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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신의와 의리

기사승인 201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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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와 의리’의 핵심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각박한 세상을,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삭막한 사회를,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을 바로 효제와 배려의 세상으로 바꾸 것

신의와 의리

요즘 신의(信義)와 의리(義理)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인간들이 판을 칩니다. 그런 인간들을 보면 정말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신의와 의리를 손바닥 뒤집히듯 하는 것을 보면 우리국민들이 무엇을 배우고 따라야 할지 걱정입니다.

신의는 믿음과 의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그리고 의리는 사람 혹은 인간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를 이름이지요. 그런데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는 어디로 갔나요? 세상은 갈수록 야박해지고 삭막해 갑니다. 부모와 자식들 사이의 의리까지 메말라지면서 형제간의 의리나 신의도 삭아 없어지고 마는 것 같습니다.

친구나 동료들 사이도 마찬 가지입니다. 따뜻한 인정조차 메말라가면서, 눈만 뜨면 무서운 사건들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 1762~1836)은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에 인간의 윤리가 살아나고, 인간들 사이의 신의와 의리가 제대로 지켜질 가장 튼튼한 방법의 하나로 효제(孝弟)를 강조했습니다. 효제란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돈독히 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럼 우리 사회에서 신의와 의리를 지키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요? 제주도의 해녀들에게는 그들만의 규칙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먼저 바다 속에 들어가 작업을 할 때, 눈앞의 전복을 모두 다 따지 않고 남겨 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들어올 다른 해녀를 위한 일종의 배려 때문이지요.

이 ‘신의와 의리’의 핵심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각박한 세상을,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삭막한 사회를,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을 바로 이 효제와 배려의 세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해녀들끼리 알아서 지키는 ‘무언의 규칙’처럼 우리의 가슴 뜨겁게 할 ‘신의와 의리’를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신의와 의리를 지키는 법은 무엇일까요? 신의와 의리는 한 마디로 ‘관계의 지속’을 뜻합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한 번 맺으면 영원한’ 그런 끈끈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의리를 지키기보다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것이 낫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꿈꾸고, 정성을 다하기보다 쉽게 이루려는 태도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중용(中庸)》23장에 보면「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되고,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나오며, 겉으로 배어 나오면 이내 변하게 되고,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야말로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을 그대로 나타내신 말씀이지요. 작은 일, 작은 관계에서부터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이 바로 신의와 의리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작은 관계부터 정성을 쏟는 일. 사소해 보이지만 그런 작은 관계가 모여 신의와 의리를 만듭니다.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신의이고 의리 아닐까요? 누군가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힘, 이제는 의리를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넘기기보다, 우리 삶 속의 진짜 신의와 의리’를 찾아 나설 때입니다.

중국 원(元)나라 때, 진윤부(秦潤夫)의 후처 시씨(柴氏)가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전처가 낳은 아들도 하나 있었는데 그도 어렸습니다. 진윤부는 병이 들어 죽게 되자 후처 시 부인에게 전처가 낳은 아들을 부탁한다며 죽었습니다.

시 부인은 두 아들을 차별 없이 길렀습니다. 길쌈으로 고생스럽게 일하여 학교 공부까지 시키며 길렀지요. 그런데 어느 날 행실이 불량한 소년이 장복(張福)이의 가족을 죽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장복은 가해자로 시 부인의 큰 아들을 지목하여 고소를 했습니다. 법에 의하면 사형을 당해야 하는 중죄입니다.

시 부인이 작은 아들을 이끌고 관아에 나아가 울면서 호소를 합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저의 작은 아들이지 큰 아들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것이지요. 작은 아들도 “저의 죄를 어떻게 형에게 덮어씌울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사또가 계속해서 신문을 해도 작은 아들은 말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아들이 시 부인의 소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뒤에 파악해보니 살인은 시 부인의 두 아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관에서는 시 부인의 행위를 정의롭게 여기고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아내는 사랑하는 자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남편과의 신의를 지켰고, 아들은 죽음에 나아가면서도 어미의 뜻에 따라 의리를 지켰다. 이것은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감정으로 최고의 경지이다.”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하고 마침내 두 아들을 모두 석방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전처 아들을 잘 키우라는 남편의 부탁을 지킨 후처 아내, 어머니의 뜻에 따른 아들,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니 이런 아름다운 세상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지혜 있는 사람은 신의와 의리를 보배로 삼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명리(名利)와 재물을 보배로 여깁니다.

그러나 명리와 물화(物貨)는 허망하기가 뜬 구름 같고, 위태하기가 누석(累石)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명리의 보배는 밖으로는 영광스러운 듯하나 안으로 진실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의와 의리라는 보배는 도(道)와 더불어 합일(合一) 한지라 그 수명이 한이 없고 안과 밖이 환히 밝아 명리와 물화가 자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경륜은 우주에 통하고 신의는 고금을 일관하는 것입니다. 경륜이란 발원이요 계획입니다. 그리고 신의와 의리는 그 발원을 이루기까지 정성과 노력을 쉬지 아니하여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충신은 죽어서 솔이 되어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했습니다. 한 번 충성하기로 진리와 국민에게 말로 하고 글을 쓰며 충성을 서약 했으면 그 신의를 영원히 지켜야 합니다.

바로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계는 신의와 의리를 우직하게 지키는 그런 사람이 모인 세상입니다. 창밖에 비가 내립니다. 오늘 따라 신의와 의리의 덕인(德人)이 무척 그리워 지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5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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