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잊지 말아야 할 두 할머니의 삶,. 임신 이유로 17살 때 일본군이 칼로 배 갈랐다

[증언] "17살 때 일본군이 칼로 배 갈랐다"…일본군 '위안부' 사진 속 만삭 소녀 증언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실을 교육하라는 유엔의 권고를 거부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일어나는 가운데 故 박영심 할머니의 이야기가 재조명된다.

박영심 할머니는 많이 알려져있는 '일본군 위안부 사진' 속 가장 오른쪽에 있는 만삭의 소녀다.

1921년 겨울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태어난 박영심 할머니는 17살 어린나이에 중국 난징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는 "할머니 집에 갔다가 일본 사람이 공장에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해 따라간 곳이 일본군 위안소였다"고 증언했다.

위안소 이름을 묻는 질문에 박 할머니는 "긴스이루. 금수로"라고 정확히 답했다.

일본군은 박 할머니가 자기네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몸에 칼을 댔다.

박 할머니는 "일본군이 배를 째서 피가 많이 나왔다"며 깊은 상처를 보여줬다. 그의 배 한가운데 나 있는 상처는 50cm정도 되어보인다.

박 할머니는 "일본 만행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며 "자기들도 누이동생 있을 것이고 처자도 있을 것이고 자식도 있을텐데 어떻게 사람이 그런 짓을 하냐"며 분개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시원찮다"고 분노를 표출하며 오열했다.

박 할머니는 6년이란 시간동안 일본군의 '군수품'으로 취급당했다.

매일 수많은 폭탄과 포탄이 날아와 터지는 등 언제 죽을지 모르는 최전선에서 하루 30~40여명의 일본 군인을 치러야 했다.

이후 일제가 항복한 뒤 박할머니는 위안소를 탈출하다 연합군의 포로로 붙잡혔다.

1944년 9월 연합군은 송산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위안부들을 사진으로 남겼고, 이때 찍힌 사진에 당시 22살이던 박 할머니의 모습을 담겨있다.

1946년 고향으로 돌아온 박 할머니는 '종군위안부' 생활의 후유증으로 자궁을 드러내고 신경쇠약 등으로 힘든 여생을 살다 2006년 8월7일 향년 85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군의 잔혹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강제 동원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증언] "하루 일본군 10여명씩 받아"…17살 어린 나이에 '위안부' 끌려간 할머니

4년 만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가 다시 명시되면서 故 리상옥 할머니의 이야기가 재조명된다.

1926년 황해도 신평군 추난천리 태생인 리상옥 할머니는 1943년 만 17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당시 산골에서 자란 리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친구 2명과 함께 야시다라는 일본군에 끌려갔다.

일본군은 세 사람을 차에 태워 위안소에 데려다 놓으며 "너네들 내 말 안 들으면 죽는다"라고 협박했다.

첫째날은 아무 일도 없이 잠을 잤지만 일본군은 이틀 뒤 온갖 폭력과 욕설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리 할머니는 "그때는 그렇게 하고 말았는데 며칠 뒤에 또 와서..." 라며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끝내 오열했다.

17살 소녀는 리 할머니는 "사람이 하나둘이라면 모르는데 10여 명씩 들어왔다"며 "일요일 같은 날은 사람이 수도 없이 들어왔다"고 증언했다.

눈물을 흘리며 증언을 이어가던 리 할머니는 "당시만 생각하면 목구멍에서 피가 나오고 떨려서 못 살겠다"고 치를 떨었다.

인터뷰차 동행한 일본인에게도 "당신네 보기만 해도 나는 이렇게 힘이 든다"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했다.

위안부 생활 당시 일본군은 리 할머니를 꿇어 앉혀놓고 무릎을 구둣발로 밟아 흉터를 남겼다.

게다가 함께 위안부에 끌려간 리 할머니의 친구는 폭력을 당해 피를 흘리다 숨을 거뒀다.

리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오직 사과뿐이었다. 리 할머니는 "당신네가 준 모욕 보상하라요. 왜 못하나요"라며 "60년이 지났는데 왜 그 생각을 못 했냐"고 울부짖었다.

리 할머니는 목숨을 걸고 탈출해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며 지내왔다.

자식도 없이 혼자 살아가던 리 할머니는 지난 2005년 당시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한편 북한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희생자위원회에 따르면 일본군이 위안부 희생자를 스스로 돌려보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본군이 내다 버린 경우가 34.2%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위안소에서 도주(24.3%), 전쟁 속에서 생존(23.3%), 연합군 포로(15.2%)로 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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