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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신(接神)

기사승인 201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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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신(接神)

조선일보 4월 1일자 신문에 난데없이 ‘CEO와 접신(接神)’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아니 이 나라의 CEO들이 접신을 해야 기업경영을 잘한다니요?

‘접신’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접신은 ‘몸에 신령이 지핌’이라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접신은 일종의 ‘신 내림’인데, 신 내림은 종교적⦁민속적 전통에서 어떤 사람이 외부의 초자연적인 힘의 직접통제를 받는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비정상적 행동과 성격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신 내림의 증후에는 난폭한 비정상적 행동, 비명, 신음 그리고 앞뒤가 맞지 않거나 이상한 말을 되뇌이는 행위가 포함됩니다. 때로 종교집단의 정상적인 경건한 신자가 기도를 할 수 없게 되거나, 불경한 말을 하고, 성인이나 성물에 대한 혐오나 증오심을 나타내기도 하지요.

예수교를 비롯한 몇몇 종교들은 사악(邪惡)한 초자연적 원인으로 이러한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적 연구들은 이를 의학이나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취급할 수 있는 정신물리학적 현상으로 다루고 있지요. 역사적으로는 악마(惡魔)에 씌웠다고 불러온 몇몇 상태를 이제는 간질⦁히스테리⦁몽유병⦁정신분열증 또는 여러 기질적⦁심리적 질병형태로 다루고도 있습니다.

일부 전통사회에서는 ‘신 내린’ 사람은 죄인이 되며, 공동체는 그가 무언가 정신적 죄를 범했다고 여기기 때문에 회복을 위해서는 때로 희생물을 통해 그의 죄를 속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전통에서 신 내린 사람은 영(靈)을 다스리기 위한 매개자로 여겨지며, 영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 신 내린 사람의 주된 역할은 대개 정신병에 걸린 사람을 진단⦁치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서 영매(靈媒)의 신들린 행동은 종종 스스로 유도한 행동, 즉 자기최면이며, 약물, 북소리, 집단적 히스테리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런데 기업을 하는 CEO들이 이렇게 신 내린 사람들처럼 접신이 되어야 기업경영을 잘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도 CEO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법(正法)에 맥을 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 조선일보의 칼럼에서는「한국의 무당은 약물 없이 제정신으로 촛불만 켜 놓고 접신 상태로 들어간다는 특징이 있다. 이게 대단한 능력이다.

바둑 9단을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입신이나 접신이나 비슷하다. 접신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어떤 분야의 프로페셔널한 경지에 들어간다는 것은 접신과 같다. 가장 신기(神氣)가 있어야만 하는 직업이 기업 CEO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이 배신할 사람이냐, 믿을 만한 사람이냐, 복이 있는 사람이냐, 저 사업 아이템이 과연 성공할 것이냐’의 판단은 고도의 판단이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인 지인지감(知人之感)과 프로젝트의 성패를 판단하는 일이 CEO의 핵심 능력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는 신기 없는 사람은 내리기 어려운 판단이다. 여기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만 돈을 번다. 현대의 CEO는 낮이나 밤이나 일구월심으로 돈 벌 궁리를 해야만 하는 혹독한 직업이다.

쉽게 말하면 자본의 신과 접신을 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직업인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접신된 CEO만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가방끈도 중요하지만 조상 대대로 적선과 기도를 열심히 한 ‘공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 칼럼의 필자는 가장 신기가 있어야만 하는 직업으로 기업 CEO를 지적했습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인 지인지감과 프로젝트의 성패를 판단하는 일이 CEO의 핵심 능력으로 지적하고, 이 두 능력은 신기가 없는 사람은 내리기 어렵다고 합니다.

돈에 접신된 CEO! 아마 그런 자들이 돈에 혈안이 되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행위 때문에 지금 이 사회가 가진 자들에 의해 병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작금에 이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버닝썬’ 사건과 ‘김학의 사건’ 등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불교에서는 신기 또는 신통(神通)을 귀하게 알지 않습니다. 신통이 세상을 제도(濟度)하는 데에 실다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폐해가 되는 까닭입니다. 원불교에서는 ‘신통은 말변(末邊)의 일이라’ 합니다. ‘도덕의 근거가 없이 나타나는 신통은 다못 일종의 마술(魔術)이라’고 하여 크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원불교의 2대 종법사를 역임하신 정산(鼎山) 종사께서는 “신통은 지엽(枝葉) 같고 견성성불은 그 근본이니, 근본에 힘을 쓴즉 지엽은 자연히 무성하나, 지엽에 힘을 쓴즉 근본은 자연 말라지느니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신통은 성현의 말변지사(末邊之事)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도 회상(會上)을 공개하신 후에는 신통을 엄금하시고 오직 ‘인도상요법(人道上要法)’을 주체 삼아, 중생을 제도하시되 일용 범절과 평범한 도로써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대도(無上大道)가 아닐까요?

그리고 대산(大山) 종사께서도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많으나 그 재주와 이름이 오래가는 사람은 많지 않나니, 그것은 바로 정법에 맥을 대지 않고 사는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소태산 부처님께서는 ‘천하에 신기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법에 맥을 대지 않는 사람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없다.’고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속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신기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오직 정법에 맥을 댄 정도경영(正道經營)만이 지속가능성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불교의 ‘인도상요법’이 경영인의 최고 길라잡이 아닐까요?

미신(迷信)이 따로 없습니다. 모르고 믿으면 미신입니다. 종교도 맹목적으로 믿으면 사도(邪道)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는 정신이라야 진짜 훌륭한 CEO의 자질이 아닐 까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4월 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김덕권 duksan4037@daum.net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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