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豊盛)은 넉넉하고 많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순환(循環)은 어떤 현상이나 일련의 변화 과정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거나 되풀이하여 도는 것을 말하지요. 정말 넉넉하고 많은 것이 좋지 않은가요? 그래서 저는 오래 저부터 옷도 신발도 넉넉하고 조금은 헐렁한 한복과 운동화를 신고 다닙니다.

김덕권 칼럼니스트

재작년인가요? 12월11일자 각 언론에 <백혈병 수능 만점 모자(母子), 후원받은 사찰과 서로 기부>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해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선덕고등학교 3학년 김지명 학생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시험을 준비했고, 역대 급 난이도(難易度)였던 ‘불수능’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합니다.

김지명 군은 초등학교 6학년 12살 때, ‘급성임파구성백혈병’에 걸린 후, 중학교 재학 기간 동안 백혈병 치료에 집중했습니다. 이어 고등학교 1학년 입학 후, 3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 군은 JTC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면 놀러 다닐 수도 없고, 밖에 나가지도 말라고 하니까, 사실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었다.”고 지난 시절을 털어놨습니다.

그는 “공부는 가까이해야 할 친구기도 하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적이라고도 생각했는데, 친구는 가까이하고 적은 더 가까이하라는 말이 있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 기특한 것은 정각사(正覺寺)에서 300만원의 장학금을 받고도 그 중에서 200만원을 다시 정각사에 돌려준 것입니다.

김군은 “제가 완치된 것은 많은 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건강을 빌어주신 덕분입니다.”그래서 다른 환우들을 돌보라고 200만원을 다시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가 받은 은혜를 ‘풍성의 순환’을 통해서 보은 행(報恩行)을 한 것입니다. 어쩌면 김군의 심성(心性)이 지상에 존재하는 극락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한 것이나 마찬 가지가 아닐까요?

저승길을 넘어 갔다 온 어떤 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옥과 극락은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이 똑 같았다. 더구나 긴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도 다 같았다.” 그러나 밥 먹는 시간이 되자 드디어 극락과 지옥의 차이점이 나타났습니다. 지옥에서는 먼저 각자 긴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려고 싸웁니다. 그런데 극락에서는 긴 젓가락으로 서로 상대방에게 밥을 평화롭게 먹여주는 것입니다.

‘풍성의 순환’은 기독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풍성의 순환’은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에게 와서 사람을 통하여 모든 착한 일들이 요구하는 필요 상태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시작한 원점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다시 돌아가는 완전한 일원상(一圓相) 진리의 순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풍성의 순환원리를 보면 먼저 하나님의 능력이 순환의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원동력이 모든 은혜, 즉 원불교의 사은(四恩)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모든 것과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과 하나님이신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이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풍성함의 순환방식입니다. 풍성함의 근원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그 풍성함의 공급은 모든 은혜이며, 그 풍성함의 섬김은 모든 착한 선행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풍성의 순환의 중심효과가 아닐까요?

김지명군의 사례에서 풍성의 순환을 설명해 봅니다. 김지명 군은 전생의 인과에 의하여 백혈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대로 “제가 완치된 것은 많은 분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건강을 빌어주신 덕분입니다.” 즉, 은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올해 ‘수능’에서 만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정각사에서 300만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만원을 정각사에 기부하여 또다시 다른 이들에게 은혜가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입고 은혜를 갚아가는 풍성한 순환논리는 바로 우리 원불교의 사대강령(四大綱領) 중의 하나인 <지은보은(知恩報恩)>과 같은 것입니다. 지은보은이라는 말은 우리가 남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그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지요. 오늘날 사회의 인심을 살펴본다면 사람들이 은혜 입기는 좋아하되 은혜 베풀기는 싫어합니다.

그리하여 원망이 원망을 낳고 은혜에서도 원망을 낳아 배은망덕(背恩忘德) 하는 일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피차가 원망과 배은으로 얽히고 설 켜 마침내 화(禍)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불교에서는 종래의 윤리 즉, 소극적인 인간 중심의 윤리나 절대자와의 관계설정을 윤리로 규정하려는 의도를 지양(止揚)합니다.

그 대신 네 가지 큰 은혜, 즉《천지⦁부모⦁동포⦁법률》을 은혜의 덩치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릴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어떠한 물건을 막론하고 좋지 않은 것만을 발견하여 버리기로 하면 한 사람, 한 물건도 유익하게 쓰일 곳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안 좋은 사람이요, 양잿물과 같이 독한 물질이라도 쓸 곳을 발견하고 좋은 것을 가려서 쓰기로 하면 한 사람, 한 물건도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유익한 은혜만을 발견하여 보은을 한다면, 천지도 부모도 동포도 법률도 물건도 사상도 모두 자비로운 보살로 화현(化現)될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사귀는데 그 좋은 인연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대개 유념(有念)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하고, 무념(無念)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하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유념할 자리에 유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입고도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념할 자리에 무념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슨 방면으로든지 남에게 은혜를 베푼 후에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은혜 입은 사람이 혹 나에게 잘못하면 전날 은혜 입혔다는 생각으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인연이 오래가지 못하고 원수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이치를 잘 알아서 유념할 리에는 반드시 유념하고, 무념할 자리에는 무념 하는 지은보은의 이치를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은혜가 풍성의 순환을 이루고, 인간도 사귀는 동안에 그 좋은 인연이 오래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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