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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 오늘날 패배의 고통이 더 커진 이유

기사승인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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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들

독일 언론인이자 작가 볼프 슈나이더가 쓴 [위대한 패배자] (박종대 옮김)는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질지 못해서, 시대를 잘못 만나서, 어이없는 운명의 장난 때문에, 탁월한 경쟁자에 밀려서, 너무 착하거나 원칙주의자라서, 자신을 통제하지 못해서, 대중적 분노의 희생양이어서… 여러 이유로 실패한 사람들의 쓰라린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에는 사진 한 장으로만 소개된 사람이 있다.

이것은 피눈물나는 장면이다. 1908년 런던 올림픽의 마라톤 결승점이다. 이탈리아의 마라톤 선수 도란도 피에트리는 이 올림픽을 위해 많은 훈련을 했다. 7월24일,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라톤 코스에서 피에트리는 55명의 선수들과 함께 출발점을 나섰다.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체력을 비축하던 그는 절반 정도를 지나자 치고나가기 시작했다. 승부처는 39km 지점이었다. 줄곧 두 번째로 달리던 피에트리는 급격히 속도를 높이며 선두를 제치고 맨 앞으로 나섰다.

이것이 무리였을까. 그는 2km를 남기고 체력이 완전히 소진되었다. 심각한 탈수 증상이 찾아왔다. 결승점이 있는 스타디움에 들어섰을 때는 달리는 게 아니라 비틀비틀 걸었다. 그는 정신이 없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고, 진행요원이 방향을 바로잡아주었다. 그는 스타디움에 들어온 뒤 결승점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 쓰러졌다. 그 때마다 심판을 포함한 진행요원들이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결승점을 지날 때는 그래도 좀 달리는 시늉을 냈다. 이 때에도 옆에서 진행요원들이 그를 부축했다. 그는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위 사진은 바로 그 장면이다.

경기 막판에 부축을 받은 것 때문에 그는 실격했다. 금메달은 2위로 들어온 미국 선수에게로 돌아갔다.

오늘날 패배의 고통이 더 커진 이유

슈나이더는 책에서, 패배자는 어느 시대나 늘 있게 마련이지만 오늘날은 그 고통이 훨씬 심하다고 말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경쟁이 과거보다 훨씬 치열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100미터 올림픽 육상 경기에는 세 개의 메달만 걸려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제1회 올림픽이 열렸던) 1896년 당시보다 무려 50배나 많은 선수들이 이 메달을 차지하기 위해 달린다. 또한 각 나라의 인구도 19세기보다 평균 다섯 배나 늘고,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는 고학력층도 100배나 불었지만, 어디서도 대통령을 다섯이나 백 명을 뽑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둘째, 과거에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졌으나, 오늘날에는 무능함과 동의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20세기 문턱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가난과 굴종을 바꿀 수 없는 질서나 하늘이 정한 이치로 생각하며 묵묵히 감수했다. 그러니까 가난을 패배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 세상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원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돈과 권력, 명예, 명성, 메달을 향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체제로 바뀌었고, 그로 인해 다수가 낙오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쟁에 뒤진 사람들은 운명을 탓하거나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며 가슴을 쥐어뜯는다. 또한 미워하던 동료가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되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고통스러워한다.

이런 상황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의 고무와 격려가 갖는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경제적 신분이나 가족을 돌아보면 인생은 출발점부터 크게 다른 게 현실이고, 설령 출발점이 똑같다 하더라도 여전히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다. 마라톤 선수 56명 중 금메달은 단 한 명에게만 돌아가고, 32개국이 붙어 싸우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우승컵은 한 나라만 가져간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인 다수의 실패자들이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는 자괴감을 갖도록 만든다.

그러니까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일종의 사기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비교적 선의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다른 사기와 다른 점일 것이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더 많다. 훨씬 많다. 성공한 사람도 실패를 재산으로 삼아 그렇게 된 경우가 흔하다. 실패가 낙오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성원 거의 모두가 낙오자가 되어버리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도, 희망적이지도 않다.

▲ 위대한 패배자 | 볼프 슈나이더 지음 |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09.30

실패 배려하고 패자부활전 있는 사회

실패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새옹지마다. 이건범 대표는 회사 파산 뒤 많은 고초를 겪었지만, 지금은 저술가와 사회활동가로 잘 살고 있다. 비운의 마라톤 선수 도란도 피에트리는 비록 실격패를 당했지만, 그 뒤 우승자보다 더 유명해졌다. 그의 투지에 반한 사람들이 그를 돕기 위한 운동을 벌였고, 거기에는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도 포함되었다. 알렉산드라 왕비는 금메달을 받지 못한 피에트리에게 은컵을 수여했다.

이것도 좋지만, 실패에 대한 배려는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실패자가 어떤 신세가 되느냐가 그 사회의 건강성과 잠재성을 보여주는 척도다. 한 번 실패하면 영원히 도태되고 마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사회에서는 누구나 실패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게 되고, 당연히 모든 수단이 총동원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부정직한 수단까지 포함되며, 그런 수단을 채택하지 않는 것은 무능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사회가 건강함을 유지할 수는 없다.

이중의 의미에서 패배가 승리를 만들어준다. 승리가 위대하다면 패배도 그럴 것이다. 패자부활전이 존재하는 사회, 패자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 패배의 경험을 재산으로 보전할 수 있는 사회, 승패의 결과보다 노력의 과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우리 모두의 진정한 승리를 위해, 그리고 공동체로서의 우리 사회의 승리를 위해 간절히 필요하다.

그런 사회가 되면 승자들도 주변을 돌아보며 좀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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