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일 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토론한 ‘홍카레오(홍카콜라+알릴레오)’를 보았습니다. 진보와 보수진영의 대표적 논객인 두 사람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등 각종 현안에 대해 격론을 벌였습니다.

김덕권 칼럼니스트

이번 방송은 유시민 이사장 측이 홍준표 전 한국당대표에 제안해 성사됐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별도의 원고 없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토론에 나섰습니다. 유시민 이사장은 “홍 전 대표가 궁금해서 만난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홍 전 대표를 디스할 생각은 없고, 아무 준비 없이 나간다. 홍 전 대표가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분이다’라는 것을 입증해 보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날 토론이 불꽃 튀기는 접전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자 금도(襟度)를 지켰습니다. 역시 두 진영의 대표논객 다운 품격을 지켰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국정치의 한 가닥 희망을 본 것 같습니다. 서로 비평하고 비난을 하더라도 각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면 가능한 일이 아닌가요?

그런데 이와는 달리 정치권의 막말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강 대 강대치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거친 말들을 주고받는 등, ‘극단의 정치’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한국당 의원 연찬회에서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보다 지도자로서 더 나은 면모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앞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을 성매매 여성에 빗댄 ‘달창’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습니다. 김무성 의원의 ‘청와대 폭파’ 발언, 김현아 대변인의 ‘한센병’ 발언 등, 막말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선교 사무총장은 앉아서 취재 중인 기자들을 향해 ‘걸레질’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또 다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특히 차명진 전의원의 ‘세월호’ 막말은 그의 말대로 징 하기 짝이 없습니다.

여당도 별로 나을 것이 없습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지정 후 한국당을 향해 “도둑놈에게 국회를 맡길 수 있느냐. 반드시 청산해야 할 사람은 청산하고 제 정치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우상호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제가 볼 때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금 좀 미친 거 같다.”고 했습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여야는 불구대천의 원수같아 보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국회와 국민들은 어찌 하여야 할까요? 국회를 해산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여야의 극한대치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수 없는 진보는 위험합니다. 또한 진보 없는 보수는 고루(固壘)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떻게든지 우리 여야는 조화(調和)를 찾아야 합니다.

소설가 김훈은 지난 6월1일 경북도청이 주최한 ‘백두대간 인문 캠프’에 강사로 나와 하회(河回)마을의 전통문화를 풀이하며, “네가 침 뱉으면 나는 가래침 뱉겠다는 게 요즘 세상이다. 하루도 안 빼놓고 악다구니, 쌍소리, 거짓말, 쓸데없는 소리로 날을 지새운다. 하회마을이 수백 년 쌓아온 덕성과 가치를 오늘의 한국 사회가 상실해가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전통의 힘, 보수적인 것의 힘, 그 안에 우리 미래를 열어젖힐 수 있는 힘의 바탕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설가 김훈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보수 없는 진보는 위험합니다. 또 진보 없는 보수도 고루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보수만으로는 미래를 열어젖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슨 수로든지 진보와 보수의 환상적 조화만이 미래로 세계로 나갈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힘을 어디서 찾을까요? 그것은 바로 원불교의 환상적 동서(東西)의 결합에서 찾는 것입니다. 원불교는 전북 화해(花海) 마을에서의 ‘화해제우(花海際遇)’로 진보인 전라도와 보수인 경상도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해제우’는 원불교를 창시하신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과, 그 법을 이어 받아 원불교를 반석위에 올려놓으신 ‘계벽성자(繼闢聖者)’ 정산(鼎山) 종사의 만남을 기리는 뜻이 있습니다. 소태산 부처님은 ‘불교 개혁론’을 주창하시며, 신앙의 패러다임을 불상(佛像)으로부터《일원상(一圓相)》으로 전환하는 당대 최고의 진보셨습니다.

반면에 정산 종사는 영남 거유(巨儒)인 송준필의 서당에서 영남유학의 학맥(學脈)을 계승하신 보수이지요. 이 두 분의 환상적 결합으로 ‘진보인 것 같으면서 보수이고, 보수인 것 같으면서 진보인 원불교의 사상적 완성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불교의《사은(四恩)》을 보면, <천지은(天地恩)>과 <부모은(父母恩)>은 ‘하감지위(下感之位)’로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전통적 보수의 가치관을 함축한다면, <동포은(同胞恩)>과 <법률은(法律恩)>은 ‘응감지위(應感之位)’로 불가(佛家)와 법가(法家)의 진보적 가치를 대변합니다.

그래서 원불교는 정산 종사의 말씀대로 ‘과거 일이 좋으면 과거사를 참고하고, 새 의견이 옳으면 그 의견에 좇아서, 누구의 의견으로든지 교단만 발전시키면 될 것’이라는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적인 포용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수의 힘 안에서 미래를 열어 갈 힘의 바탕을 찾고 싶다면, 원불교의 진보와 보수의 환상적 결합에 답이 있지 않을까요? 진보와 보수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점에 우리 정치인들이 착안하여 정치에 응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국민은 여야의 극한대립과 막말퍼레이드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총선 까지 1년 정도 남았습니다. 막말을 한 여야의 정치인들은 모조리 찾아내어 국민들이 낙선운동을 펼쳐야 합니다. 이 막말하는 선량(善良)들의 인격은 보나 마나입니다.

세상이 열릴수록 싸우기 좋아하는 정치인은 망합니다. 앞으로는 국가 간의 싸움이나 개인 간의 싸움이나 먼저 덤비는 사람이 패할 것입니다. 앞으로 진보와 보수의 환상적 조화로 이 나라의 국운을 활짝 열면 어떨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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