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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늦봄 문익환목사의 사상과 신학, 감옥신학

기사승인 2018.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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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목사(文益煥, 1918년 6월 1일 ~ 1994년 1월 18일)의 사상과 신학(2)

(탄생 100주기를 맞이하며 4월 26일 한신대학원 목요강좌에서 발표한 강연에 기초하여 세 번의 하늘뜻펴기로 나누었다.)

(3) 감옥신학 (Prison Theology)

감옥신학이라는 용어는 필자가 문 목사님의 삶을 생각할 때, 결코 빠트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기에 실험삼아 붙인 용어이다. 감옥은 마치 성서의 예언자들이 광야에 나가 하느님의 음성을 더 깊이 듣고 깨달았듯이 오늘의 시대에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는 현존의 장소이다. 그래서 감옥은 인간의 자유를 빼앗기 위한 장소이지만, 오히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역설적으로 영혼의 자유를 훈련하고 자신을 성숙시켜 나가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1975년 공동성서번역 작업을 마쳤을 즈음, 문익환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반대운동에 핵심 인물이었던 죽마고우 장준하의 의문에 찬 죽음을 맞게 된다. 그때 그는 장준하의 못다 한 삶을 이어갈 것을 다짐한다. 다음은 장준하의 3주기에 그를 추모하며 감옥에서 쓴 시이다.
우리는 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운 부끄러운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하나 되리라
네 마음으로 네 사랑으로
하나 되어 죽으리라
부나비처럼
불 속에 뛰어들어
너를 얼싸안고
신나게 춤추며 죽으리라
어둠과 탐욕을 비웃어 주면서
통일 조국을 목이 터지게 노래하면서
<산중 고혼아> 
(김지형 김민희 『통일은 됐어,,』 지성사 1994 134쪽)

1976년 문익환은 3.1명동구국선언 성명서를 작성하는 주역을 담당함으로 첫 번째 옥고를 치른다. 나이 59세였다. 그의 호는 '늦봄'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 역사에 대한 늦은 자각을 고백하는 언어였지만, 동시에 뜨거운 여름을 준비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부름을 상징하는 호이기도 하다. 이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인해 5번의 옥고를 더 치렀으며 이후 17년간 이어진 투쟁의 삶 가운데 감옥 안의 기간이 11년 반, 감옥 밖의 기간이 5년 반이었다. 

사실 문 목사님 자신이 존경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의 저항의 신학이 남한 땅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본회퍼 목사의 옥중서신은 70년대 민족과 민중을 사랑했던 신학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성서와도 같은 역할을 했는데, 80년대 신학도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익환의 옥중 글들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영복, 서승 선생을 비롯한 여러 옥중 글들이 우리 시대의 역작으로 많이 남아 있지만, 문 목사님의 옥중서신은 더욱 의미가 크다고 본다. 고난이 삶의 열매를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1973년 첫 시집을 낸 이후 나온 10여권의 저서 모두가 감옥생활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감옥신학은 새로운 용어로 들리지만, 사실 바울서신의 일부가 감옥 안에서 쓰였고 요한계시록 또한 유배시기에 쓰였기에 성서 일부 자체가 감옥신학이다. 로마제국의 핍박을 받았던 시절의 남은 초대그리스도인들의 글이 감옥신학의 일부이고 유대인들의 아우슈비츠의 글,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었을 때, 그리고 오늘날 팔레스타인 기독인들이 이스라엘 옥중에서 쓴 글들이 모두 생겨난 감옥신학의 글들이다. 옥중서간은 관제봉합엽서로 제한되기에 아무리 작게 쓴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압축적일 수밖에 없으며 엽서이기에 공개서한의 형식을 갖는다.

감옥에서 봄길 아내에게 보낸 글의 일부이다.

