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덕과 음조

사람이 잘 살아가기로 하면 안으로 음덕(陰德)을 많이 베풀어야 하고 밖으로부터 음조(陰助)를 많이 받아야 잘 산다고 합니다. 그럼 음덕은 무엇일까요? 남모르게 선행을 하여 덕행(德行)을 쌓고, 남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선행을 하는 것이 음덕입니다. 그리고 음조는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진리가 들어서 도와주는 것을 말하지요.

그러니까 잘 살고자 하면 밖으로부터 음조를 많이 받아야 하는 데 그러려면 먼저 자신부터 음덕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일찍이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명예를 구한다는 것이 도리어 명예를 손상하게 하며, 지혜 있는 사람들은 따로 명예를 구하지 아니하나 오직 당연한 일만 행하는 중에 자연히 위대한 명예가 돌아오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가자면 우연한 가운데 음조와 음해(陰害)가 없지 아니하나니,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이나 부처님 그리고 조상이나 귀신이 맡아 놓고 주는 것인 줄로 알지마는, 아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심신을 작용한 결과로 과거에 자기가 지은 바를 현재에 받게 되고, 현재의 지은 바를 또한 미래에 받게 되는 것이지 짓지 아니하고 받는 일은 하나도 없는 줄로 아노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치 아닌 이 자리에 부귀와 영화를 억지로 구하며 빈천과 고난을 억지로 면하려 하나, 지혜 있는 사람은 이미 지어 놓은 죄 복은 다 편안히 받으면서 미래의 복락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며. 같은 복을 짓는 중에도 국한 없는 공덕을 공중에 심어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복록의 원천이 마르지 않게 하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음조는 어떻게 받는가요? 노자(老子)는 인간이 양덕(良德)을 베풀면 사람으로부터 보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음덕을 베풀면 하늘이 보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즉, 상(相)에 주(住)하지 않는 보시를 하면 하늘의 음조가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사람이 들어난 악을 행하면 사람이 보복을 합니다. 또한 사람이 숨어서 악을 행하면 귀신이 보복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채근담(採根談)》에「완전한 명예와 아름다운 절개는 혼자서 다 차지해서는 안 된다. 조금은 나누어 남에게 주어야 가히 그로써 재앙을 멀리하고 몸을 보전할 수 있다. 욕된 행위와 더러운 이름은 온전히 남에게 미루어서는 안 되니 조금은 끌어다 나에게 돌려야 가히 그로써 빛을 감추고 덕을 기를 수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남모르게 숨어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 육신 물질로 베푸는 공덕을 지은 후, 사람으로부터 받은 보답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덕에 대해선 진리가 보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온전히 진리의 음조를 받으려면 음덕을 많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잠시 동안의 인간관계로 몇 가지의 일만을 행해가는 것으로서 삶의 전부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에 거미줄같이 얽혀 있는 수많은 인연들과 어울리어 한없는 세상을 거래하면서 서로서로 의지하고 관계하는 중에 일체 모든 일을 지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으로 잘 사는 사람은 영생의 거래를 탄탄대로로 활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시방세계에 빈틈없이 얽혀졌고 또 장차 맺어질 모든 인연들과 길이 상생(相生) 상극(相克)의 업연(業緣)을 초월하여 인연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조선 명종 때, 상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증조부는 재산이 많았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곡식 등을 빌려주다가 늘그막에는 그 문건을 불살라 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진이라는 사람도 과거에 급제하여 영의정을 지냈지만 청렴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맑고 깨끗하게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점을 잘 보는 사람이 상진 대감을 찾아왔습니다. “대감님은 아무 해까지 사실 것입니다.” 하고 갔습니다. 그 후 상진은 죽을 것이라는 그 해가 지나고 15년을 더 산후에 그 점쟁이를 불렀습니다. “자네가 15년 전에 말한 것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 유명한 점쟁이는 “그것은 아마 제가 모르는 가운데 쌓아놓은 음덕이 있어서 그럴 것이니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그래서 곰곰이 지난날을 생각해 본 상진대감이 말하기를 “내가 어느 날 밤 궁에서 퇴청을 하는데 길에 비단 보자기가 하나 보이기에 풀어 보니 궁에서 쓰는 황금으로 된 술잔 두개가 있었다네.

이는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다 싶어서 조용히 거두어 두고 성문 밖에다가 ‘혹시 물건을 잃은 이가 있거든 말하라’는 벽보를 써서 붙여놓았지, 그런데 대전 수라간 별감이 몰래 찾아와 말하기를 ‘제가 조카의 혼사가 있어서 몰래 내다가 쓰고 다시 가져다 놓으려다 그만 잃어버린 물건이 있사옵니다. 제가 그것을 다시 찾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니 널리 혜량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아무 소리 않고 보자기를 돌려 준 것 밖에는 없다네.”

“그렇다면 대감의 수명이 연장 된 것은 분명히 그 별감의 목숨을 보전해 준 것 때문일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점쟁이의 말이 맞고 틀리고가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과 힘든 사람들을 힘닿는 대로 도와가며 죽게 될 목숨조차 살려주는 그 숨은 공덕이야말로 엄청난 음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을 내 힘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바로 타력입니다. 이렇게 자력과 타력이 함께 어울려졌을 때 세상을 살 수 있고 원만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타력이 바로 음조(陰助)요, 이 음조를 불러오는 길이 곧 음덕인 것입니다.

음덕은 몰래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조라고 하는 것은 몰래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음덕을 많이 쌓게 되면 내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복이 음조입니다. 그래서 음덕이 최상의 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음덕과 음조를 많이 쌓아 무량대복을 받으시면 좋겠네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4월 1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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