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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진선진미 

기사승인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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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진미 

《논어(論語)》<팔일편(八佾篇)>에 ‘진선진미(盡善盡美)’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뜻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훌륭하다’ 또는 ‘더없이 착하고 아름다움’을 말함이지요. 저는 때때로 종교인으로서 진선진미의 길을 가고 있는 가하고 자문(自問)해 봅니다. 대답은 역시 선을 추구하고 미는 추구 하지만 진선진미의 길을 간다고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물건을 살 때 묻는 말이 나라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최고를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은 “이거 넘버원입니까?”라고 묻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독일 사람들은 “이거 오래 쓸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럼 한국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는 무얼 많이 물어 볼까요? 아마 그건 “이거 진짜 맞아요?”라고 묻는다고 하네요.

그동안 우리 국민이 얼마나 많이 속고 살았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요?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종교도 마찬 가지입니다. 각 종교가 저 마다 자기 종교는 진선진미 최고의 종교라고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물론 각종교의 진리는 진선진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너와 나를 가르고 서로 배척하며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고 아우성치는 종교계의 현상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것 같이 보입니다.

고 신영복 교수의 저서 <처음처럼>에서 진선진미에 대해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고 합니다. 목표가 바르지 않고는 그 과정도 바를 수 없고, 반대로 그 과정이 바르지 않으면 그 목표도 바르지 못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하나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옳은 일을 옳은 방법으로 해야만 옳은 일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빠른 길’보다는 ‘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바른 길’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바른 길’보다 ‘빠른 길’을 선호하는 경향이 아주 심합니다.

《논어》의 <팔일편>에 나오는 진선진미 내용을 한 번 살펴봅니다. 주(周) 나라 때에는 황제(黃帝)이래 6대 음악인 운문(雲門 - 황제의 음악), 함지(咸池 - 요임금의 음악), 대소(大韶 - 순임금의 음악), 대하(大夏 - 하나라 우왕의 음악), 대호(大濩 - 은나라 탕왕의 음악), 대무(大武 - 주나라 무왕의 음악)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공자는 순임금의 음악인 ‘대소’와 무왕의 음악인 ‘대무’를 비교하여 결과와 과정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대소에서는 천하를 통치하는 방법으로 덕치(德治)와 조화(調和)를 노래한 반면, 대무에서는 무왕이 무공으로 천하를 평정함을 칭송하고 있는데, 두 노래는 모두 통치자의 업적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대소는 소리의 아름다움이 지극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지극히 선하다. 그러나 대무는 소리의 아름다움은 지극하지만, 내용의 선함은 지극하지 못하다.」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순(舜)임금은 덕치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였지만, 무왕은 천하를 얻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이 잃게 하거나 삶을 힘들게 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왕은 천하의 안정이라는 대의명문을 가지고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하였습니다. 이 기간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을까요? 순임금은 모든 죄를 자기 탓으로 돌리고 신하들의 충언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 덕으로서 다스렸습니다. 이와 같이 ‘진선진미’의 진정한 의미는 과정의 선(善)함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길(道)’이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걸어가는 과정입니다. 즉 ‘길’을 통하지 않고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길은 크게 인도(人道)와 천도(天道)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길에는 각각 바른 길과 그릇된 길 곧 두 길로 나눠집니다. 이와 같이 두 길이 있기에 지금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이 곧 ‘도(道)입니다. 우리는 정도(正道)를 걷고 있는가요?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돌이켜 바른길로 가야합니다. 천도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천도의 길을 점검함에 있어 꼭 알아야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진리의 길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을 믿거나 의지해서는 아니 됩니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를 선택해서는 큰일 납니다. 오직 진리와 법과 스승을 믿고 가야 합니다. 열 가지 종교를 비교 연구하여 가장 원만하고 사실적이며 진리적인 종교를 믿고 수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둘째, 진리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내역(內譯)은 곧 우주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法界)가 다 진리 아님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敬畏心)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진리를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편협한 신앙을 돌려 원만한 신앙을 하는 것이고, 미신적 신앙을 돌려 사실적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진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같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진리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곧 진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알자는 것이고, 그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그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 곧 진리 수행입니다. 그 방법이 삼학수행(三學修行)으로, 정신수양(精神修養) ‧ 사리연구(事理硏究) ‧ 작업취사(作業取捨)인 것입니다.

수행은 지행일치(知行一致) · 신행일치(信行一致) ·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생활을 말합니다. 그리고 수행은 신심(信心) · 서원(誓願) · 공부심(工夫心) · 공익심(公益心)이 전제되어야 발전하는 것이고. 수행은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수행은 정의를 실천하고 마음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가꾸며,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 진리를 믿고 진리를 닮아가며, 진리의 위력을 얻을 수 있는 신앙과 수행을 해야 합니다. 최근 모 교회 목사의 부끄러운 짓을 보면 진리의 길을 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것은 ‘진선진미’의 경지를 추구하는 종교로서 가야할 길은 아닌 것 같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5월 1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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