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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비화] 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 김상현의 라이프 스토리

기사승인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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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방어에 성공한 김용강(중앙) 챔프와 김상현(좌측), 김철호(우측) /사진=조영섭관장

조영섭의 복싱비화(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 김상현의 라이프 스토리 )오늘 복싱비화의 주인공은 영등포 88프로모션에서 함께 트레이너 생활을 했던 WBC 슈퍼 라이트급 챔피언을 지낸 김상현이다, 편의상 존칭은 생략한다.

1989년 내가 초년병 트레이너로 있을 때 그는 진윤언 송광식 장기중 이경연 등 정상급 복서들을 조련하고 있었다. 

김상현은 1955년 부산태생으로 73년 프로에 대뷔하여 78년 12월 WBC 슈퍼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 태국의 사엔삭 무앙수린을 13회 KO로 잡고 프로복싱 7대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복서이자 부산 최초의 세계챔피언 이다. 통산 49전43승2무4패(25KO승)을 기록한, 김상현은 김광선 김광민 정영근 최만성 김갑수 박동안등 국내정상급 복서들과 23차례 맞대결을 펼쳐 단 한차례도 패하지 않고 링을 떠난 그의 숨은 비화를 펼쳐보자.. 

그럼 시간의 수레바퀴를 29년 전인 90년 9월로 되돌려 보자 전 WBC 플라이급 챔피언 김용강이 한체급을 올려 WBA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 카오사이 갤럭시(태국)의 15차방어 도전자로 결정되어 나와 이영래사범 심영자회장 김중석 전무 김기윤 사장 등이 일행이 되어 태국의 수판부리로 떠났다.

44승 39 ko승 1패 기록한 챔피언 극강의 챔피언 카오사이 갤럭시 와의 대결을 앞두고 이영래 사범은 승산이 희박함을 느꼈는지 치탈라타와  대결 할 때처럼 전력투구해 지도하지 않았던 경기로 기억된다. 용강이는 이런 이영래 사범이 이번경기는 버리는 카드 즉 패전처리용으로 대하는 행동에 암묵적으로 서운함을 느꼈으리라 ...

WBA 플리이급 챔피언 김용강과 김상현 관장(우측)

태국 현지에 도착하자 대한 복싱협회 심판장을 엮임한 원주출신의 김황운 선생이 마중나와 많은 배려와 편의를 제공해 준다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는데 이영래 사범이 미트를 가지고 오질 않았다 이유를 묻자 사범 이영래는 용강이의 전력이 노출될까 염려해서 가져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용강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용강이는 당일 계체량에 실패하며 곤욕을 치룬 끝에 가까스로 통과한다. 용강이의 원래 스승은 유원건설 김치복 관장이다 아마츄어 때인 83년 변정일(원진체) 과 함께 서울 신인대회에서 우승한 후 중앙무대에서 김광선과 오광수에 연달아 좌초되자 85년 프로로 방향을 틀었다.

그후 이영래사범의 지도를 받으며 88년 7월 WBC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치탈라타(태국)를 꺽고 정상에 등극했다 세계정상에 올라서는 것은 세상이 나를 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세상을 보게 하기 위해 올라선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용강이는 그런 짜릿한 희열과 감흥을 느꼈던 챔피언 이었다.

그러한 용강이의 섬세한 테크닉은 이영래 사범에게 전수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그는 지도력이 뛰어난 조력자였다.

하지만 카오사이와 경기에서 용강이는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며 6회KO패 당한다 현장에 있던 내가 보기엔 스스로 경기를 포기했다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일 듯 싶다 귀국하면서 나는 트레이너가 교체될 것 같은 암시를  강하게 받았다 당시  울적한 마음에 기내에서 일간스포츠 신문을 펼쳐드니 1면에  해태의 선동렬이 테평양의 김동기에 홈런 허용 391.1이닝만에 연속이닝 무피홈런 기록이 깨지다 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아무튼  예상대로 귀국해서 김용강의 트레이너는 김상현으로 교체가 되었다.

김상현 관장과 최진석 관장

김용강은 김상현 관장과 호흡을 맞춰 91년 6월 WBA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 녹슬지 않은 다채로운 연타를 선보이며 콜롬비아 출신의 챔피언 알바레스에 전원일치 판정으로 잡으며 국내 최초로 양대기구(WBA.WBC)를 접수하며 제2의 전성기를 펼친다.

