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임병용 기자] '포스트 하노이'를 위한 북미 중재 역할을 문재인 대통령이 본격 가동한다. 비핵화 협상에 있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북미 양쪽을 동시에 설득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사실상 '4차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동시에 지난 3차까지의 남북합의에 속도를 냄으로써 북한의 대화 테이블 이탈을 방지하고 미국과는 북한이 부담스러워하는 '완전한 비핵화' 일시 달성 방안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나섰다.

청와대는 미국의 ‘빅딜’ 요구와 북한의 ‘단계적 합의’ 요구 사이에서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ㆍ충분한 수준의 합의)’이라는 중재안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번엔 남북대화 차례”라면서 북미간 경색 국면을 풀기 위한 카드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네번째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번에 5박 6일 일정으로 바쁘게 아세안 3국 순방을 마친 문 대통령은 18일 공식일정을 잡지 않았다. 대신 순방기간 쌓인 국내외 현안들에 대한 보고를 받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이 공개일정 없이 정상근무한다”고 했다.

매주 월요일 문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던 수석 비서관ㆍ보좌관 회의도 노영민 비서실장이 대신 주재한다. 문 대통령은 이번주 공개 일정을 최소화하고 물밑으로는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전략적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관측된다.

궤도 이탈이 우려되는 북한과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돌파구로 남북정상회담이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우리가 북미 간 대화를 견인했고,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정상 대화를 견인했다”며 “이번엔 남북대화 차례가 아닌가 보이며, 우리에게 넘겨진 바통의 활용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하노이 핵담판’이 결렬됐지만 여전히 문 대통령이 촉진자이자 중재자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북미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선 북한과 대화가 가장 시급하고, 그 실타래를 풀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대북 접촉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어 보인다.

아울러 관계자는 남북정상이 맺은 4·27판문점선언(1차 남북정상회담), 9·19평양공동선언(3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정신에 따라 비무장 내 모든 GP 철수, 공동유해발굴, 한강하구의 민간선박 자유항행 등을 연내 본격적으로 실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도 했는데 이 또한 '북한과의 접촉'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이는 사실 하노이회담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기대했을 '북한의 당황'을 달래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관계자는 "공동유해발굴이나 한강하구 민간선박 자유항행은 4월 초에 실현되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명시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같은 날 미국을 향해서도 메시지를 냈다. 관계자는 "일시에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지 않느냐"며 이른바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 전략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신 대안을 제시했다. 스몰딜(small deal)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을 통한 상호신뢰 구축에 따른 최종목표 달성이다. 즉, 빅딜(big deal)보다는 작지만 매우 의미있는 스몰딜을 한 두 차례 연이어 달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종반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목표에 달성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대북특사 카드나 남북정상 간 2차 판문점 회동과 같은 원포인트 만남을 검토하는 등 김 위원장과 과감한 소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청와대는 이런 대북 접촉 노력과 함께 기존에 약속한 남북협력 사업에도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남북미 대화의 견인차 구실을 해온 '국가정보원-노동당 통일전선부' 라인 가동을 우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물밑 대화를 통해 '하노이 이후' 북한 지도부의 입장을 타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하노이 이후 협상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과 말이 통하는 서 원장을 대북특사로 파견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다 하노이회담 전후로 직면했던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비롯해 개각, 미세먼지 등 국내외 현안을 어느 정도 문 대통령은 털어냈다. 17일 청와대는 지난 16일 동남아 순방에서 돌아온 문 대통령이 "경제와 민생문제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이날 북미 중재 방안도 함께 발표함으로써 문 대통령이 본격적인 중재 발걸음을 옮긴다는 사실도 알렸다.

문 대통령은 이번 주 경제ㆍ민생 행보에 집중한다. 이어서 다가올 20일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주요 경제 현안에 대해 보고받고 다음날인 21일에는 혁신금융 비전 선포식에 참여한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전국 경제투어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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