 환자는 현실을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고 감정 통제와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조현병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자신이 외부 세력에게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집증과 환청, 환후, 환시 등 환각을 들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그대로 보고 있다고 믿거나, 끊임없이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듣는 환자도 있다. 따라서 조현병 환자는 반사회적인 태도로 은둔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자 존 내쉬는 조현병을 앓은 대표적 인물이다.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쉬는 프린스턴 학부에 입학할 때부터 천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항상 감시당하며 쫓기고 있다고 호소하고, 환청을 듣는 등 조현병 증세를 나타냈다. 이후 30대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20여 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조현병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는 여러 가지 인격을 가져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지는 질환인 해리성 정체 장애는 의식, 기억, 감정, 행동 등이 일상적인 것과 다른 상태를 나타내는 해리성 장애의 일종이다. 환자들은 평균적으로 다섯 개에서 열 개의 인격을 가지며, 이 인격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있다. 서로 다른 인격은 성별과 특징, 나이를 비롯해 가끔은 사용하는 언어마저도 다르다. 해리성 정체 장애는 문학 및 영상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흔한 병은 아니다.

‘빌리 밀리건’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이다. 그는 1977년 납치 및 강간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세계 최초로 법원에서 다중인격장애를 인정받아 무죄를 선고 받았다. 26세의 미국 남성인 그에게는 3살 소녀부터 사기꾼 사내, 예술가, 오스트리아인 등 성별, 나이, 인종이 다양한 총 24개의 인격이 존재했다.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만큼 큰 주목을 받았다.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
정신질환의 원인은 크게 생물학적, 심리학적, 환경과 사회학적 원인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신질환이 발병한다. 생물학적 요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정신질환으로 조현병, 조울증, 자폐 등이 있고, 심리학적 요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정신질환으로는 우울증, 사회불안, 발표불안 등이 있다.

▲ 조현증 환자의 사고모습

정신질환 발병 확률을 높이는 유전자, 신경전달물질 체계 장애 등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요인이다. 신경전달물질이란 뇌세포 간 신호 전달에 사용되는 물질로 도파민, 세로토닌, 글루타메이트, 엔도르핀 등이 있다. 신경전달물질 중 정신질환 발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도파민이다. 도파민 체계는 뇌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많은 정신질환의 발병이 도파민 체계 장애와 연관되어 있다.

도파민 과다분비가 조현병을 일으켜
조현병 발병에는 생물학적 요인이 크게 관여한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존 내쉬의 아들 역시 조현병을 앓았다. 도파민 과다 분비가 조현병의 원인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세로토닌이나 글루타메이트 체계와 도파민 체계 사이 균형이 어긋나는 것이 조현병의 원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MRI를 이용해 조현병 환자의 뇌를 측정해 본 결과, 일반인과 조현병 환자는 뇌 특정 영역의 크기가 달랐다.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조현병 환자의 전두엽과 측두엽은 작았고, 뇌실(Cerebral ventricles)은 컸다. 이는 뇌 활동 장애 때문에 조현병이 발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유년기의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조현병을 일으키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제기되었지만, 확실히 입증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해리성 정체 장애
해리성 정체 장애는 발병 원인이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년시절 겪은 학대나 사고의 목격 등 충격적인 경험이 심리적인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적 외상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해리성 정체 장애 환자는 새로 만들어진 인격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인격을 가진다.

병의 증상에 따라 다양하게 치료해
환자가 가진 정신적 문제가 환자의 생활에 장애를 주면 정신질환으로 진단한다. 정신질환은 단순한 스트레스나 가벼운 적응장애부터 심한 우울증이나 자폐 등에 이르기까지 병의 증상과 심각성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따라서 치료 역시 환자가 앓는 병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가벼운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나 적응장애,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증은 약물치료 없이 상담 및 인지치료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

약물로 치료 가능한 조현병
조현병과 같이 생물학적 원인이 밝혀진 질환은 약물치료가 큰 효과를 나타낸다. 조현병 치료에 사용되는 항정신병 치료제는 주로 세포 내 도파민 수용체의 활동을 억제해 도파민이 지나치게 많이 전달되는 것을 막는다. 한편 조현병 환자는 자신의 망상을 현실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약물치료는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므로 이 경우 치료가 원활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따라서 환자의 심리교육 및 가족치료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러 인격을 합쳐 해리성 정체 장애를 치료해
해리성 장애는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지만, 해리성 정체 장애는 그중 가장 만성적이고 회복이 어려운 편이다. 해리성 장애는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았다.
해리성 정체 장애의 치료에는 최면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질환 치료에서 최면은 일부 질병에서만 드물게 사용되는 정신질환 치료법으로, 환자에 따라 치료 효과 편차가 커 아직 시도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최면으로 해리성 정체장애를 치료할 때는 서로 다른 인격 간의 의사소통을 유도해 여러 인격이 하나가 되도록 한다.

“현대인은 대부분 정신병을 하나씩 갖고 있다”라는 말이 있다. 최근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완화되며 정신병원을 찾는 환자의 수는 늘어나고, 질병의 정도는 약해지고 있다. 초기에 정신질환을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클리닉 파팔라도 센터 스트레스 클리닉 양재원 전문의는 “정신질환의 범주는 학교 적응문제처럼 아주 가벼운 문제부터 조현병처럼 큰 질환까지 다양하다”라며 “정신질환을 심각한 질병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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