“오늘 새벽 무슨 꿈을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깜깜한데, 그 꿈이 어제 새벽 꿈의 고민을 풀어 준 것만은 지금도 뚜렷해요. 그게 뭐냐고 하면 이런 거였소. 호세아의 사랑의 고민은 결코 하느님과 사람의 상징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었소. 고멜의 배신, 그 배신을 끌어 안는 호세아의 가슴 에이는 아픔,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포함하는 모든 사랑의 실체라는 걸 이틀 새벽 꿈이 나에게 깨우쳐 주었군요. 이것이 내가 법정에서 말한 성속의 이원론의 완전한 극복인 거죠. 가톨릭에서 생각하듯 그것만이 성체가 되는 것은 아니구요, 밥상에 오르는 모든 밥이 예수의 몸인 거구요, 그리고 그것은 그래도 농민들의 살덩어리, 그들의 피눈물,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그들의 소원인거죠. 그리고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소원인 거구요. 호세아서의 해석이 리얼하게 새로워졌으니, 오늘 감방 생활도 또 하나 커다란 축복이 되었군요. 감사 감사. (문익환,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입니다』 202쪽)

(4) 예언자 신학(Theology of Prophets)

1) 제사장적 전통과 예언자적 전통

로마의 세네카는 일찍이 종교의 본질을 꿰뚫는 말을 했다. “종교는 범인들에게는 진실로 보이고 현자들에게는 거짓으로 보이며 권력자들에겐 이용의 대상으로 보인다.” 여기에 종교의 위험성이 숨어 있다. 종교는 크게 두 개의 기능이 있다. 제사장적 기능과 예언자적 기능이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분명한 차이점을 들라고 한다면 그건 한마디로 예언자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제사 혹은 예배라는 형식을 통해 찬양과 기도를 하느님께 올리고 개인적인 위로와 축복을 비는 제사장적 전통은 어느 종교에나 다 있다. 그러나 민족 전체를 향한 회개의 촉구 그리고 약자 보호 우선에 따른 사회 정의 실현을 외치면서 국가 권력과 박제화 된 종교 권력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예언자적 전통은 히브리인들의 역사에서 두드러진다. 주위 대부분의 종교가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그 권력이 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옹호하는 국가종교의 형태로 나아갔지만, 여호수아와 사사기(판관기)는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온 히브리 노예들이 국가 종교의 틀은 물론 왕권마저 거부하고 계급 없는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세워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와 자유와 평등의 가치 실현 이것이 예언자들이 지향했던 하느님 나라이며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가나안의 축복의 실체인 것이다. 필자는 아브라함의 축복 또한 탈도시화에서 이루어지는 유목평등공동체의 삶으로 이해하고 있다.

복음서 또한 이 점에서 매우 분명하다. 네 개의 복음서는 모두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생전 모습을 띠고 로마의 식민지 시대에 광야의 예언자로 등장한다. 엘리야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가장 부유했던 시절인 아합 왕 시대에 국가권력에 저항한 예언자이다. 야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합 가문의 통치를 끝장내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인물로 예언자들을 대표한다. 세례요한 또한 로마제국의 허수아비였던 헤롯왕의 비행을 공개적으로 비난함으로 옥에 갇히고 끝내 참수형을 당한다. 엘리야와 세례 요한은 국가 권력 비판이라는 예언 활동에서 그 맥을 같이 한다. 가장 먼저 쓰인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세상에 나온 시기를 ‘요한이 잡힌 뒤에’(1장 15절)라고 말한다. 곧 마가는 예수를 부당한 국가권력을 비판했던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예언자 전통을 이어받았음을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다. 

누가복음 또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는데,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눈먼 사람들에게 눈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장 18,19절) 여기서 핵심 단어는 ‘은혜의 해’이다. 이는 레위기에서 일곱 번의 안식년 다음에 오는 50년째의 희년(Jubulee)을 말한다. 희년은 처음 분배받았던 땅을 되찾는 해이며 모든 빚을 탕감 받고 노예 또한 해방을 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는 해이다. 곧 희년은 국가권력에 기초한 불평등한 모든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을 제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혁명(革命)의 해인 것이다. 프랑스의 성서학자 트로크메는 예수는 당시 명목상의 희년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하였음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이러한 성서의 전체 맥락에서 볼 때, 문 목사님이 온 힘을 기울여 참여했던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은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히브리 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을 이어가는 오늘의 신앙운동이었으며,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예수의 갈릴리 하느님나라 운동의 연장이었다.

