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소리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그는 마치 앵무새의 비참함이 자신의 비참함처럼 여겨졌다.

“6개월이 지나면 다시 데려오지!”

휴대폰으로 부른 조류 전문가인 친구의 방문은 채성에게 강한 수치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마치 채성에게 앵무새를 살리는 방법을 연구해 보라는 듯이 힐난하는 눈빛이었다.

“즐거운 소리를 따라 해보게. 그 앵무새가 말일세. 송 박사의 곁에 있었더라면 털에 윤기가 나며 힘차게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있을 걸세!”

그는 송문학을 지지하는 친구였다.

마침 다음 달에 송문학의 모델하우스에 처음 가는 날이었다. 채성은 앵무새 살리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울부짖듯 껌벅이던 앵무새의 눈은 정말 처절할 정도로 지쳐보였다.

그가 집에 돌아온 시간은 이른 새벽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민지선의 집에서 돌아온 애춘은 밤사이 잠 못 이루다가 비몽사몽간에 겨우 깜박 잠이 들었다.

어디선가 ‘깨어라 깨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애춘은 문득 눈을 떴다. 그런데 침실 중앙에 정면으로 보이는〈고호의 해바라기〉의 복제화가 그녀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것은 지난번 민지선의 집을 방문하고 난 후 방치해 두었던 그림을 꺼내어 자신이 그곳에 걸어두었던 그림이었다. 실내의 분위기를 훨씬 부드럽게 하고 있었다.

지난해 피카소의 전시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민지선이 함께 가자고 해서 얼떨결에 따라갔던 전시회에서 구입한 작품이었다. 그들은 모처럼 피카소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어 매우 뿌듯했다. 특히 피카소의 판화와 게르니카를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피카소를 거치지 않고는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의 작품의 총체를 대표하고 있는 듯했다. 민지선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국문학을 전공해서 문학과 연관된 감성이 살아서인지 작품을 감상하는 수준이 꽤 높았다. 그때 마침 3층에서는 국내 작가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인물화와 풍경화가 대부분이었다. 전시장에는 좋은 작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고 특히 인상 깊은 인물화 몇 점이 눈길을 끌었다.

제목은〈식사〉라는 인물화였다. 그 그림의 배경은 토속적인 농가를 배경으로 하여 마당의 평상에서 한식 밥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풍경은 흔히 사진이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보는 풍경이었지만 그 그림의 예술적 가치는 가족들의 하나하나의 표정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아내는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고마움과 기쁨, 그리고 음식을 준비한 노동의 댓가에 만족해하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남편은 이마와 눈가에 자애로운 미소와 하루의 육체적 노동에 배가 고파서 맛있게 식사하는 즐거움, 처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자랑스러움을 나타낸 듯한 모습이었다. 둘러앉은 두 아들과 딸들은 천진스런 자연의 풍요로움에 부모의 애정과 사랑, 맛있는 식사의 즐거움으로 무럭무럭 커 나갈 것을 다짐하는 듯했다. 한 끼의 식사를 맞이하는 가족들의 표정은 너무도 풍성하며 자연스럽고 숭고하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순박하고 참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밥상 공동체에서 그리려는 화가의 정신이 엿보였다. 얼굴 표정 속에서 풍성한 즐거움의 기름이 저장된 만족의 기쁨이 흘러넘쳤다.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의 노력, 힘든 노동을 마치고 배고픔 중에 맞는 농부, 상에 둘러앉은 자녀들, 그들의 밝고 환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얼굴표정을 잘 포착하여 화면에 세심하게 표현하였다. 두 사람은 그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다. 자연속의 전원적인 정서, 땅과 하늘과 나무, 대지, 햇빛, 공기 등, 흙 속에서 자연과 호흡하는 노동 후의 휴식과 평안과 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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