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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통일대도

기사승인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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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도

지금 우리나라의 가장 큰 화두(話頭)는 뭐니 뭐니 해도 통일입니다. 전 세계가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로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통일은커녕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전쟁의 위기로 치달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정세가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판문점성언’으로 급격히 남북 화해가 이루어 져 가며 이제 통일의 그날도 머지않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15여 년 전에 원불교의 남자교도들의 조직인 [원불교 청운회(圓佛敎靑耘會)]와 원불교 통일 단체인 [원불교 모려회(圓佛敎慕麗會)]의 회장직을 역임한 바가 있습니다. 원불교 청운회는 도덕발양(道德發揚)이 주된 목적이고, 원불교 모려회는 그 명칭에서 보이듯이 <고구려를 사모하는 모임>이라는 뜻의 통일운동단체입니다.

당시 원불교의 최고 지도자는 좌산(左山) 이광정(李廣淨) 종법사(宗法師)님이셨습니다. 그 좌산 상사(上師)님의 경륜(經綸)이신 <통일대도(統一大道)>라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 <통일대도>를 받들어 오랜 시간 통일을 위한 <해원(解寃) ‧ 상생(相生) ‧ 통일(統一)을 위한 대 기도회>를 연속적으로 전개해 왔습니다. 그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이제야 그 좌산 상사님의 <통일대도>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아 얼마나 가슴이 벅찬지 모르겠습니다,

대도(大道)란 가장 쉽고 빠르고 완전한 길,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일에 있어서도 대도를 찾아 선택해야 합니다. 통일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순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통일을 바라지 않는 세력들의 숱한 방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공감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남북 모두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은 통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길을 찾아야 합니다. 남북 온 겨레가 통일을 위하여 함께 갈 수 있는 길, 지금 당장이라도 함께 나설 수 있는 길, 이 길이 바로 <통일대도>입니다. 여기 좌산 상사님의 오랜 경륜이신 이 여섯 가지 <통일대도>를 알아봅니다.

첫째, 대해원(大解怨)입니다.

분단 원인의 원초적 기점은 원한(怨恨)입니다. 이 원한의 응어리가 풀리면 통일의 문제는 실타래 풀리듯 할 것입니다. 물론 분단 현실의 원인을 정치적 시각에서 볼 수도 있고, 사상이념이나 국제 사회적 시각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통찰력으로 볼 때는 원한의 세(勢)가 양분되어 형성된 것이 남북분단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작업은 그 원한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일부터 착수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자주 만나는 일부터 시작하여 궁할 때 도와주고, 약할 때 보살피어 오직 깨우치고 달래며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또는 사소한 시비 따라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뜨거운 동포애를 발휘하여 그 동안의 불신의 벽을 허물고 하나하나 신뢰의 벽을 두껍게 형성해 간다면 이것이 바로 통일의 기초를 다지는 일일 것입니다.

둘째, 대사면(大赦免)입니다.

우리는 본의 아닌 피해를 주고, 당하고, 대응하며 서로서로 가해(加害)하여 왔습니다. 이에 불행했던 과거사는 하해(河海) 같은 마음으로 서로서로 용서하고 대사면을 해서 없었던 일로 돌려야 합니다. 대사면 없이는 참다운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6,25 동란 당시를 생각하면 억울하고, 분하고, 어이없고,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로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픈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오늘에 와서 다시 들추어낸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상처, 더 큰 아픔과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관계로 더욱 굳어져만 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 과거를 용서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셋째, 대화해(大和解)입니다.

우리는 가슴 가득한 동포애로 만나서 손과 손을 마주잡고 회포를 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뜨거운 동포애의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갈 때 통일의 대도는 트이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화해를 깨서는 안 됩니다. 화해란 어느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서로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도움을 적극적으로 주기도 하는 사이에 화해는 이루어지고 동포애는 강물처럼 흘러갈 것입니다.

넷째, 대수용(大受容)입니다.

통일대의(統一大意), 국가대의(國家大意)에 위반되는 일이 아닌 사소한 일은 모두모두 받아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피해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요구나, 한쪽 욕심만 추구하려는 요구는 안 됩니다. 어떠한 술수나 불순한 저의가 있는 요구는 뒷날 재앙을 자초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서로서로의 거래는 진솔해야 하고 내외가 일치해야 합니다. 이러한 대전제가 무너진 좋은 관계는 끝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섯째, 대협력(大協力)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으로 서로서로 도와야 합니다. 강한 편에서 약한 쪽을 먼저 돕고, 조금 더 돕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서로 진화의 길로 나아가면 없어서는 안 될 이웃사촌의 관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우리는 남측 때문에 북측이 발전하고, 북측 때문에 남측이 잘살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협력관계를 형성해 놓는다면 남과 북은 뗄 수 없는 유대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유대가 더 깊이깊이 형성되면 없어서는 살 수없는 관계로 발전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통일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오는 것이지요.

여섯째, 대합의(大合意)입니다.

드디어 합의를 창출해 내야 합니다. 국가 대의와 민족전체의 운명을 책임지겠다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합의를 창출해 내야 합니다. 이상적인 통일 국가의 설계도를 그려 합의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마음 가운데 사심을 버리면 합할 수 있고, 합하여 단합을 이루면 온 민족의 단합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사심(私心)이 공(空)하여야 단합을 이룰 수 있고, 온 겨레가 단합되어야 통일대업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오직 국가대의, 통일대의에 입각하여 <통일대도>를 남북이 서로 실행한다면 통일은 드디어 현실로 펼쳐지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5월 3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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