2) 고난 받는 예언자 예레미야와 문익환

40대 초반 목사님이 월간지 기독교사상에 2년에 걸쳐 기고한 글의 제목을 보면 예레미야라는 한 예언자에 완전히 ‘필’(feel)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이명박 정권 초기 하늘뜻펴기(설교)를 통해 문서 예언자 전체를 연속하여 다루고 이를 출간한 바 있지만, 예레미야 한 사람에게 2년 동안 몰입했다는 것은 너무나 특이한 일이다. 예레미야는 누구인가? 모태에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 그리고 민족의 운명을 세워나가는 예언자로 불림을 받은 사람이다. 곧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의 뒤를 잇는 문익환 자신의 운명적인 삶을 그대로 말해주는 예언자이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며,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리 권력자들에 의해 옥고를 치루고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수모를 당하는 예언자이다. 문 목사님은 이미 18년 후에 일어날 자신의 운명을 미리 내다본 것은 아니었을까? 

예레미야가 유대 종교지도자를 향해 피를 토하는 회개를 촉구하였듯이 58년 전 1960년 4.19혁명 직후 <기독교사상>에 학생들의 거룩한 희생을 언급하면서 기독교의 반성을 촉구하는 <기독교도 아편이 된다>란 글을 남겼다.

‘기독교도 아편이다’라는 단언 명제에 나는 찬동하지 않겠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중독증에 걸려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 첫 증상은 죄에 대한 불감증이다. 둘째는 움직여야 할 몸이 반드시 움직여야 할 때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첫째 종교성(religiosity)의 그늘 아래서 인간성(humanity)이 죽어 버렸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종교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다. 그는 종교의 타성(inertia)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서 참사람-하느님께 지음 받은 대로의 참사람-으로 회복해 주시려고 참사람-둘째 아담-으로 오신 것이다. 기독교가 이것을 무시하고 자체의 권한과 자리만을 생각하는 한 종파(cult)로 전락해 버리면, 공산주의자들에게 아편이라는 낙인을 찍혀도 변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의 생에서 ‘온통(tatality)’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교회로서도 개인으로서도 우리는 하나의 전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옹근 교회’ ‘옹근 사람’이어야 생명을 건전하게 지탱할 수 있을 터인데, 우리는 분열되어 버리고 말았다. 교계의 분열은 한국 교회를 마비 상태에 떨어뜨리고 말지 않았는가? 

셋째로 지적해야 할 원인은 ‘은총’의 남용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밖에는 구함을 받을 길이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생의 태도이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부정을 덮는 아름다운 보자기로 사용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사람 앞에서 심판도 받기 전에 자신이 다 용서하고 깨끗이 치워버리고는 다른 부정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능글맞은 철면피로 보이는 까닭이 실로 여기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율법주의, 타계주의 같은 것을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4월 혁명의 무서운 충격으로도 한국 교회가 그 중독증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더 무서운 충격이 주어지고야 말 것이다.

지금 남한 교회의 현실이 어떠한가?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이 급성장한 교회요 세계 최대 50대 교회 중 절반이 서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남한 기독교의 현실은 어떠한가? ‘기독교’가 ‘개독교’로 ‘목사’가 ‘먹사’로 ‘평신도’가 ‘병신도’라고 조롱당한지 오래이며 젊은이들이 교회에 등을 돌린 지 오래이다. 20년 전 천만 명이 넘는다던 개신교 숫자는 현재 육백만 명 정도로 줄었으며 이백만 명 가까운 신도들이 교회 주변을 맴돌며 약속의 땅을 바라는 ‘가나안신자’들이다. 현재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고령 신자들이 사라지는 15-20년 후에는 현재의 절반인 3백만 명으로 준다 해도 전연 이상할 것이 없다. 문 목사님이 60년대에 행했던 예언자적인 외침이 그간 8,90년대 교회의 성장하는 굉음에 눌려있었지만, 남한 개신교의 쇠퇴 내지는 몰락이 분명한 지금 우리는 그의 예언의 소리가 적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조헌정(전, 향린교회목사) newsfreez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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