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은 등에 불을 켜 놓음으로써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의 공덕을 기려 선업(善業)을 쌓고자 하는 공양의 한 방법

덕산 김덕권

빈자일등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바치는 등 하나라는 뜻으로 물질의 많고 적음보다 정성이 중요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옛날 코살라국사위성(舍衛城)에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구걸로 겨우 목숨을 이어 갈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사위성에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파세나디왕과 모든 백성이 등불 공양을 올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난타는 비록 가난하였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을 위한 등불 공양을 올리기 위해 거리에서 하루 종일 구걸해 얻은 돈 두 닢을 들고 기름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기름집 주인은 여인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하여 기름을 갑절이나 주었습니다. 난타는 기쁨에 넘쳐 등 하나에 불을 밝혀 석가모니께 바쳤습니다. 밤이 깊어 가고, 세찬 바람이 불어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난타의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지요.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석가모니가 잠을 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자 아난이 가사 자락으로 등을 끄려 하였으나 등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때 석가모니가 아난에게 말했습니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말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등불의 공덕으로 이 여인은 앞으로 30겁 뒤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현우경(賢愚經)》<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 나옵니다. 이렇게 가난한 여인의 정성으로 바친 등 하나를 석가모니에게 바친 데서 ‘빈자일등’이라는 말이 유래한 것이지요. 오는 5월 22일이 <석가탄신일(釋迦誕辰日>입니다. 그에 맞춰 5월 11일에서 13일까지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인 연등회(燃燈會)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연등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사기]에 신라 경문왕 6년(866) 정월 15일과 진성여왕 4년(890) 정월 보름에 황룡사로 행차하여 연등(燃燈)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000년 전에 이미 사찰에서 등을 밝혀 연등회를 연 것입니다. 또 고려사에 따르면 사월 초파일에 연등회를 열어 밤새도록 연희를 벌인 것이 오늘날 사월초파일 연등회로 계승된 것입니다.

연등은 등에 불을 켜 놓음으로써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의 공덕을 기려 선업(善業)을 쌓고자 하는 공양의 한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보시공덕(布施功德)은 정성으로 하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재물로, 재물이 없으면 몸으로, 몸도 말을 안 들으면 마음으로라도 바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시는 절대로 자랑하지 않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산 동구에 따르면 지난 사월초파일 초량 6동 주민 센터에 10㎏ 백미 100포대가 배달되었다고 합니다. 쌀과 함께 배달된 편지에는 ‘빈자일등’이라는 한자성어와 함께 “어려운 학생에게 전해 달라.”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는 매해 석가탄일마다 쌀 100포대씩 4년째 기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 센터 관계자가 쌀을 배달하는 지역 쌀가게를 통해 얼굴 없는 천사를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기부자는 쌀가게에 자신의 신원을 알려주면 더는 여기서 쌀을 배달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합니다. 동구청에서는 편지 내용에 담긴 대로 지역 내 어려운 학생에게 쌀을 나눠주고 있다며 “덕분에 아이들이 훈훈한 불탄일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정성의 등불을 켜는데 어느 절에서 <부처님 오신 날 하루 등>이라는 제목으로 ‘연등장사’를 한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을 하였습니다. <한지 등 4만원, 중등 8만원, 대등 15만원, 특등 20만원, 법당 1년 등 8만원> 아예 가격표 까지 내걸었습니다. 심지어 ‘개인연등, 가족연등, 장사연등, 사업연등, 진급연등, 시험연등, 영가연등’까지 팝니다. 아무리 종교가 썩었다 하드라도 이렇게 드러내놓고 연등장사를 한다면 서가모니 부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화안애어(和顔愛語)’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로 사람을 맞이해 상냥함 말을 건넨다는 뜻으로《대무량수경(大無量壽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복잡한 길거리서 자칫 어깨라도 부딪치면 험한 얼굴을 드러내고, 운전 할 때 앞 차 또는 뒤차의 운전이 자기의 생각과 조금만 다르면, 입 밖으로 험한 소리부터 나오는 요즘입니다.

이 거칠어진 세상 속에서 ‘화안애어’는 아마도 일상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사회에 꼭 필요한 큰 보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흔히들 재물을 주는 것만이 보시라고들 생각하기 쉽습니다. 재물은 보시의 수천, 수만 방편의 하나일 뿐 입니다. ‘빈자일등’이 보여주듯이 보시는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입니다.

그 마음을 담는 것이 재물일수도 있고, 충고일수도 있으며,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배려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무량수경은 재물에 뒤지지 않는 보시로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언사시(言辭施)’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화안열색시’란 미소를 띤 상냥한 얼굴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언사시’란 상냥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합한 것이 ‘화안애어’ 이지요.

그러니까 화안애어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보시행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하기 힘들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애를 태우고 속 끓이며, 사소한 일에 끙끙 앓고 그것을 얼굴에 나타내는 것이 보통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최고의 공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음공부를 제대로 할 때 나도 세상도 더 나아질 것입니다. 마음공부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요란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어리석지 않게 하는 것이며, 마음을 그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빈자의 일등은 재물의 다과에 있지 않습니다. 제발 부처님을 팔아 등 장사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부처님 오신 날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작은 정성이라도 바쳐 성탄을 축하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5월 1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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