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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69주년을 맞아 현대사에 아직도 반란인가?

기사승인 20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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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포들이여!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진정한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친애하는 동포여! 우리는 조선 인민의 복리와 진정한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을 약속한다. 애국자들이여! 진실과 정의를 얻기 위한 애국적 봉기에 동참하라. 그리고 우리 인민과 독립을 위해 끝까지 싸우자.’

다음이 우리의 두 가지 강령이다.

1. 동족상잔 결사반대  2. 미군 즉시 철퇴

위대한 인민군의 영웅적 투쟁에 최고의 영광을! - 『여수인민보』 1948년 10월 24일자

군인들이 어린아이와 노약자, 임산부, 남녀학생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행해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면 이를 지켜 본 시민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광주항쟁은 그래서 시작됐다.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이 국군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죽어가는 모습에 대항할 수 있는 길은 무장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민군이 등장하고 탱크와 장갑차와 헬기로 시민을 학살하는 폭력에 저항했던 운동이 5·18 광주민중항쟁건이다.

제주지역 일원에서 미군과 국군이 광주항쟁에서처럼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당하는 현장 소식을 을 알고 있는 여수와 순천 주둔 14연대 장병들은 국군들이 제주시민을 학살하기 위해 동원령이 떨어졌을 때 명령에 따라 제주토벌대로 참여해 동족을 학살하는데 동참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저항했다면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옳은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한 반란군인가 아니면 제주시민을 보호하려 했던 애국행위인가?

<여·순 주둔 14연대가 제주출동을 거부한 이유>

“제주도 놈들은 모조리 죽이시오”(이승만), “대한민국을 위해 섬 전체에 휘발유를 부어 30만 도민을 모두 죽이고 모든 것을 태워 버려라”(조병옥), “제주의 30만 도민이 없어지더라도 대한민국 존립에는 아무렇지도 않다(신성모) 이러한 명령을 내려 초토화작전에도 불구하고 사태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미군정은 게릴라에 대한 전면적 총공세를 위해 여수주둔 14연대를 파견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14연대 장병 3천여 명이 여수에서 출동날인 10월 20일에 ”경찰타도, 제주도 출동거부, 남북통일을 위하여 인민군으로 행동하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순항과 순천 및 거제도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어 이 중 9405명이 학살되고 23,000여명이 체포될 때까지 끈질긴 항쟁을 벌였다.

“우리는 조선의 노동자. 농민의 아들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사명이 국토를 방위하고 인민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서 신명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는 제주도 애국인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위하여 우리를 출동시키려는 작전에 조선 사람의 아들로서 조선 동포를 학살하는 것을 거부하고 조선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총궐기하였다. 동족상쟁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거… (1948. 11. 30 동아일보) 이승만 정부 수립 2개월 만이 일어난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일제시대 치안유지법을 부활시켜 자본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여순사건- 국가보안법 제정 계기>

“인명 8만 6명 살상(제주 민중 3분의 1 내지 4분의 1에 해당) 가옥 1만 5천2백 2십8호 방화, 소 1만 7천 8백 60두, 말 6천 9필, 돼지 2만 2천 9백 89도, 곡류 13만 5천 15석 소실”(한국현대사)의 제주 항쟁은 당시 제주도 내 비상계엄의 선포와 외부인(특파원 포함)의 출입을 일체 금지하고 함정까지 동원, 해안을 봉쇄했으며 당시 4.3 봉기의 관련 당사자 중 생존 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므로 인해 한국 현대사 속에 철저하게 은폐되어 왔다. “미군 즉각 철수, 망국단독선거 반대, 투옥 중인 애국자 석방, 조선위원당의 철수, 이승만 매국도당의 타도, 경찰대와 테러집단의 즉각 철수, 통일 독립국가 건설”을 외쳤던 제주도 4.3항쟁은 현실적으로 승리할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강하고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차단하기 위해 일제시대 치안 유지법을 부활시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l항 내지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서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자는 또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국가보안법 제 7조 ①항과 제 ⑤항) 정적을 제거하고 민주화운동세력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만든 국가보안법은 제주항쟁이며 여순사건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분단이 필요했던 세력들이 필요했던 국가보안법으로 사상의 자유까지 억압하는 반통일 정책이다.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

애국 인민에게 호소함(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 newsfreezo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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