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산업’소릴 들을 때마다 ‘조강지처’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새 시대 기업 변신의 파트너는 신여성 격인 벤처형 IT이어야 하는가.
신세기가 열리면서 불어 닥친 물결 중에 ‘철저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서서히 죽는다.‘라는 패러다임이 있었다. 기업은 성장발전을 위해서는 물론이려니와 무한경쟁시대에 최소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부단히 혁신을 통한 변화를 꾀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류에 맞게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거센 바람에 어느 날 갑자기 이름 하여 ‘벤처’라는 신여성이 등장하더니 제조업이 ‘굴뚝산업’입네 구닥다리라 입방아들을 찧기 시작했다. 신세기 성공마당인 첨단파티에 합류하려면 참신하고 건강하며 신지식(?)으로 단장한 벤처형 IT와 짝을 이뤄야지, 애옥살림에 찌들고 늙어빠진 굴뚝산업하고 해로하려다간 기업 망하기 십상이라 정을 떼라는 것이었다.

하긴 부실이라는 죽을 쑤고 망신살이 뻗쳤거나 어리석은 경영 때문에 죽을병에 걸려 생사를 헤매는 기업들이 부지기수인 당시의 참담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리 공이 큰 조강지처라 해도 눈물을 머금고 버리고 IT형 신여성을 맞아들여 기업을 일으켜야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변신을 과감하게 함으로써 성공하고 선망의 대상이 된 기업이 적지 않다.

▲ 박종형 칼럼니스트

기업이란 게 아무리 윤리도덕이 어떻고 하더라도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불의하고 추악한 권력의 사타구니 밑을 기꺼이 기어야하고, 힘없고 충직한 노동자들을 희생제물 삼아서라도 금고를 채우기 마련이므로, 설사 조강지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젊고 매력 있어 돈 잘 벌어줄 신여성을 안방차지 시킨들 시비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니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좋은 날 보자 일생을 종처럼 헌신하여 살아온 조강지처만 서럽고 억울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장가를 들어야할까 고민하게 된 제조업들이 과연 그런 일대 변신을 결행하게 될 것인가는 의문이다. 가령 조강지처 격인 제조업을 버려서라도 시대변화에 부응하자는 게 그저 ‘바람’이라면 그 바람 따라 바람났다가 아뿔싸 어떤 패착敗着을 당하게 될지 어찌 알 것이며, 설사 그 ‘바람’이 기업이 따라갈 가치가 높다 해도 조강지처 버리고 그저 새 사람만 맞아들인다고 저마다 번영을 보장받을 것인지는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자칭 신 패러다임은 지금 굴뚝산업체를 향해 지금에 와서 인식오류로 판명되고 있는 끈끈한 정을 바꾸고 버리라고 한 수 가르치고 있다. 
21세기 향도를 자처하는 저들 지식산업은 일견 엘리트고 신진 산업 리더이며 행복한 사회 만들기의 기수인양 거침없이 뻐긴다. 그 위세가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만만하여 감히 저들의 무경험과 허술함, 조급함과 과장됨을 숨긴 착각의 실상을 따져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굴뚝산업은 서비스산업한테 조차도 괄시를 받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부실경영으로 거덜 나고 망한 기업마다 굴뚝산업체고, 회사 재산을 파먹어 병들게 만들고 걸핏하면 노조한테 걷어차이는 신세가 된 기업이 어김없이 굴뚝산업이니, 아무리 조강지처로서의 공이 커도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아 마땅한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새천년의 첫 장은 온통 지식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지식정보산업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북 치고 학자가 장구 치며 이미 맹신도가 된 기업인들이 장단 맞추는 판벌임이 너무나 요란해서 굴뚝산업체들이 기가  죽고 장래가 불안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굴뚝산업체들이 벤처다 정보통신산업이다 서비스산업이다 업종전환을 서둘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 우린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무엇이 과장됐으며, 어디에 거품이 끼고, 문제가 어디로 잠적했으며, 우리가 얼마나 불합리하게 그 바람을 따라 강남으로 가려는지, 저 신 패러다임의 만연현상을 신중하게 고찰해 보아야 한다.

