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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눈

기사승인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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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눈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아마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지난 5월 5일 언론에서는 ‘웃으며 귀국한 김정남 살해 베트남 여성’이 보도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사람 목숨을 앗아갔는데 웃으며 들어와 보기 흉했다.”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가 상해죄로 실형 선고를 받고, 지난 3일 출소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31)이 활짝 웃으며 고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한국은 물론 현지 누리 꾼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북한 공작원의 말에 속았다고 하더라도 암살에 가담한 게 분명한데, 사과나 자숙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마치 스타처럼 행동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그럼 그 여인은 과연 죄를 벗어난 것일까요? 설사 말레시아 정부가 외교상의 이해관계로 감옥에서 풀어줘 고국으로 돌아 왔다 하더라도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사람을 죽여 놓고 무슨 개선장군이나 된 듯이 귀국한다는 것은 아마 진리의 눈으로 볼 때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 같습니다.

세간의 재판에도 삼심(三審)이 있듯이 법계의 재판에도 삼심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진리의 심판을 모르는 것입니다. 초심은 양심의 판정이요, 이심은 대중의 판정이요, 삼심은 진리의 판정입니다. 이 세 가지 판정을 통하여 저 지은대로 호리(毫釐)도 틀림없이 벌을 받게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세간의 재판만으로는 다 하기 어려운 절대 공정한 인과재판인 것입니다.

세간의 재판은 판사들이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인간의 일이기 때문에 오류(誤謬)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계(法界)의 재판, 즉 진리의 판정에는 털끝만치도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재판에서 설사 혐의가 없다고 판정이 이루어 졌다고 해서 진리의 판정이 동일하게 무죄라는 법은 없습니다.

옛날 효봉(曉峰 : 1888~1960) 스님의 얘기가 있습니다. 판사의 오류에 대한 얘기이지요. 효봉 스님의 속가의 이름은 이찬형입니다. 조선인으로 처음 판사가 된 이찬형은 함흥지방법원에서 근무하다가 조선인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재판이 오류임을 알게 된 이찬형은 그 자리에서 바로 법복을 벗고 엿장수가 되어 3년간 전국을 유랑합니다.

유명한 엿장수 판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1925년 38세에 삭발하고 스님이 됩니다. 그 후 해인총림의 방장(方丈)을 거쳐 1962년 조계종의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됩니다. 이렇게 인간이 참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재판이 아니라 눈곱만치도 틀림없는 진리의 판정입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진리가 있습니다.

인과란 원인과 결과를 합쳐 말합니다. 그 둘은 별개가 아니지요. 또한 그 사이에 존재할 조건들 역시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의 조건들을 우리는 연(緣)이라고 부릅니다. 인(因)은 연을 사이에 두고 결과를 맺고, 모든 결과는 다시 원인과 연결됩니다.

이 원인과 결과를 합쳐보면 이 세상에 우연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곧 원인이고, 원인이 곧 결과인 것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인과율(因果律)의 적용을 현재의 삶에만 적용하지 않고 내세(來世)로까지 확장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생에서 나쁜 일을 하면 다음 생에 좋지 못한 존재로 태어난다고 설파(說破)하는 것이지요.

이 원리는 단순히 세상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불가에서는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 속에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고, 바로 여기에 관련된 법칙이 연기(緣起)인 것입니다. 또한 과보(果報)가 나타나는 시기를 셋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첫째, 순현보(順現報)입니다.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주 나쁜 행위나 아주 선한 행위를 할 때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게 되지요.

둘째, 순생보(順生報)입니다.

순생보란 ‘생을 따라서 과보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전생에 지은 것은 금생에 받고 금생에 지은 것은 내생에 받는 것입니다. 지금 바르게 살고 있는데도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전생에 잘못한 것을 지금 받는 것이고, 지금 선한 일을 한 것은 내생에 가서 받을 것입니다.

셋째, 순후보(順後報)입니다.

전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안 받고, 금생에 지은 것을 내생에 받지 않는 경우입니다.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때가 되면 받을 것은 반드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사람이 주는 상벌(賞罰)은 유심(有心)으로 주는지라 아무리 밝다 하여도 틀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의 심판은 무심으로 주는지라 선악 간 지은대로 털끝만치도 다르지 않게 보응(報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찌 무죄를 받았다고 안심하고 희희낙락할 수 있겠는지요?

지금 내가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가 내가 만들어 낸 업(業)의 결과입니다. 이 이치를 모르면 세상을 원망하고 진리를 탓하게 마련이지요. 도둑놈이 자신의 행위가 나쁜 짓임을 알지 못하면 매일 남의 물건을 훔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다가 결국은 잡혀 감옥에서 고통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내일부터는 술을 끊는다고 하면서 수 십 년 이상 술을 먹어 간경화나 간암에 걸려 세상을 떠납니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악업이 쌓여서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유 없이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 것이지요. 반대로 드러나지 않지만 작은 선행이라도 쌓이다보면 거대한 행복의 강을 이루게 마련인 것입니다.

진리의 눈은 호리도 틀림이 없습니다. 때가 되면 올 것은 다 오게 마련입니다. 사람을 죽이고도 웃으며 돌아온 베트남의 ‘흐엉’이 죄가 없다고 자만하면 안 됩니다. 진리의 삼심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지요!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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