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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제행무상

기사승인 20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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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행무상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은 항상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윤회하므로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않다는 뜻이지요. 즉, 무상(無常) 또는 비상(非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일반적으로 제행무상이라는 명제를 무상으로 설명합니다. 제행무상은 불교의 근본교의를 나타내는 삼법인(三法印)의 하나로, 모든 것은 생멸변화(生滅變化)하여 변천해가며 잠시도 같은 상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꿈이나 환영이나 허깨비처럼 실체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즉, 이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 · 변화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항상 불변(恒常不變)한 것은 단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의 실상(實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체가 무상한데 사람들은 상(常)을 바랍니다. 거기에 모순이 있고 고(苦)가 따르는 것이지요. 무상은 바로 고의 전제입니다. 무상한 까닭에 고인 것입니다.

또 현실을 그와 같이 인식하는 것을 무상관(無常觀)이라고 하며 무상의 덧없음은 ‘몽환포영로전(夢幻泡影露電)', 즉 꿈 · 환상 · 물거품 · 그림자 · 이슬 · 번개에 비유되어 불가 적 인생관의 특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무상관은 단순히 비관적인 덧없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상(相)에 대하여 비관하거나 기뻐하는 것 자체가 상이며, 그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무상하기 때문에 인간은 지위나 명예에 집착하는 탐욕을 버리고 하루하루의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함이 없이 수행에 정진하고 정진 또 진노력(精進努力)하려는 정신적인 결의가 생겨나게 되며, 이러한 것이 무상관의 참된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거의 다 이런 제행무상의 진리를 알고도 모르는지 모두 권력에 집착하여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일까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과 박근혜가 상대를 향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설전을 벌이던 영상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최태민 일가, 그리고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대가 대통령이 되면 이 문제들이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기된 의혹들은 결국 사실로 드러났고 두 사람은 동반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상대를 향한 경고는 섬뜩할 정도로 적중했습니다.

지난 4월 첫 주, 민주주의 가치와 헌법을 크게 훼손했던 두 사람에 대한 사법부의 단죄가 이어졌습니다. 박근혜는 국정농단 1심 재판에서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은 뇌물 등 16개 혐의로 기소됐지요. 두 사람이 경선 당시 상대의 문제점은 잘 찾아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썩어 있는 것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9년은 한마디로 ‘권력의 공공성을 파괴시킨’ 퇴행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과 관련한 혐의들을 보면 ‘거대한 사익추구 공동체’라는 표현이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명박은 개인과 가족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정책 또한 공공성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기 식으로 결정하고 시행했습니다.

권력의 공공성을 무시하는데 있어서는 박근혜도 이명박 못지않았습니다. 그녀에게 24년형과 벌금 180억을 선고한 재판부는 “국민들이 위임한 권력을 개인적으로 남용했다”고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과도한 집착에 기인한 것입니다. 집착하면 고통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집착을 버리면 좋을까요?

첫째, 집착의 원인이 되는 대상과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재색명리(財色名利)에 집착하고 있다면, 집착의 대상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착의 대상과 자신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를 두면 정신적인 거리도 생기게 됩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집착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둘째,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관심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관심을 주면 습관을 고치기 어려워집니다. 집착을 끊어 버리기 위해서는 우선 집착하고 있는 것과 멀어져야 합니다.

셋째, 집착하는 대상과 관련된 생각 대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집착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다른 것을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무척 어렵습니다. 집착을 끊고 인생의 다른 것들을 즐기려면 왜 그 집착을 극복하고 싶은지 기억해 내야 하는 것이지요.

넷째,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망상(妄想)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집착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몇 시간씩 생각하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 챙김 훈련을 통해 집착을 멈춰 보는 것입니다. 마음 챙김 훈련을 하면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불의(不義)와 과욕으로 구한 부귀영화는 지탄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오래가지도 못하고 인생을 망치는 재앙을 불러 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귀를 정도(正道)로서 구하지 않고 부정(不正)으로 구하려 하기 때문에 수많은 정 · 재계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를 하고 엮여 들어가는 것입니다.

수도인(修道人)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사(生死)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며, 죄 복(罪福)의 이치를 알아서 죄 복을 임의(任意)로 하자는 것입니다. 제행무상입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 덧없는 것들에 죽기 살기로 매달려 인생을 나락(奈落)으로 떨어뜨리는 것일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4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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