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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2)

기사승인 2019.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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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2)
어제에 이어 두 번째, 이을형 전 숭실대 원로교수님의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보내드립니다. 참으로 이 유구하고 광대한 우리역사를 어찌 이 작은 반도의 틀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중국과 일본의 책략을 두고 볼 것인가요? 이제 깨어나야 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는 책무는 바로 우리 덕화만발 가족에게 있는 것입니다.

【백제(百濟)도 대륙의 대국이었다. 백제의 한수(漢水)는 하수(河水)이며,「삼국사(三國史)」권(卷) 46 중에 있다. 또 한강(漢江)- 하수(河水)- 한수(漢水)라는 강은 황하(黃河)이다. 백제는 황하가 있는 대륙에 있었다는 것은 세계사학자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김부식(金富軾)의「삼국사(三國史)」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한국사 전반부 2000년을 잘라낸 부분은 김부식이 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일본이 저지른 폭거인 것으로 생각된다. 단군에 대한 기록도 마찬 가지다. 그러나 대륙중원의 역사를 연구하며 살펴 본 결과「삼국사」의 기록 중, 삼국시대의 기록은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삼국사」한국사 전반부 2000년을 잘라낸 역사서(歷史書)이다. 당시 묘청(妙淸)등 반대파의 북진논리(北進論理)를 막기 위해서라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은 결코 잘한 일이 못 된다.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필자도 비판을 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한 것은 평가를 받을만해 신뢰하는 것이다.

어쨌든 김부식의「삼국사」권46의 기록은 대륙을 지배한 내용으로 일제가 왜곡한 삼국시대 왜곡역사를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어서 금과도 바꿀 수 없는 내용이다. 한편, 신라의 기록은 삼국통일을 위한 전쟁터가 반도라고 거짓말을 하나, 삼국통일의 전쟁터가 다 대륙에 있지 반도에는 없다. 반도에 있다는 것은 다 왜곡된 허구이다. 그리고 계백(階伯)장군이 김유신의 신라군과 싸운 황산도 대륙에 있다. 황산이라는 지명은 여러 곳에 있다.

곡부의 황산(黃山), 권한진-황산(黃山), 간장진-황산(黃山), 곽리진-황산(黃山)등이 있는데, 계백장군이 전사한 황산은 어디인가? 그 곳은 간장진의 황산(黃山)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도가 아니다. 그리고 김유신도 반도에 없었다. 그는 대륙에서 자랐고 그 조상도 대륙에 있었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첫 번째가 헌원(軒轅)으로 김유신도 ‘헌원’의 후예다.

헌원은 염제(炎帝) 신농(神農)의 자손으로, 이들의 무덤도 다 대륙에 있다. 허무맹랑한 거짓으로 이 사실들 숨길 수 없다. 요(堯)임금도 헌원(軒轅)의 4대손이다. 또 ‘절강통지(浙江通志) 권(卷)9’ 산천초에는 신라지명이 저장성에 줄줄이 분포되어 있다고 했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대륙의 나라가 무너진 후, 반도로 와서 유민(流民)이 세운 백제의 수도가 부여(夫餘)이다. 대륙의 사로신라(斯盧新羅)는 왕(王)이 다스리고, 서라벌의 동 신라는 칸(干)이 다스렸으나, 503년 낙랑국(樂浪國)이 고구려에 흡수되고, 지증왕(智證王)이 왕(王)이 되기 이전부터 서라벌(徐羅伐) 경주(慶州)가 칸 신라(干新羅)의 수도(首都)라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한족의 정사(漢族正史)도 왜(倭)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대처해야 할 것은 649년 이전의 장안(長安)중심의 한족(漢族)의 정사(正史)에서, 왜(倭)가 양자강 이남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3세기 진(晉)때의 삼국지(三國志)와 4세기 송(宋)나라 때의 후한서(後漢書)는 왜(倭)의 위치(位置)를 이렇게 설명 하고 있다.

왜는 500년 이전 대륙에 있었다. 우리는 왜가 일본역사로만 봐왔으나 실은 우리역사이다. 왜는 고조선(古朝鮮)의 일부이고, 동이(東夷)의 일부이지 결코 다른 민족이 아님에도 현재 반도와 일본의 상황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왜는 한(韓)의 78제후국(諸侯國)의 하나였던 ‘왜’인데 이제는 그 거짓이 다 드러나서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아시아의 학자들은 왜가 현재의 일본열도(日本列島)에 있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4세기이전 기록이지만 당태종(唐太宗) 이전 까지 발행된 양서(梁書), 북사(北史), 남사(南史)까지도 왜가 회계(會稽), 담이(儋耳), 남월지(南越地)에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야마토국(大和國)은 대륙에서 타이완(臺灣)으로 건너간 망명정권이다. 일본국호(日本國號)를 쓰기 시작한 것은「신당서(新唐書) 권(卷)220」일본전도에 함형원년(670년)이라 하고 있다. 즉, 일본정권(日本政權)은 670년 이후부터 일본(日本)이라는 국명(國名)을 타이완에서부터 쓰기시작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를 일본 학자 중에도 모르는 자가 많다.

그리고 후한(後漢)이 서기 57년에 ‘왜왕(倭王)이 사자(使者)를 낙양(洛陽)에 파견하여 노예160인을 광무제(光武帝)에게 봉공(奉貢)했다’고 하였다. 이에 광무제가 왜왕에게 끈을 단 사유(蛇鈕), 즉 도장(印綬)을 주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손잡이를 줄로 감은 금인(金印)이 뱀을 본뜨고 있는 ‘사유’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후한이 남북의 외신(外臣)에게 주는 법도인데 이를 모른 것이다.

보통 한(漢)나라가 외신(外臣)에게 주는 인장(印章)은 북방민족에게는 ‘낙타유(駱駝鈕)’를 주고, 남방민족에게는 뱀을 본뜬 ‘사유’를 주는 것인데, 일본의 사학자가 왜 ‘사유’를 받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 이는 일본이 양자강 이남에 있었던 것을 숨기고 있어서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의 진실은 하남성(河南省) 서화(西華)에서 한반도까지 하나의 민족으로 기록했던 것이다. 숭실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1666년의『천하고금편람도』와 외국의 고지도는 타이완이 분명히 일본이라 나와 있다. 제아무리 중국과 일본의 반도식민사관자는 양심을 팔면서 까지 역사를 왜곡하나 역사의 진실은 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지게 마련이다.

우리역사는 아시아의 역사이며, 세계의 시원국(始源國)이다. 우리는 거짓 없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상고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세에 이르기 까지 온 국민에게 자랑스럽고 위대한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 알도록 해야 국가도 민족도 제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어떻습니까? 연 2회에 걸쳐 이을형 교수님의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저의 재주가 미천하여 이을형 교수님의 본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닙니다. 덕화만발 가족들의 혜안으로 바로 잡아 주시면 좋겠네요!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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