인기주의 정치에 이골이 난 ‘국민의 정부’가 ‘백만 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치며 벌인 ‘테헤란밸리 벤처 붐’이 왜 일 년여 만에 꺼졌으며, 그 헛바람에 거덜 나 쓰러진 어린 벤처의 주검이 물경 1만 개가 넘었든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굴뚝산업의 진정한 가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세계적인 유수 기업 IBM회사가 더 이상 굴뚝산업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치자.  과연 그런가. 그 기업이 벤처기업인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젠 서비스업체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주장하는 근거는 아마도 사업구조의 일대 변화 때문인 것 같다. 변화된 수익모델의 경우 한국 IBM은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이 컨설팅과 로열티에서 나온다.  그건 사실이고 경영성과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효자노릇 하는 사업 도메인이 과거와 비교하건데 굴뚝산업보다 서비스산업 쪽으로 상당히 기울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만하다. 그러나 거기엔 더 중요한 사실이 간과됐다. 그 모든 수익이란 게 실인즉 제조업이 쌓은 노하우나 상표 및 기업 이미지에 근거하고 거기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조강지처 같은 하드웨어 사업에서 쌓은 명성과 기술과 신뢰에서 창출된 소프트웨어가 드디어 효자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탐스런 과실을 풍요롭게 열리게 만든 뿌리가 바로 굴뚝산업 토양에 깊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된 것이다.

세상엔 ‘벤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서비스사업이 틀림없는 데도 갈 데 없는 전형적인 굴뚝산업 형 사업으로도 백 년 이상 건강한 성장을 계속하며 기업 가치에 있어 세계 톱클래스에 건재하고 있는 기업들이 허다하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코카콜라회사다. 다국적 기업인 저들한테 벤처라든가 지식경영 같은 사업 패러다임은 이미 그들 나름대로 정립해서 사용하며 적용해왔기 때문에 새롭지도 중요하지도 않다.

평상 경영과정에서 필요한 경영혁신을 실천하고 소비자를 충분하게 만족시키는 서비스 마케팅을 하며 그러한 모든 좋은 경영에서 기업 가치를 알차게 수확해서 선망 받는 사업을 지속하는데 딱히 새삼스럽게 변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철저하게 실용주의에 입각한 경영을 하는 미국 기업들한테 어떤 수익모델을 지향하는가는 굴뚝산업이니 벤처산업이니 하등 고민할 숙제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기업한테 시장은 거대하고도 약속된 실험장이므로 어떤 사업모델을 가지고 시장에 뛰어들어도 성공하면 그게 효자산업이고 본뜰 가치가 있는 사업이지 마치 ‘벤처’가 신세기에 발명된 신화적인 사업모델인양 요란을 떠는 우리와는 수용하는 패러다임이 다르다. 실리콘밸리가 근자에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벤처산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세기 가까이 가꾸어 온 투자나무의 열매가 탐낼 만큼 열려 드디어 수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벤처라는 게 굴뚝산업에 근거하며 그 기반을 일탈하고서는 창업서부터 영업이 불가능하다는 건 논쟁의 여지가 없다. 오프라인을 무시하거나 등한히 하고서는 온라인이 견실한 수익모델을 잡을 수 없으며 이른바 디지털 마케팅이 한계에 부딪혀 허무하게 실패한다는 사실을 우린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러므로 벤처가 매우 매력 있다는 게 분명하지만 너무 조급하게 짝사랑하는 건 위험하다. 특히 조강지처 같은 굴뚝산업을 경솔하게 버리고 섣불리 벤처와 정분났다가는 자칫 패가망신을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벤처사업은 신사업 도메인이 아니라 IT이니, 인터넷 비즈니스니, 지식정보산업이라는 새 옷을 차려 입고 새 모습으로 등장했을 뿐이다. 아무리 첨단 벤처라도 기술로서 손을 배제할 수 없는 분야가 있듯이 벤처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굴뚝산업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 역설하는 것은 결코 지식정보산업을 대수롭잖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여기에 일일이 설명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은 반드시 강조되고 정치하는 사람이나 기업인 모두가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어느 쪽이 고용창출에의 기여도가 더 큰가 하는 가치의 문제다. 그건 말할 것도 없이 굴뚝산업 쪽이다.

또한 기업이 이익을 종업원들과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비록 나뉘는 파이의 크기는 더 작을지라도 받아가는 손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굴뚝산업은 연관기업으로 하청 굴뚝산업을 많이 거느리기 때문에 고용의 연계효과나 이익을 나누는 관계가 훨씬 다양하고 고르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업의 사회적 존재의 의의나 사회와 가정에의 기여도 측면에서 굴뚝산업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굴뚝산업 기업인들은 공연히 겁먹고 섣불리 자긍심을 버릴 게 아니며 정부는 그런 자긍심을 살려주고 격려하는 정책을 부단히 개발해 저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SNS 기사보내기
뉴스프리존을 응원해주세요.

이념과 진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해법을 찾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요.

정기후원 하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