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 김덕권칼럼] 화문에서 화문으로

화문에서 화문으로

인간의 감정 상태인 희 ‧ 노 ‧ 애 ‧ 락 가운데 ‘노(怒)’가 가슴속에 쌓여 있다가 폭발한 형태를 화(火)라고 합니다. 이때 화를 ‘불 화’로 쓰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하네요.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노(怒)로 화를 대신합니다. 그러니까 ‘화병은 심암(心癌)으로, 마음속에 기생하는 악성 종양이지요.

최근 ‘화’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한 젊은이가 새로 사온 침대를 조립하는 소리에 화가 난다고 아버지와 누이를 아령으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어찌 된 일입니까? 화를 참지 못하는 사회상에 비상이 걸린 것 같습니다.

이는 경제가 풍요로워 지는 대신 경쟁이 강화되고 시간에 쫓기듯 바쁘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조금함을 느끼게 되는 것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로 인해 욕구불만, 정신적 불안이 커지면서 화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지요.

화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망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 하나로 인해 가족에게 불똥이 떨어지고, 그 불똥이 더욱 커져 전체가 화를 내고 맙니다. 불이 인간에게 이로움이 많은 반면 무서운 재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마음속의 화 역시 열정으로 볼 수 있지만 노여움을 가지고 있어 문제입니다.

그런데 화도 잘 ‘처리’하면 자신을 성숙시키고 타인을 용서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참고 억누르거나 스스로 조절을 하지 못하고 분출을 시킬 경우 화병(火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 화병은 우울증, 불면증, 정신분열증 등을 동반하는 복합정신질환입니다. 화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남의 잘못을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화문(火門)’을 넘어 ‘화문(和門)’으로 가는 길인 것이지요.

《장자(莊子)》<인간세편(人間世篇)>에 ‘달기노심(達其怒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성내는 상대의 마음을 잘 달래서 화를 면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汝不知 夫養虎者乎 不敢以生物與之 爲其殺之之怒也 不敢以全物與之 爲其決之之怒也 時其飢飽 達其怒心 虎之與人異類 而媚養己者 順也 故其殺之者 逆也」이 원문입니다.

‘당신은 호랑이 기르는 자를 모르는가? 감히 살아있는 짐승을 먹이로 주지 않는 것은 호랑이가 그것을 죽일 때 사나와지는 것 때문이며, 감히 온 마리의 짐승을 먹이로 주지 않는 것은 호랑이가 그것을 찢을 때 사나와지는 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굶주릴 때와 배부를 때를 잘 살피고, 그 사나운 마음을 파악하는 데 통달해야 한다. 사람과 호랑이는 종류가 다른 동물이지만, 호랑이가 자기를 길러주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려하는 것은 호랑이의 성질에 따라 먹이를 맞추어 주기 때문이다. 반대로 호랑이가 자기를 길러주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호랑이의 성질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달(達)이라고 하는 것은 상황대처를 적절히 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상대방이 야수처럼 돌변하여 포악해지는 경우 상대방을 조련하듯 달래가면서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보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호랑이를 달래는 ‘달기노심’의 심법은 내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상대방을 감정을 잘 살펴 대응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지요.

성내는 상대의 마음을 잘 달래서 화를 면하여야 한다는 달기노심(達其怒心)을 보며, 우리의 화를 잘 다스리는 방법을 한 번 알아보면 어떨까요?

첫째,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억지로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저 사람이라도 저럴 수밖에 없을 거야’ ‘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저럴 거야’ 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지요.

둘째, ‘내가 왜 너 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신경을 건드린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 있는데,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속을 끓인다면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가 왜 당신 때문에 속을 썩어야 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저절로 화가 풀리지요.

셋째, ‘시간이 약’ 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속상한 일도 며칠 지나면, 아니 몇 시간만 지나면 별 것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 너무 속상할 때는 ‘세월이 약’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지요.

넷째,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화로 인해 속상해 하지 말고, ‘새옹지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즐거웠던 순간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괴로운 일에 매달리다 보면 한없이 속을 끓이게 됩니다. 즐거웠던 지난 일을 회상해 보면 기분이 전환될 수 있습니다.

여섯째,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화가 치솟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침을 삼키듯 꿀꺽 삼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단전주심법(丹田住心法)’이라 하는 것이지요.

일곱째, 전생의 업보라 생각하고 갚지 않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심한 분노가 솟아오를 때는 이를 전생의 업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달게 받고 갚지 않으면 그 업은 쉬어집니다. 이를 ‘감수불보(甘受不報)’라 하지요.

어떻습니까? 이 일곱 가지가 <화문(火門)>에서 <화문(和門)>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모든 일을 화(和)와 유(柔)로 해결하면 능히 강(剛)을 이길 수 있고, 촉(觸)없이 그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화와 유로해도 되지 않는 경우에는 부득이 강을 쓰기도 하는 것도 한 방편(方便)이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화문(和門)이상의 복문(福門)은 없지 않을 까요!

단기 4351년, 불기 2562년, 서기 2018년, 원기 103년 3월 1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