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키스

아주 오래전 저는 원불교소설 <담무갈(曇無竭)> 전4권을 쓰시는 소설가 남지심(南智尋)님을 모시고 영광의 불갑사(佛甲寺) 조실스님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조실 스님에게 단배(單拜)를 올렸더니 왜 삼배(三拜)를 하지 않느냐는 꾸중을 들은 바가 있었습니다. ‘아니 원불교에서는 종법사님을 뵈어도 단배를 올리는데 삼배라니요?’

제가 젊은 혈기에 절의 풍속을 알지 못해서 나온 행동인데, 순간 조실 스님을 신격화(神格化)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불교에서는 본래 <불(佛)⦁법(法)⦁승(僧)> 삼위(三位)를 한 몸으로 보고 삼배를 올린다는 사실을 모르는데서 나온 해프닝이었지요.

그런데 지난 3월 2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성지인 이탈리아 로레토를 방문 중, 신자들이 교황의 반지에 입을 맞추려 할 때마다 손을 빼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이 온라인을 통해 퍼지면서 가톨릭계가 보수⦁진보 간에 문화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가톨릭 보수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까지 비난했습니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신도들이 자신을 성스러운 존재로 취급하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두둔을 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나 예수님이  아닌 인간 교황”이라는 것이지요.

교황의 손등이나 반지에 키스하는 것은 14~15세기 유럽 상류층들이 왕이나 황제에게 인사할 때 쓰던 방식이라네요. 가톨릭이 이를 받아들여 성직자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반지키스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교황이 현재와 같은 교황의 호칭을 사용한 것은 서기 590년입니다. 그 후 교황이 신적인 존재, 즉 ‘교황 무오설(無誤說)’이 받아들여진 것이 1870년이지요.

이때부터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최상의 존경의 대상으로 반지에 키스하는 관습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반지의 키스는 가톨릭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예수회 출신의 현 프란체스코 교황으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웠을 거라 이해하면 안 될까요? 그러니까 신적인 존경도 거북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지에 입맞춤을 하다보면 세균에 전염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가톨릭 교황은 신격화 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격화는 교황의 즉위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황의 이동용 성좌(聖座)는 사람들 위로 높이 들려 운반되는데, 이처럼 교황이 사람들 위로 들린 성좌를 타고 다니는 것은 왕이든, 추기경이든, 대통령이든, 주교든, 신부든 이 모든 자들 위에 위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로, 교황은 성좌를 타고 성베드로 성당에 옮겨져 큰 제단에 자리를 잡습니다. 여기서는 추기경들에 의해 그의 입, 손, 발에 입맞춤을 받는 경배를 받습니다. 두 번째로, 식스투스 예배당의 제단으로 옮겨지며, 세 번째로 대 제단에 옮겨진 후, 네 번째로 그레고리 예배당의 권좌로 옮겨져서 거기에 앉아 추기경들, 대사들, 국왕들의 경배를 받는데, 추기경들은 그의 손에 입을 맞추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무릎에 입을 맞춥니다.

다섯 번째로, 교황은 대 제단에 옮겨진 후, 그 자신의 권좌에서 제5예배를 받습니다. 교황은 권좌에 오르고 세 개의 관으로 치장된 삼중 관을 쓰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당신이 이 관을 쓸 때는 모든 왕들의 아버지이며, 우주 최고의 판단자이며, 지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 우리의 구세주임을 잊지 마소서”

이렇듯이 교황은 하나님으로 숭배 받는 자로 신격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교황은 분향 받고 있으며, 그 분향 받는 정도가 하느님이 분향 받는 정도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가톨릭이 베드로의 권좌에 앉는 자를 지상에 있는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교황을 분명히 하느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교황 줄리어스 2세는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 제4회기에서, 다음과 같이 인사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보호자이며 구세주입니다. 당신은 지배자입니다. 궁극적으로 당신은 지상의 또 다른 하느님(another God)입니다.” 교황 비오 11세는 “내가 성스러운 아버지이며, 지상의 하느님의 대리, 그리스도의 대리임을 알라. 이것은 내가 지상의 하느님임을 이르는 것이노라”

가톨릭 종교법에서도 교황이 하느님으로 불립니다. 교황 그레고리12세의 칙령에서는 교황을 “주 하느님”으로 불렀습니다. 또한 교황 요한 22세는 교회법에서 “우리 주 하느님 교황”이라고 칭하여 졌습니다. 또 교황 비오 10세는 “교황은 교황이라는 육체의 베일로 자신을 가리고 있는 예수그리스도 자신이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

한술 더 떠서 교황 보니파스 8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로마교황은 모든 사람을 심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아무에게도 판단 받지 않는다. 또한 로마교황에게 복종함으로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공포해야만 한다. 모든 만물이 그의 발 앞에 순종하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은 나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나도 그리스도처럼 왕 중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절대자이며 모든 것 위에 있는 자이다.”

어떻습니까? 교황은 신인가요? 아니면 인간인가요?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임을 선포한 것이 아닐 런지요! 이러한 측면에서 적어도 종교는 ‘보혁(保革) 갈등’의 소지가 없는 종교로 발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종교에서는 ‘기념상을 조성하여 유공 인을 기념할 수는 있으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나약한 중생(衆生)들은 사람보다는 신에게 의지하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성직자를 성스러운 존재로 취급하고 싶어 해, 우상이 생기고 인격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직자를 신격화 하거나 우상화 하는데서 사이비 성직자나 사교(邪敎)집단이 생깁니다. 이들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종교를 빙자한 온갖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닐 런지요?

모름지기 종교란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파란고해(波瀾苦海)의 일체생령(一切生靈)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종교입니다.

우리 반지키스를 거부하시는 교황의 충정을 이해해 드리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신이기를 거부하시는 진정한 깨달음의 결과로 보아드리면 어떨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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