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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려진 ‘의열단 단장’ 김원봉, 다시 알기

기사승인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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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은 기자] “피우진 보훈처장이 드디어 이 정부 본심을 드러냈다. 반대한민국 북한공산주의자 김원봉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 수여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원봉이 누구인지 잘 아실 것이다. 뼛속까지 북한 공산주의자이다. 어제 우리 당 의원께서 ‘김일성에게도 서훈을 줄 거냐’라는 질문이 모든 것을 함축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자에게도 훈장을 달아주겠다고 한다. 결국 6.25 남침을 주도하고, 우리 국토를 전쟁 폐허로 만든 자도 국가영웅으로 치켜세우고 기리겠다는 것이다”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선출 이후, 대놓고 막말을 일삼고 있다. 자한당의 핵심세력인 ‘태극기 모독단’의 지지를 받으려면 어쩔 수는 없나보다. 반민특위를 모독하질 않나, 지적당하니까 반문특위라는 같지도 않은 단어를 지어내지 않나. 이젠 독립운동가들까지 대놓고 모독하고 있다. 약산 김원봉을 향해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고 강변하며 절대 서훈을 줘선 안 된다고 목소릴 높였다.

지난 2015년 여름 ‘암살’로 약산이 재조명됐다. 의열단 단장을 맡았던 약산에 대해, 일제는 무려 100만원(현재 환산 320억원)의 현상금을 걸었을 정도로 두려워했다고 한다.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에게 현상금 60만원을 건 것보다도 훨씬 큰 금액을 걸었을 정도니. 약산의 어마어마한 위상을 짐작케 한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약산 김원봉, 그는 해방 후 악질 ‘친일 순사’ 노덕술에게 뺨을 맞는 등 최악의 모욕을 당했다. 그는 친일파가 장악한 곳에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쫓기듯 월북했다. 독립운동가를 탄압한 친일파들이 처벌받기는커녕 활개 치고 애국자 행세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

나경원 원내대표의 망언에 역사학자 전우용 씨가 페이스북에서 또다시 뼈때리는 일침을 했다. 

의열단 단원들은 젊은 나이에 조국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EBS

“서울 을지로에는 나석주 의사 동상이 있습니다. 대학로에는 김상옥 의사 동상이 있습니다. 남산 애니메이션 센터 옆에는 김익상 의사 의거 터 표석이 있습니다. 세 분 모두 의열단원이었습니다. 의열단 단장이 김원봉이었으니, ‘김원봉이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면 그의 동지였던 저들의 동상과 표석도 헐어버려야 할 겁니다. 해방 당시 김원봉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장’이었습니다. 그가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였다면, 우리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는 구절을 빼야 할 겁니다. 그는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였던 적이 없습니다.”

전씨는 ‘일제 순사’ 노덕술에게 약산 김원봉이 따귀를 맞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가 남북협상에 남측 대표로 참석한 후 북한에 눌러 앉은 건, 친일파들이 활개 치는 현실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제가 그렇게 두려워하던 약산 김원봉, 해방 이후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뺨을 맞는 등 최악의 모욕을 당했다. ⓒ EBS

그러면서 약산 김원봉이 1958년 숙청당한 이유에 대해서도 “‘뼛속까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정권에 의해 숙청당한 김원봉이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면, 지금 탈북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전직 북한 고위관료들도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일침했다.

이승만·박정희 정권 시절, 약산의 친인척들은 연좌제에 걸려 호된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약산의 부친은 연금 상태에서 세상을 떠났다. 또 한국 전쟁이 일어난 후 보도연맹 사건(이승만 정권의 만행으로 수십만명이 학살)으로 약산의 형제 4명, 약산의 사촌 5명이 총살당했다.

약산의 월북 이후 약산의 혈육들은 ‘연좌제’로 인해 모두 살해당하거나, 심할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 EBS

또 약산의 형제인 김봉철 씨는 보도연맹사건으로 처형된 형제와 사촌들의 시신을 수습하였다는 이유로, 5.16 군사반란 이후 벌어진 군사혁명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이 선고문에는 박정희가 직접 서명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해방 이후에도 독립을 위한 그의 치열한 노력은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전 씨는 또 하나의 사례를 들었다. ‘조선의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던 핵물리학자 도상록 같은 경우도 그러했다는 설명이다.

“1930년대부터 국제 저명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실어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꼽혔고, 공산주의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모함을 받았습니다. 경찰서에 잡혀 가 종일 모욕적인 심문을 당하고 귀가한 그는, 짐을 꾸려 가족과 함께 월북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조선일보는 그를 ‘북한 핵개발의 아버지’로 지목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때 그를 모함, 모욕한 토왜(토착왜구)들이, 결과적으로 북한 핵개발을 도운 셈”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멀쩡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마구 학살한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언급하면서 “해방 이후 많은 사람이 ‘본의 아니게’ 공산주의자와 한편이 됐다”며 “그들을 ‘공산주의자’에게로 밀어붙인 자들은 다름 아닌 친일파, 토왜들이었다. 자기들의 토왜 짓을 은폐하기 위해, 또는 당장의 '사익'을 위해, 애먼 사람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로 하여금 죽거나 북한에 가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산 김원봉은 월북 이후 숙청됐다. 남에서는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배척돼 그의 치열했던 독립운동이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 EBS

전 씨는 약산이 저승에서 나 원내대표의 말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친일경찰이나 서북청년단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짓”이라며 나 원내대표를 꾸짖었다.

“‘김원봉은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저승의 김원봉 본인이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노덕술의 후예인 친일파 토왜들이 활개를 치는 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김원봉에게 서훈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서는 논의할 지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를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건, 친일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짓입니다. 3.1운동 100주년인데, 노덕술이 김원봉의 따귀를 때리는 게 옛날 일 같지 않습니다“

고승은 기자 merrybosa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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