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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작품집 <빛의 호위>가 보여주는 동백림 사건

기사승인 201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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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 사건은 한일수교협정과 부정선거에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려는 정치폭력에 불과했나

–이응노는 금품수수와 난수표, 단파 라디오, 세포조직 명단, 자살용 청산가리 등 증거물 존재

–역사를 문학에 끌고올 때는 신중해야. 작가가 생각하는 정의보다 ‘삶을 통찰하는 시선’ 중요

조해진의 <빛의 호위>(2017)로 토론을 했다.

지난해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이 소설집의 수록 작품 가운데 <동쪽 백(伯)의 숲>이라는 작품에 눈길이 갔다. 이 작품은 1967년에 있었던 동백림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윤이상, 이응로, 임석진 등 194명이 동베를린 소재 북한 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적화공작을 벌였다는 혐의로 대대적인 기소를 당했던 이 사건은 당시 서독과 한국 간의 외교문제로 비화되면서 커다란 파장을 낳기도 했다.

“단순히 동베를린의 북한 대사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이유로 외국에서 살고 있던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한국으로 끌고 가 고문한 뒤 실형을 내린 것은 일본과의 어리석은 전후 협정과 집권당의 부정선거에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조작된, 그 시절에는 너무도 흔했던 정치적 폭력 중 하나였다.”(<동쪽 백의 숲> 96쪽)

동백림 사건을 이런 식으로 퉁칠 수 있을까? 당시 이응노의 혐의와 관련하여 북측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내용과 난수표와 단파 수신 라디오, 세포조직 명단, 자살용 청산가리 등 많은 증거물이 제시되었다. 이응노 본인도 금품 수수 사실은 인정했으며 단순한 여비와 그림값으로 알았다고 해명했을 뿐이다. 북한에서 대남공작 업무를 맡았던 전직 고위관료 박병엽도 서독의 남측 지식인들이 북한의 통일방안을 지지하고 전파하는 선전의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사건 관련자들이 1970년대까지 다 풀려나게 된 것은 한국과 서독의 정치, 경제적 협력관계 때문이었다. 박정희는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해 차관을 지원해달라고 의회에서 호소한 바 있었다. 1967년 3월 서독의 뤼프케 대통령의 방한이 성사되면서 한국과 서독의 경제협력은 활발해졌다.

당시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을 발판으로 1960년대부터 개발도상국들에 경제원조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정치적 동기가 있었는데, 동독을 국제법상으로 승인하지 않는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 경제원조를 실시함으로써 동독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서독의 차관은 1963년부터 들어오기 시작해 1960년대에는 서독의 차관 비중이 차관 공여국 중에서 세번 째로 높았으며, 상업차관의 경우는 1965년까지는 미국과 비슷한 비중을 차지했다. 1966년부터 일본과 프랑스/이탈리아 합작 차관이 대규모로 들어온 이후에도 서독은 단일국가로서는 3~4위 규모의 경제원조를 했다.

동백림사건이 터졌을 때, 서독은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건설지원 차관을 추진하고 있었고, 한독 ‘낙농시범목장’은 두 나라 대통령의 방문으로 최종 합의된 기술원조 사업이었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독일재건은행 차관’과 부산 직업학교에 대한 기술원조 등도 논의 중인 시점이었다.

동백림 사건으로 서독 내의 여론이 악화되자 서독정부는 경제원조에 대한 전면적인 보류를 통해 한국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남한과 외교단절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한국정부 역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막 시작된 상황에서 서독에서 들어오기로 한 외자와 기술지원이 절실했다. 그런 양국의 외교적인 협상과 압력의 결과 동백림 사건의 관계자들이 풀려나게 된 것이다.

당시 검찰과 중앙정보부가 대규모 간첩사건으로 확대, 과장하고 관련자들을 고문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동백림 사건은 실체가 없는 사건이 아니었다. 당시는 베트남전이 진행중이었고, 북한은 같은 사회주의국가로서 베트남을 원조하기 위해 남한에 대한 대대적인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서독은 국내의 어마어마한 탄원과 항의시위, 남한과의 외교단절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와 ‘반공의 연대’를 중시하고 유연한 협력자세를 보였다. 그 중심에는 훗날 동방정책으로 유명한 외교부장관 빌리 브란트가 있었다.

삶은 불가해하며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때로는 역사도 그렇다. 불행한 역사에 상처입은 개인에게 천착하는 것이 문학의 사명이기는 하지만 역사를 문학으로 끌고 들어올 때는 신중해야 한다. 내가 소설에서 읽고 싶은 것은 작가가 생각하는 정의가 아니라 삶을 통찰하는 시선이다.

물론 이 소설집에는 빼어난 단편들이 있다. <사물과의 작별>과 <산책자의 행복>을 추천한다.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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