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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면서 잠시 되돌아 보게 하는 가문, ‘5대 抗日運動家’

기사승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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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의병에서부터 일제 말기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항일투쟁에 나섰습니다. 정확한 숫자를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만, 2017년 말 현재 정부로부터 독립유공 포상을 받은 분은 총 14,830명(여성 265명 포함)입니다.

애국선열 가운데는 단신으로 나선 분들도 계시지만 더러는 집안, 또는 가문 차원에서 집단으로 나선 경우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5대 항일가문’을 꼽는데,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가문, 안중근 의사 가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 일송 김동삼 선생 가문이 그 주인공입니다.

왕산 허위 선생

1)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뉩니다. 우선 왕산 4형제들(허훈·허신·허겸·허위)과 그 직계 후손들, 왕산의 사촌 허형 선생의 형제들과 후손들, 그리고 항일시인 이육사 선생 집안까지 아우르게 됩니다. 이육사 선생의 모친(허길)은 허형 선생의 딸입니다. 전부 합쳐서 10여명에 달하는 분들이 항일투쟁에 참여하셨는데요, 뒤에 나오는 석주 이상룡 선생 집안과는 겹사돈을 맺은 사이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

2) 안중근 의사 가문은 직계, 방계를 포함해 총 15명이 건국훈장을 받았습니다. 안 의사의 윗대에서는 삼촌 안태순 선생을 비롯해 안 의사와 두 동생(정근, 공근), 사촌동생(명근, 경근, 홍근), 조카(원생, 낙생, 춘생, 봉생, 우생), 그리고 여성들로는 모친 조마리아 여사, 여동생 성녀, 조카 미생(백범 맏며느리), 조카며느리(조순옥, 오항선) 등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안 의사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분들입니다.

석주 이상룡 선생

3)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은 고성이씨 종손집안으로 경북 안동의 99칸 종택 ‘임청각’으로 상징됩니다. 3천석 재산을 독립운동에 기부하였으며, 직계 및 방계 포함해 총 11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습니다. 석주 선생의 당숙 이승화 선생을 비롯해 형제(상동, 봉희), 아들(주형), 손자(병화), 조카(형국, 운형, 광민), 매부(박경종), 처남(김대락), 처제(김락)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

4) 우당 이회영 선생 가문은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불립니다. 1910년 한일병탄 후 일가족이 만주로 망명하였는데, 현 시가로 600억대의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투쟁 전선에 바쳤다고 합니다. 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등 6형제는 해방 때까지 한 분도 변절하지 않았으며, 해방 후 살아서 귀국한 분은 다섯째 시영뿐이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가문으로 상징되고 있죠.

일송 김동삼 선생

5) ‘만주벌의 호랑이’로 불린 일송 김동삼 선생 가문 역시 다수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습니다. 일송 선생을 비롯해 숙부뻘인 김대락 선생, 아우(동만), 형제(장식), 사돈(이원일) 등 총 5명이 독립유공 서훈을 받았습니다. 일송 선생은 하얼빈에서 일경에 체포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중 1937년 옥사(59세)하셨으며, 아우 동만은 1920년 9월 일제의 간도 토벌(경신참변) 당시 일본군에 피살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백범 김구 선생 가문을 비롯해 집안 전체가 독립투쟁에 헌신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우리는 이들 가문에 대해 존경과 예우를 그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안데레사 기자 sharp2290@gmail.com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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