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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4등 칸이 없어서요.

기사승인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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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4등 칸이 없어서요.
왜 사람들은 사랑을 할까요? 사랑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그 자체에서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지요.

사랑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에도 큰 사랑과 작은 사랑이 있지요. 저는 천만 다행하게도 일원대도를 만난 후 비로소 이 큰 사랑에 눈을 떴습니다. 그 큰 사랑이란 내 한 몸, 내 한 가족을 뛰어넘어 일체생령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과거의 저와 같이 힘들고 고단한 사람들을 정법으로 인도하여 함께 사랑의 기쁨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일원대도로 연원(淵源)한 바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 범위를 더 넓혀 맑고 밝고 훈훈한 아름다운 카페 <덕화만발>과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인을 상대로 사랑의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사랑은 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사랑의 범위를 넓고 크게 잡으면 다 큰 사랑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랑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면 그것은 이룰 수 없는 짝사랑에 불과합니다. 그럼 사랑의 열매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을 남김없이 정법회상(正法會上)으로 이끌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들의 수만큼 사랑의 수도 많습니다. 사람은 각각 자신의 성격, 자신의 상상력에 맞는 사랑의 방식을 갖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찾지 못하면 상상의 사랑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에서 나오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 주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랑이 싹트고 연심(戀心)이 불타오릅니다. 연심을 억누르는 묘약은 없습니다.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 싹터 오르는 것입니다.

넷째, 사랑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짝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대개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싶어도 거절을 당할까봐 고백을 망설이지요. 연정이 불타오르면 용감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상대방도 나의 고백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용기가 없으면 평생 사랑 한 번 할 수 없지 않을까요?

다섯째, 지초(芝草) 다루듯이 공을 들이는 것입니다.

사랑이 받아들여지면 마치 난초 다루듯이 조심조심 다뤄야 합니다. 완전하게 사랑이 굳어질 때 까지 온갖 공을 들이는 것이지요.

여섯째, 사랑은 구속이 아닙니다.

구속을 하면 누구나 괴로워하기 마련입니다. 신심(信心)이 싹트고 공부심이 커지면 다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 정도에 이르면 자력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면 위대한 사랑을 불태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불꽃의 크기에 따라 사랑의 크기도 결정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의 사랑 밖에 얻을 수 없습니다. 한 나라를 사랑하면 한 나라에서 받들어 줍니다. 세계를 사랑하면 전 세계에서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체생령을 사랑하면 온 생령이 부처나 보살로 받들어 모시지 않을까요?

불보살은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하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럼 그런 불보살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알버트 슈바이처(1875~1965) 박사가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를 떠나 경유지 파리에 도착 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려고 그가 탄 기차로 몰려들었습니다. 슈바이처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伯爵) 칭호를 받은 귀족 이었습니다.

그래서 취재경쟁에 열중한 기자들이 한꺼번에 특등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시일등칸으로 몰려가서 찾아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또다시 이등칸으로 가 봤으나, 거기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모두 허탈한 나머지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영국 기자 한 사람만이 혹시나 하고 3등 칸을 기웃 거리다가 뜻밖에 거기서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냈습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딱딱한 나무 의자에 꽉 끼어 앉아 있는 퀴퀴한 악취로 가득한 3등 칸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슈바이처박사는 그들을 진찰하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특등실로 자리를 옮기기를 권했으나 슈바이처 박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3등 칸에 타셨습니까?” “네, 이 기차는 4등 칸이 없어서요.” “아니 그게 아니고 선생님께서 어쩌자고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시며 가시냐는 겁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잠시 후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합니다.

“저는 편안한 자리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자리를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감동적인 내용 아닌가요? 편안한 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자리를 찾아다닌다는 말, 바로 이것이 어쩌면 우리들이 이 땅에 오게 된 이유가 아닐까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불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성불제중의 원(願)이 모든 발원 가운데 으뜸입니다. 우리 사랑을 합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뜨거운 사랑을 합시다. 그것이 일체생령을 사랑하는 불보살의 위대한 사랑이니까요!

김덕권 duksan403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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