김상현의 세심한 지도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김용강의 실핏줄 사이로 빨려 들어가며 포텐이 터지면서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던 것이다. 

91년10월 1차 방어전에서 유명우의 15차 16차 방어전 상대이자 20전14KO승 2패를 기록한 후에 4체급을 석권한 레오 가메즈를 맞이하여 테크닉의 진수를 보여주며 군말없는 판정으로 잡아낸 경기는 압권이었다.

이어 92년 3월 15전승 7KO승을 기록한 조나단 페날로사 마져 면돗날 처럼 예리한 펀치로 상대의 화력을 무력화 시키면서 6회 KO로 잡은 경기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내심 15차방어는 가겠는데... 하는 생각이 든 경기였다.

김용강은 심혈을 기울여 지도하는 김상현 트레이너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고 롱런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김용강은 문성길처럼 치고받으며 충격을 교환하는 스타일이 아닌 때리면서 잘 맞지않는 정교한 복싱을 구사하는 기교파 복서였다.  92년 9월 김용강의 3차방어전  상대는 12승(5KO승) 4패1무를 기록한 아퀼레스 구즈만으로 158cm의 작은 신장의 다소 만만한 복서였기에 쉬어가는 방어전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김상현은 사무실에서 매니져 김철호와 밀담을 나눈다.  

심상치않은 그장면을 나는 유심히 지켜봤다. 잠시후 아무말없이 나온 그는 그렇게 말없이 떠났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한세대가 흘러 김상현 관장을 통해 직접 답을 들을수 있었다 그의 요구사항은 사실 별거 아니었다. 인천에서 출퇴근 하면서 활동 하다보니 잡비(雜費) 가 좀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트레이너비 를 조금 앞당겨서 일부만 가불해 달라 고 말했던 것이다.

이에 매니져 김철호가 묵살해 버리자 자존심강한 그가 떠난 것이다 김철호 입장에서는 김용강의 원래 스승인 이영래 라는 카드가 있기에 붙잡지 않은 것이다.

결국 김철호의 선택은 자충수(自充手)되어 후에 부메랑으로 연결되면서 역효과가 나타난다. 김용강은 트레이너가 교체되자 멘탈이 붕괴 타이틀을 상실함으로써 은퇴를 앞당기는 최악의 한수가 되고말았던 것이다.  

(왼쪽부터)=이영래 사범, 문성길선수, 김용강선수, 매니저 김철호
(사진)=김용강 챔프, 이영래 사범(우측)

김용강은 구즈만과 대결을 앞두고 속칭 강남 로얄 페밀리 등과 어우러져 유흥과 향락에 빠져 훈련을 게을리 한다. 

특히 새벽훈련을 위해 숙소인 라스베가스 호텔의 문을 김철호가 두들기면 문을 잠근체 푹 자버리면서 스스로 자폭(自爆)의 길을 걸었다 말없이 돌아서는 김철호 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종말의 예고탄 인줄 그는 짐작했을까? 결국 김용강은 참패를 당하며 사실상 선수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러자 이번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 즉 김상현 휘하의 송광식 진윤언 장기중 이경연등 걸출한 복서들이 그가 떠나자 탄력을 잃고 기량의 정체현상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93년 11월 최고의 히트상품인  문성길 마져 10차 방어전에서 벨트를 풀면서 은퇴를 선언하자 94년 5월 어느날 김철호 그는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외국으로 떠나면서 프로모션은 막을 내린다.

벼락을 맞고도 끄떡없이 버틴 켈리포니아의 거목도 바퀴벌레에 의해서 쓰러지고 웅장한 함선도 조그만 구멍에 의해서 침몰되듯이 국내 최고의 88프로모션도 사소한일이 빌미가 몰락의 서곡이 울렸던 것이다.

역사에서 만일 (if) 이라는 가정이 있다면, 김철호가 당시 복싱선배 김상현에게 예우를 갖춰 건의사항을 들어 줬더라면 삼품백화점이 붕괴되듯이 88프로모션은 한순간에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복기하며 곱씹어보며 볼 만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건실한 챔피언이자 소신있는 지도자였던 김상현은 이후 주일대사 출신의 권철현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엮임하다 지금은 사연많은 복싱계의 영욕이 점철된 수많은 사연들을 속잠바 에 감추고 개인사업 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행운을 빈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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