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가치
요즘 나라가 소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시끄러울까요? 그것은 한마디로 도덕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가수 승리와 정준영 사건은 경찰과의 유착, 성폭행, 마약 의혹 등으로 번졌습니다. 이후 승리가 성매매 알선에 가담했다는 의혹과 함께 정준영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 등을 공유했다는 의혹이 파문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3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가 12일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말을 듣지 않게 해 달라.” “좌파 독재” “막장정권” 등 초강경 비난에 나서면서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습니다. 나경원은 현 정부를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로 규정하고, 외교안보 정책은 “운동권 외교”, 경제 정책은 “헌정농단 정책”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좌파’를 11차례, ‘종북’을 3차례 언급하는 등 색깔론 발언도 서슴지 않아, 제1야당이 ‘이념 갈라치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지난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을 ‘위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젊은 아이돌 가수들의 타락한 생활상은 죄의식이 없는 황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적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젊어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저지른 악행이라 할지라도, 4선의원에 판사출신인 나경원 원내대표의 막말파동은 아무래도 정권욕에 사무쳐 국민들을 통합이 아니라 갈라치기를 감행한 한 정치인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몰지각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세상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도덕이 아닌가요?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역에서 있던 일입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한 지 6분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음악을 들었고, 43분 동안 일곱 명이 청년의 바이올린 연주를 1분 남짓 지켜보았습니다. 스물일곱 명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고, 그렇게 모인 돈은 32달러 17센트였습니다.

다음 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놀랐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공연하던 청년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죠슈아 벨(Joshua Bell) 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날,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음색이 예리하고 아름다운 ‘스트라디바리우스’ 350만 달러짜리 바이올린을 들고 43분 동안 아주 멋진 연주를 했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현장을 오가던 1,070명은 단 1초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고, 음악소리를 듣는 척도 않고 그냥 무심하게 지나쳐 갔습니다. 이 공연을 제안한 ‘워싱턴 포스트’는 현대인이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며 참으로 안타까워했습니다.

우리들은 정말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외면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기껏 돈을 벌어 성매매나 하고, 몰래 성행위 동영상을 찍어 돌려보며 낄낄대는 것이 옳은 삶의 태도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어렵게 영광스러운 4선의 국회의원이 된 제일야당의 원내대표가 국민을 화합으로 이끌지는 못할지언정 국가원수를 모욕하고, 국민들에게 섬뜩한 공포를 심어주는 그런 정치를 그냥 보아야만 하는 것인지요?

세상에서 가장 재능 있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코앞에서 연주하고 있어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이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어떻게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인지 너무나 가슴이 아파옵니다. 이 물질만능주의와 권력지상주의의 사악(邪惡)한 미몽(迷夢)에서 깨어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땅에 떨어진 도덕을 바로세우는 일이 아니면 치료약이 없을 것입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요? 도덕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을 말하는 것입니다. 도(道)라 하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곧 길을 이름이요, 길이라 함은 무엇이든지 떳떳이 행하는 것을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행하는 것을 천도(天道)라 하고, 땅이 행하는 것을 지도(地道)라 하고, 사람이 행하는 것을 인도(人道)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 가운데에도 또한 육신이 행하는 길과 정신이 행하는 길 두 가지가 있으니, 이 도의 이치가 근본은 비록 하나이나 그 조목은 심히 많아서 가히 수로써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러 가지 도 가운데에 우선 인도 하나만 들어 말하여도, 저 육신이 행하는 도로의 선(線)이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큰 길 작은 길이 서로 연락하여 산과 물과 들과 마을에 천만 갈래로 뻗어나간 수가 한이 없습니다.

또한 정신이 행하는 법의 길도 어느 세상을 막론하고 큰 도와 작은 도가 서로 병진(竝進)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에 경계(境界)를 따라 나타나서 그 수가 실로 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덕(德)이라하는 것은 쉽게 말하자면 어느 곳 어느 일을 막론하고 오직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이름이지요.

하늘이 도를 행하면 하늘의 은혜(恩惠)가 나타납니다. 또한 땅이 도를 행하면 땅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또 사람이 도를 행하면 사람의 은혜가 나타나서, 천만가지 도를 따라 천만 가지 덕이 화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여러 가지 덕 가운데에 우선 사람의 덕만 해석하여 본 다 하여도 그 조건이 또한 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도덕은 개인에 당하면 개인이 화(和)하고, 가정에 당하면 가정이 화하며, 사회에 당하면 사회가 화하고, 국가에 당하면 국가가 화하며, 세계에 당하면 세계가 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제일 큰 덕으로 말하면 곧 대도(大道)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因果)에 통달하여 삼계화택(三界火宅)에 헤매는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이 나라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구현하고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아닌 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3월 1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