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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용서와 화해의 문

기사승인 2018.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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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부터 1990년 까지 27년간 감옥살이,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만델라

전 문인회장

용서와 화해의 문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을까요?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외치다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절해의 고도 루벤섬에 투옥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1964년 이었습니다. 감옥은 다리 뻗고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습니다.

간수는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를 변기로 감방구석에 던져 넣었습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번 정도만 허락 되었습니다. 간수들은 걸핏하면 그를 끌어다가 고문하고 짓밟고 폭력을 가했습니다.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끌려간 후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감옥살이 4년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듬해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장례식에도 참석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감옥살이 14년이 되던 해 큰 딸이 결혼을 해서 아기를 데리고 할아버지에게 면회를 왔습니다. 그리고 큰 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땟물이 찌들은 위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 조 각 하나를 꺼내어 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딸은 그 종이 조 각에 쓰여 진 글자를 보는 순간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글자는 이렇게 쓰여 져 있었습니다. <아즈위 Azwie - 희망> 그는 그 후로 온갖 치욕을 다 당하면서 옥살이 13년을 더한 끝에 마침내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1964년부터 1990년 까지 27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44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해서 71세에 풀려난 것이지요. 

그는 남아공 흑백 분리 정책을 철폐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자기를 박해하고 고통과 치욕을 주었던 정적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으로 인간의 고고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은 그를 가리켜 인간의 품격을 한 단계 올린 ‘용서와 화해의 거인’이라고 존경을 표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넬슨 만델라(1918~2013) 남아공 대통령입니다. 그는 그 오랜 세월 어떻게 절망의 세월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대답 하였습니다. “나는 위대한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리라는 ‘아즈위-희망’을 한순간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희망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싸웠던 죄는 바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이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정권에 의하여 1948년에 법률로 공식화된 유색인종분리정책입니다. 이 망국의 정책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벌인 남아공 백인정부와 흑인대표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와 넬슨 만델라 간의 협상 끝에 급속히 해체되기 시작해, 민주적 선거에 의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넬슨 만델라가 1994년 4월 27일 완전 폐지를 선언하였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사람을 인종등급으로 나누어 백인, 흑인, 황색인, 인도인 등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인종별로 거주지분리, 통혼금지, 출입구역 분리 등을 하는 등, ‘차별이 아니라 분리에 의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사상 유례가 없는 노골적인 백인지상주의 국가를 지향한 정책이지요. 그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가 아닌지요?

만델라는 참으로 경이(驚異)의 존재입니다. 그의 신념과 실천은 가히 거룩한 성인의 경지입니다. 만델라는 극한의 절망에서 이렇게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을 희망하고 실천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황무지에서 외롭게 희망을 개척한 인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아즈위’를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미국의 인디언들의 속담이 있습니다. “같은 말을 2만 번 이상 반복해서 하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꼭 2만 번이 아니라도 그 어떤 염원이 필요로 하는 횟수를 채우게 되면, 그 말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는 인종차별 시절 흑인들의 인종차별 반대투쟁을 화형, 총살 등의 잔악한 방법으로 탄압한 국가폭력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다면 사면(赦免)해 주었습니다.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피해자 무덤에 비석을 세워주어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잊혀지는 일이 없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용서하러 화해와 용서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날짜가 4월 27일로 확정됐습니다. 남북은 3월 29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고위급회담을 열고 3개 항의 합의가 담긴 공동보도문을 채택했습니다.

남북은 이번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4월 4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의전, 경호, 보도 실무회담을 진행하기로 했으며, 통신 실무회담의 날짜와 장소는 추후 확정하기로 했습니다. 정상회담의 주요의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 진전 등이라고 합니다.

4월 27일 두 정상이 만나고 북미 정상이 5월에 만난 다음에는 제발 화이부실(華而不實)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꽃만 피우고 열매가 없다면 말이 안 됩니다.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봄을 이어가는 것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수 십 년간의 단절과 대결이 낳은 불신과 오해의 벽을 허물고, 한반도의 평화와 새로운 미래를 위한 과감한 양보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용서와 화해의 거인 만델라가 걸었던 길을 우리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정신’이 아니면 평화와 통일의 길이 열리기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적으로 남아 있기를 포기’할 때만 용서가 가능해 집니다. 남과 북은 결코 남이 아닙니다. 우리의 형제이고 동포입니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용서와 화해의 문을 여는 첫 걸음이 되면 얼마나 좋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4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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