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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각고면려

기사승인 201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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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고면려 

각고면려(刻苦勉勵)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갖 고생을 견뎌 내며 부지런히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평생 잘 한 일이 없었습니다. 뭐든 하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꺾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35 여 년 전 불연(佛緣)이 깊었던지《일원대도(一圓大道)》를 만났습니다. 비로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그야말로 각고면려의 세월을 지내왔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원대도》에 귀의(歸依)한 그날부터 하나의 서원(誓願)을 세웠습니다. ‘법회(法會)만 빠지지 않아도 부처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법문(法門)을 듣고, 매주 일요일마다 돌아오는 법회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교당(敎堂)에 첫발을 디딘 후 지금까지 35년간 단 한 번도 법회를 빠져 본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외국여행을 가서도 일요일이면 교당을 찾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법회를 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 각고면려를 한 일이 있습니다. 만고희유(萬古稀有)의 대 법보(大法寶)라고 하는《원불교전서(圓佛敎全書)》를 봉독(奉讀)하는 일이었습니다.

몇 번 읽어보니 꼭 중고등학교 도덕책 같아 만만하게 생각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꺼운 전서를 대여섯 번 읽어 보니까 몇 번 읽고 놔둘 책이 아니었습니다. 이 전서 속에 인생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도덕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또 한 가지의 서원을 세운 것입니다. 1년에 10번, 10년에 전서 100번을 읽겠다는 결심입니다. 그 서원이 33년을 지날 때까지 303 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한 2년 전 오른 쪽 눈이 안 보이게 돼 읽는 것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한 10년 각고면려의 길을 달려온 일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덕화만발 카페]에 <덕화만발>이라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10년 전 자식들의 권유로 저의 칠순잔치를 서울 강남의 SC 컨벤션쎈타에서 가졌습니다.

뜻 밖에도 전국 각지에서 저의 칠순을 축하해 주시느라고 엄청나게 많은 도반(道伴)과 동지(同志)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저 같은 사람을 보고 오신 그 분들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위한 보은(報恩)하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저는 [덕화만발]이라는 카페를 개설하고, 카페를 관리하며, <덕화만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전문적으로 문학공부를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글이라고는 학창시절 연애편지 대필해 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 제가《원불교》에 입교한 후 <원불교 여의도 회보>를 편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11권의 책을 출판됐습니다. 이제 늙고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저입니다. 제가 세상에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수단은 <덕화만발>이라는 글을 통해 보은하는 방법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공휴일을 빼고 단 한 번도 <덕화만발>을 걸러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현재 2233편의 글을 썼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생명 다 하는 그날 까지 쓰고 또 쓰려고 합니다. 아직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만하면 나름대로 각고면려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는지요?!

사막에 푸른 농장을 일군 사람이 있습니다. 레바논 출신인 무사 알라미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국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습니다. 그는 레바논 전쟁 때 평생 모아둔 재산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요르단 강 유역의 황량한 사막으로 갔습니다. 그 지방은 수천 년 동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무사 알라미는 사막에서 지하수를 이용하여 곡물 재배에 성공하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타는 듯한 뜨거운 모래 밑에도 반드시 물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예로부터 사막 근처에 마을을 이루고 있던 베드윈 족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무사 알라미를 말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막을 연구하는 과학자들까지 그 곳은 물 한 방울 없는 곳이라며 충고했지요. 그래도 무사 알라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몇 사람들과 함께 사막 한 가운데로 갔습니다.

그들 중엔 곧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 노인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겐 천공기(穿孔機)나 운반기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곡괭이와 삽으로만 땅을 파 들어갔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볕 아래 화상을 입으면서, 무사와 그의 일행은 삽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메마른 사막을 파기 시작 한지 수개월 후, 드디어 습기에 찬 축축한 모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각고면려 끝에 마침내 그들이 파 들어간 구멍에 시원한 물이 차올랐습니다. 이 순간 알라미 무사와 그의 동료들은 환성을 지르거나 껑충껑충 뛰며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함께 고생한 노인은 무사를 껴안으며 울먹였습니다. “여보게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네. 이 메마른 사막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이 눈으로 보았으니......” 이 후 수천 년 동안 버려진 이 땅에서는 온갖 과일과 야채가 재배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항상 모든 일을 가능한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항상 불가능한 방향으로 생각합니다. “조건이 안 좋아!” “실력이 안 돼!” “경험이 부족해!” 등등 핑계가 대개 비슷합니다. 나이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나이가 적으면 나이가 적은 것이 문제이고, 나이가 많으면 나이가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과연 나이 때문에 또는 가진 것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을까요? 요즘에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마음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늘일 수 있습니다. ‘나이 때문에’라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나이가 걱정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장 보람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이야말로 남은 인생 중에 가장 젊은 순간입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으로 각고면려의 길을 달려 맑고 밝고 훈훈한 낙원을 이룩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4월 2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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