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제강

김덕권 칼럼니스트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뜻이지요. 노자(老子)의《도덕경(道德經)》78장에 나오는 이 말은 노자의 스승 상종(常樅)이 노자에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노자가 이가 다 빠진 늙은이인 상종에게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말은 무엇을 이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상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며 혀를 날름거리기만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노자는 큰 가르침을 들은 듯 공손히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사람들은 노자의 그런 태도를 의아해 했습니다. 이에 노자는 “스승님은 이미 저에게 아주 심오한 이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가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면 혀는 가장 부드럽고 유연한 부분입니다. 스승님은 이미 이가 모두 빠져 없어졌지만 혀는 여전히 건재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까?”

또한 <군참(軍讖)>에서 이르기를 “부드러움은 강함을 제어하고, 약함이 강함을 제어한다. 부드러움은 덕이고 강함은 적이다. 약함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강함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고 했습니다.(軍讖曰 柔能制剛 弱能制强 柔者德也 剛者賊也 弱者人之所助 强者人之所攻)

또《삼략(三略)》에서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으면 굳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하면 꺾인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처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처하게 된다.(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强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故堅强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是以兵强則不勝 木强則折 强大處下 柔弱處上)

그리고《노자(老子)》76장에서는「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물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는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사람 모두가 알건만 그 이치를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성인은 말했다. 나라의 좋지 못한 일을 맡은 사람을 나라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일을 맡은 자를 천하의 왕이라 한다. 올바른 말은 반대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주 오래전 미국의 키신저 국무장관은 그 단단한 중국의 ‘죽의장막’을 핑퐁외교로 풀어냈습니다. 그리고 그 얼어붙은 철의 장막도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소련공연으로 녹여냈습니다. 우리도 4월 1일과 3일 평양에서 펼쳐지는 평양문화공연이야말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 우리 연예인과 태권도 시범단의 평양공연의 주제가 ‘봄이 온다.’라고 합니다. 이번 방북공연단엔 국민가수 조용필을 비롯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백지영, 서현, 강산에, 걸그룹 레드벨벳, 알리, 정인 등,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약 16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공연단을 직접 인솔했습니다.

이렇듯 남북관계가 평창올림픽 이후 해빙무드로 전환되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 평양공연은 지난 3월 현송월이 이끈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남 공연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치러집니다. 남한의 대중음악이 약 10여년 만에 북한 땅에서 다시 공연된다는 것은 바로 동토(凍土)에 ‘봄이 온다.’는 소식을 북한 동포에게 알려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예상과 달리 이 봄이 오는 소식이 속전속결로 추진되고 있어 놀랍습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압박으로 고립무원에 처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절박함이 묻어난 결과에다가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 론의 주인공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술이 빚어낸 값진 결과라 생각해 봅니다. 이로써 남북한 화해무드와 함께 한반도의 ‘봄날’은 보다 더 성큼 앞당겨질 것이 아닐 런지요?

남북한은 6·25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남북 상호 간 문화적 감성과 정서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그 결과 민족동질성에도 균열이 생겼지요. 냉전이데올로기 체제에서 남북한이 오랜 세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신봉했고, 남한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따랐습니다. 그 결과 정치적, 정서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민족동질성의 관점에서 남북한 사람들의 저변에 흐르는 감성과 정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리랑을 부르면서 서로 눈시울이 젖는다거나 삼박자로 이루어진 민속악에 흥과 신명을 느끼고 흥겨운 장단에 맞춰 자연스레 어깨춤을 들썩이는 몸짓들이 이에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4월 1일이면 한국 대중가수들이 부르는 국민애창곡이 ‘동토의 땅’ 평양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그리고 ‘부르주아 반동’으로 비판받는 한류 아이돌이 평양에 입성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 하여 철저히 배격해 왔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짓눌러버려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이번 평양 문화공연은 4월 27일로 확정 된 남북정상회담의 사전행사 성격으로 열립니다. 정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완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을 의제 화 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 역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국제사회의 경제적 압박을 돌파해 보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겠지요. 북한은 미국 주도로 결행되는 국제사회의 경제압박 철회를 희망할 것이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주문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러나 결과를 낙관하긴 아직 이를지도 모릅니다.

대중예술로 채워지는 이번 방북공연은 남북한에 ‘봄이 온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표방하는 한반도 운전자 론이 탄력을 받으며 한층 담대한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은 어두운 시대가 지나고 바야흐로 남북한에 밝은 해가 솟아 봄이 오려는 때입니다. 우리가 합심하여 유능제강의 심법으로 통일을 이루면, 장차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이 되어 어변성룡(魚變成龍)의 1등 국이 되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4월 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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