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뉴스영상캡처

[뉴스프리존=안데레사 기자]1일 오후 서울 강북구 한신대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열린 故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예배'에서 참석자들이 기도와 함께  시작하였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최근 한반도에 훈풍이 불면서 그의 선구자적 삶과 사상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선 문익환 목사는 신학자이자 민주화 및 통일운동가, 목회자, 시인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쳐온 문 목사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1989년 북한을 방문해 국가 보안법 위반 등으로 투옥됐던 민주화 통일 운동가 문익환 목사(1918~1994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문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전 활동이 재조명 됐다.

문익환 목사의 평양 방무능로 4.2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은 2000년 6.15공동선언에 계승되었다. 기념예배에서는 북측 조선그리스교연맹(조그련)이 축전을 보내와 눈길을 끌었다. 조그련은 문익환 목사에 대해 “그는 분단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친 통일애국인사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문익환 목사가 생전에 염원한 것은 이 땅에 외세가 없고, 우리 민족이 주인 된 세상. 피눈물로 아픈 상처를 씻으며 본연의 세계를 살아온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강대한 통일 조국이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간 살아온 수유리 자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옥중편지를 비롯한 유품 2만 5천여 점이 전시되었다. 이에 조그련은 “문익환 목사의 이 염원은 지난 4월 27일 남북회담에서 발표된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에 담겨있다”며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 통일을 위해 앞으로도 문익환 목사의 의지를 이어 판문점선언 이행에 앞장서므로 이 땅위에 영원한 평화가 담보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생전에 강조해온 '마음으로부터의 통일'은, 최근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에게 차분한 준비가 필요함을 깨우친다. 참석자들은 일제히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기도했다. 이들은 “민족을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 남북이 다시 만나 평화와 상생을 나누게 하시니 감사하다”며 “‘휴전선은 없다’는 늦봄의 외침을 듣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날을 속히 이뤄 달라”고 기도했다.

문익환 목사는 3·1운동을 전후해 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만주 북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4세 때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을 중퇴한 뒤 만주 봉천신학교를 다녔다. 25세 때부터 한인교회 전도사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신학대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신학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연세대 한국신학대학과에서 구약을 강의했다. 그 과정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절친한 친구였던 장준하의 죽음 이후 ‘3·1민주구국선언’을 기초하면서부터 호를 ‘늦봄’이라 짓고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에 앞장섰다. 그의 활동은 1978년 유신헌법비판성명서 발표, 1980년 YWCA 위장결혼사건, 1986년의 인천 5·3사건과 서울대학교 연설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후 통일운동에 매진해 재야 통일관련 단체의 구심점이 됐다. 특히 1989년에는 실정법을 어기고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면담하고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들로 인해 6차례 투옥돼 10여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1992년에는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같은 해 제3회 4월혁명상을 수상했다. 그가 펴낸 책은 ‘통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가슴으로 만난 평양’ ‘새삼스런 하루’ 등 7권의 시집과 많은 수필집, 산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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